제 77회칸영화제 황금종려상 (2024년)
션 베이커 감독, 마이키 매디슨 주연
스트리퍼 댄서 애니는 러시아 갑부의 아들 이반과 결혼한다. 업소에서 만났지만 둘이 서로 마음에 들어하고 라스베이가스로 간다. 이반이 즉흥적으로 결혼을 제안하고 일사천리로 진행한다.
이반의 부모에게 고용된 직원들이 난리 법석을 떤다. 그 와중에 이반은 도망치고 애니는 옷을 입고 가야 하니 기다리라고 하지만 이반은 혼자 살겠다고 뛰어나가 버린다. 이반을 놓친 직원 남자 두 명은 결혼을 취소하라고 종용한다. 이반이 영주권을 목적으로 결혼한 거고 너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현찰 1만 달러를 받고 이반과 헤어지라는 거다. 만약 임신을 했으면 그것도 우리가 처리할테니 결혼이 무효가 되게 도와달라고 한다.
이반을 꼭 잡아서 부모를 만나게 해야 하는 직원들은 그를 쫓느라 온 도시를 헤맨다. 짚이는 대로 여기저기 돌아다니지만 찾기는 쉽지 않다. 여기저기서 이반을 봤다고 하는데 만취상태라고 한다. 결국 찾아낸 곳은 애니가 일하던 곳. 알고 보니 애니를 평소에 미워하던 동료가 고의로 이반을 유혹해서 같은 방에서 술을 마시고 있다.
눈에 불이 켜진 애니는 동료와 한바탕 몸싸움을 벌인다. 이반은 술에 취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건지도 간파하지 못한 채 멍하다. 부모가 도착하고 상황을 파악한 후 집으로 데려가려한다. 너 따위가 왜 우리 아들하고 결혼하냐며 애니를 무시한다. 애니는 마지막 희망을 놓지 않고 이반을 깨우며 묻는다.
“우리 이혼하는거야?”
“당연하지, 너 바보냐? 고마웠어. 내 마지막 미국여행을 재밌게 만들어줘서”
기가 막힌 애니는 부모나 이반이 전혀 다르지 않은 부류의 사람들이라는걸 깨닫는다. 사과하라는 애니의 말에 부모는 대답한다.
“우리 아들은 누구한테도 사과같은 거 안해”
애니가 집으로 돌아가도록 직원 중 한 명인 이고르를 동행시킨다. 라스베이가스에서 집으로 돌아가야하니 갈 길이 멀다. 자신을 제압하던 이고르를 곱지 않은 눈으로 바라보던 애니가 갑자기 차 안에서 이고르 무릎에 안는다. 이고르는 그녀가 결혼할 때 이반에게서 받은 반지를 건네준다. 그 아수라장에서 그녀의 반지를 챙긴 거다. 그 사이 정이 든 걸까? 부자들은 믿을 사람들이 아니라는 걸 뼈저리게 느낀 후 소박한 이고르가 마음에 든 걸까? 갑작스러운 그녀의 행동에 눈이 동그래진 러시아청년 이고르는 애니를 뚫어져라 쳐다본다.
그렇게 영화는 끝나버린다.
엄마에게 차라리 날 죽이라고, 내가 회사에 가서 도대체 뭘 하냐며 절규하는 이반의 심정이 이해된다. 능력도 없고 취향도 아닌데 회사생활을 강요하는 부모에게 취할 수 있는 이반의 입장이 안타깝다. 반항조차 크게 하지 못하고 이렇게 저렇게 사고만 친다. 어렸을 때는 심지어 수영장을 스포츠음료로 가득 채워 정수시스템이 망가지게 만들어놨다. 그 뒤처리를 다 해가며 이반을 돌본 직원들은 이반의 기행에 별로 놀라지 않는다. 그러나 결혼문제는 또 다른 국면이다.
부모나 이반이나 똑같이 안하무인 캐릭터다.
애니의 진심은 무엇일까? 바보 같지만 이반이 부자라 맹목적으로 그를 남편으로 받아들인걸까? 그녀의 마음이 오로지 욕망으로 가득 찬 거라면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더군다나 부모가 그녀를 대하는 태도는 마치 벌레나 짐승을 보듯이 했으니 말이다. 그렇게 애니를 좋아하며 함께하던 어린 남편 이반의 한 마디는 그녀의 마음 깊숙한 곳에 상처를 남겼을 것이다. 당연한 이혼과 너 혹시 바보냐라고 묻는 그의 태도에는 뿌리 깊은 무시가 배어있다. 넌 스트리퍼이고 돈으로 너를 장난감처럼 사서 잘 재미있게 놀았다라는 얘기가 아니고 무엇인가?
사회가 발전하고 자본주의가 극도로 팽배해지면서 인간은 돈으로 계급이 갈라진다. 돈이 없으면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는다. 그의 윤리의식이나 양심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돈이 있으면 어떤 행동을 해도 무슨 말을 해도 상관없다는 고압적인 태도는 거슬린다.
보이지 않는 계급에 의해 나누어진 인간들은 그 갈등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깊이 고민해봐야한다. ‘슬픔의 삼각형’을 통해 부호들의 기행을 보아 온 터라 별로 놀랍지는 않았다. 극적인 상황을 상정해서 인간의 극단적인 면을 보여준 영화다.
사람들이 무시하는 매춘부 스트리퍼 애니와 돈만 많은 부호의 아들 이반. 그들의 만남에 사랑이 끼어들 여지가 있을까? 부모 돈을 펑펑 쓰며 파티를 일삼고 여자를 옆에 끼고 게임에 정신없는 바보 같은 이반이 상징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는 돈 많은 부모를 두어서 행복할까? 자신의 힘으로 홀로 서지 못하는 어른 이반은 한심한 존재다.
어떤 상황에서든 독립적이지 못한 성인은 안쓰러움을 자아낸다. 애니의 거칠고 직접적인 생활태도. 그녀와 일하는 동료들의 에너지. 이반의 흔들리는 눈빛. 돈을 위해 부러진 코를 붙잡고 이반을 찾아 나서는 부호의 직원들.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고 상상도 못할 일이 벌어지고 있다. 돈 때문에 벌어진 일들이 대부분이지만 인간보다 중요한 건 없다. 돈이 인간을 지배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똑똑히 보았다. 애니는 왜 순진한 이반과 결혼한 걸까? 그의 부모가 그녀를 받아들일 거라고 확신했는가? 그 많은 돈을 대주는 부모라면 당연히 아들의 생활과 결혼에 깊이 개입할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자신의 일상과 소박한 삶을 사랑하는 것부터가 시작이다. 분에 넘치는 생활을 꿈꾸거나 바라는 것은 일종의 죄악이다. 애니에게 남은 것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