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에 다리를 놓다

by 글로

디렉터: 그 부분만 다시 갈께요.

나: 네!

디렉터: 힘 빼고 말하듯이 불러 보세요.

나: 네!


작곡을 전공한 선생님에게 돌아가신 엄마를 그리는 마음을 담은 노래 가사를 보여주었다. 볼 수 없어서 더 보고 싶은 엄마에 대한 죄스러운 마음을 표현한 곡이다. 선생님은 작곡을 해보겠다고 했고 한 달 후에 만났다. 처음에는 좋은 줄 몰랐는데 여러 번 반복해서 부르니 노래의 깊은 맛이 우러나왔다. 선생님의 대학 후배인 가수에게 개인스튜디오에서 보컬 트레이닝을 받았다. 재미있고 쉽게 가르쳐주어 갈 때마다 노래 실력이 늘었다. 뭉툭한 연필을 갈고 갈아서 쓸 수 있게 만들어주는 분이다. 지저분한 길을 깨끗이 쓸어놓는 기분이랄까?

드디어 홍대 녹음실에 갔다. 녹음실은 3시간 단위로 대여한다. 3시간 안에 노래 한 곡을 끝내야한다. 처음 가보는 녹음실이라 신기하기도 하고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을만큼 긴장했었다. 우주선 안에 들어온 듯 머리 속이 진공상태가 되었다. 오랫동안 꿈 꿔 온 장소에 가니 믿어지지 않는 행복감으로 노래를 어떻게 불렀는지 모르겠다. 큰 스피커로 듣는 나의 목소리와 노래가 천상의 소리로 들렸다. 노래를 잘해서가 아니라 멋진 세션과 압도적 크기의 스피커로 음악을 들으니 거대한 숲 속에 작은 새 한마리가 앉아 있는 느낌이었다. 녹음된 내 목소리가 나오니 쑥스럽기도 했지만 감정이 올라와 속울음을 울었다. 평생동안 해보고 싶었던 일을 드디어 해 본다는 쾌감에 정신을 가눌 수가 없었다. 마음을 몸으로 표현하라고 하면 천장을 뚫고 나갈만큼 기뻤다. 아마추어다보니 어디가 잘못되었는지를 지적하는 것보다는 ‘내가 한 곡을 불러냈다’라는 것만으로도 유열을 느꼈다.



올림픽 금메달을 따도, 복권에 당첨되어도, 에베레스트 정상에 올라도 이것보다 기쁘지는 않을 것이다. 그만큼 노래에 대한 갈망이 컸다는 걸 노래를 만들고서야 알게 되었다. 이런 일이 생길 줄은 꿈에도 생각해본 적 없다. 저 섬에 가고 싶지만 다리나 배가 없어 멀리서 애 삭이며 보고만 있었는데 다리가 놓인 기분이다. 언제든 낙원 같은 그 섬에 가서 놀 수 있다.

음악은 혼자 즐길 수 있는 최고의 놀이다. 혼자 잘 놀 줄 알아야 한다. 나이 들수록 그런 시간은 더 많아질 테니 각오해야 한다. 혼자 잘 노는 사람이 남들과도 잘 어울릴 수 있다. 같이 시간을 보내주지 않는다고 남을 비난하거나 신세를 장탄식하지 말고 모탕을 만들어 그 위에서 여러 가지 놀 거리를 발견하고 즐겨야 한다.

*모탕: 나무를 패거나 자를 때 밑에 받쳐놓는 나무토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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