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당할 수 있는
◕너는 여기에 없었다◔

by 글로

린 램지 감독 / 호아킨 피닉스 주연


70회 칸영화제 각본상, 남우주연상 (2017)


학대와 폭력에 시달리는 어린 시절을 보낸 조. 항상 자살을 꿈꾼다. 마지막 장면에서도 식당에서 총으로 자신의 목을 겨눠 식탁에 목을 박는 장면이 나온다. 상상하는 장면이다.

그러나 ‘Wake up Joe, It’s a beautiful day’라는 니나의 목소리를 듣는다.


사회 거물들의 어려움을 비밀리에 도와주는 일을 하는 조. 웃을 일은 없다. 엄마와 살고 있는데 나중에는 엄마도 잃는다.


그의 삶을 움직이는 건 무엇일까? 자신처럼 고통받는 사람들을 조금이라도 도와주는 것이 그의 역할일까? 영화는 진지하고 어둡고 잔인하다. 숨죽여 보느라 매우 힘들었다. 그는 수시로 망치를 들고 등장한다. 사회악을 처단하기 위한 그의 무기는 망치다. 피는 바닥과 얼굴에 낭자하다.


수시로 등장하는 그의 어린 시절 어두운 기억들, 공항에 실신한 듯 쓰러져 있는 여자. 지하철 벽에 서 있는 눈 밑이 퍼렇게 멍든 여자. 폭력으로 얼룩진 모습들이다.


상원의원 보토의 딸 니나가 사라졌다. 조직을 찾아 조는 떠나고 니나를 구한다. 성매매조직에 납치당했다. 니나는 숫자를 내림차순으로 읊는다.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하필이면 니나와 조가 함께 있을 때 TV에서 보토 의원의 사망 소식이 전해진다. 괴한에게 습격받아 니나는 다시 납치당한다. 배후에 윌리엄스 주지사의 조직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조는 주지사의 저택에 도착해 망치를 들고 들어간다. 경비원들을 해치우고 주지사 방으로 들어간 조. 망연자실이다. 잔인하게 죽임을 당한 윌리엄스.


식당으로 들어가보니 니나가 피 묻은 손으로 식사를 하고 있다. 기괴스럽다. 그는 니나를 데리고 나온다.


“이제 어디로 가나요?”

“글쎄”


‘너는 여기에 없었다’ 라는 제목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너와 여기가 중심어다. 너는 우리를 얘기하는 것이고 여기에는 문제를 말하는 것이지 않을까?


어려운 일을 당한 타인을 우리는 돕지 않고 그가 처한 상황을 돌아보지 않는다는 현시대의 이기적인 모습을 꼬집는 표현이다.


폭력을 당하며 자란 조는 더 이상 약자가 폭력에 시달리지 않기 위해 가해자를 처단하다. 아주 끔찍하고 잔인하게. 지구에서 사라져 존재하지 말라는 강한 메시지를 전한다. 그는 끊임없이 시달리고 괴로워하지만 더 이상은 다른 사람들이 강자로부터의 괴롭힘을 당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그만의 생각을 갖고 있다.

소아성애자들이 비밀스러운 장소에서 납치당한 어린 소녀를 겁탈할 때 조는 나타난다. CCTV에 발가벗은 채로 조에게 끌려 나온 남자들. 한 방에 수 십 명의 어린 소녀들이 감금되어 있는 장면은 어두운 현실 세계를 보여준다.




우리는 발전한다고 믿고 있는 이 세계의 어두운 현실. 평범하고 평화로워 보이는 도시의 어느 남모르는 곳에서 벌어지는 믿어지지 않는 일들.

고위 정치가가 어린 아이를 성폭행하는 현실은 경악을 금치 못하게 한다. 주지사의 넓고 화려하며 세련된 집과 니나의 피 묻은 손은 대조적이고 그로테스크하다. 정의가 사라지고 윤리가 살아있지 않는 곳에서 우리 인간의 모습이 얼마나 추악한지 보여준다.


니나는 표정이 없다. 세상의 모든 불행을 겪은 듯 울지도 웃지도 초조해하지도 않는다. 거대한 산같이 느껴졌을 성인 남자를 살해하고 조를 조우한 니나가 내뱉은 말은 “괜찮아요, 조”

무엇이, 누가 괜찮다는 것일까?


자신을 구출하러 왔었던 조를 기억해내고 방금 한 남자를 살해한 니니가 중얼거린 말은 슬프다. 너무 슬프고 괴로우면 울음이 나오지 않는 걸까? 어린 소녀가 얼마나 심리적 충격을 받았으면 엄청난 현실 앞에서 아무런 감정표현도 하지 않을까? 흡사 정신이 나가버린 듯한 표정의 니나는 마치 자신을 타자화하듯이 바라본다.




자신이 저질렀지만 믿을 수 없는 현실, 어찌할 수 없는 현실 속에서 자신이 했다고는 믿어지지 않는 일들을 감당하려면 무표정밖에는 다른 표정이 없었을 것이다.

니나와 조는 묘한 공감을 느낀다. 힘들고 어려운 일을 겪은 자들끼리의 말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감정. 니나가 괴로울 때, 조가 괴롭힘을 당하는 순간에 그들을 도울 자는 진정 아무도 없었을까?


‘더 스퀘어’ 이후 다시 한번 공공의 아픔이 나의 아픔이 될 수 있으니 깨어 있으라는 강한 메시지를 담은 영화를 보았다. 15세 관람가이지만 어둡고 잔인한 장면이 많이 나온다. 장면전환이 빠르지 않아 그 잔인함이 더 오래 잔상으로 남는다. 우울하고 음습하고 어둡다. 현실의 모습을 감독은 그렇게 그려내고 싶었던 걸까? 조와 니나의 연대는 그나마 희망을 암시하지만 옅어보여 마음이 어두워진다.


호아킨 피닉스만큼 이 역에 잘 어울리는 배우가 떠오르지 않는다.


영웅이 아니어도 조금의 힘을 보태고 관심을 가지면 이 사회는 나아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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