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26년 전 ‘봄시내’에서 만났다. ‘봄시내’는 춘천 외곽에 위치한 카페다. 형님이 남편을 소개하고 학교 동료 선생님이 나를 소개했다. 형님 부부와 어린 딸, 지금의 남편이 함께 한 자리. 내 편은 한 명도 없이 혼자 나갔다. 쑥스럽게 누구를 데리고 나갈 자리는 아니고 마땅히 함께 갈 사람도 없었다. 형님이 입담이 좋아 어색한 분위기를 편안하게 만들어주셨다. 본인보다 남편이 아기 기저귀를 더 많이 갈아준다고 얘기한 것이 맞선자리에서 제일 기억에 남는다. ‘이 집안에 시집을 가면 남자들이 집안일을 많이 도와주겠구나’ 하고 좋은 인상을 가지게 되었다.
남편을 처음 본 소감은 ‘깔끔하고 도시적이며 키는 좀 작지만 나쁜 사람은 아닐 듯 했다. 내가 춘천여자고등학교를 나와서 그런지 ‘춘천고등학교’를 나왔다는 얘기에 더 친근감이 들었다. 춘천고등학교 남학생들과 했던 집단 미팅도 생각이 나는 등 지난 추억이 떠올랐다.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데 다른 사람들은 가고 둘 만 남아 더 얘기하다 근처 막국수 집에서 식사까지 했다. 처음 만난 남자인데 껄끄럽지 않고 부담스럽지 않았다. 예나 지금이나 남편은 누구를 불편하게 하는 인상이나 인격을 가진 사람은 아니다.
세상에는 다 자기 짝이 있고, 결혼할 사람은 한눈에 알아본다는 둥, 첫눈에 반한다는 둥의 말들을 믿지 않았었다. 나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는 이야기로 생각했다. 그랬던 내가 한 달 만에 프로포즈를 받고 두 달 동안 준비해서 석 달 만에 결혼한 것이다. 9월 14일 추석연휴에 만나 12월 21일에 결혼했다. 그 사고가 나에게도 일어난 것이다. 나만 비껴가는 것 같은 행운이 찾아온 것이다.
꽤 까다로운 내가 어떻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결혼을 그렇게 쉽게 결정할 수 있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이렇게 무모해도 되는 걸까?’ 불안하면서도, 마치 물이 아래로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결혼이 진행되었다. 난생 처음 엔트로피를 경험하는 시기였다. 일별의 경험도 없었고 다퉈본 적도 없다. 우리의 결혼 준비 스토리는 난항이 없으니 특별한 에피소드 없이 맨송맨송하다. 남편은 그 당시 내가 앞으로 걸어 나갈 수 없을 정도로 나에게 밀착해 걸었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만 나온다. 종이편지를 써 가며 마음을 전하는 시절이 있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계산적으로 남편의 연봉이 얼마인지, 시댁의 재정상태가 어떤지 알고 싶지 않았고 파악할 생각도 하지 못했다. 우리 둘의 재정상태만 고려했다. ‘둘 다 직장이 있으니 어떻게든 가계를 꾸려갈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3개월 만에 결혼하고 26년째 살고 있다. 남편을 만나 가정을 이루고 남녀가 누릴 수 있는 행복을 다 맛봤다고 하면 거짓말일까? 남편은 순수한 면이 있다. 소도시에서 자란 나와 달리 시골에서 뛰어다니며 커서 그런지 추억도 많고 장난치는 것도 좋아한다. 가끔 내 마음을 읽지 못해 속을 뒤집어놓을 때도 있지만 웃는 모습은 여전히 해맑다. 오랜 시간 숙고하고 알아보고 재가며 결혼해도 후회하는 사람이 있고 짧게 만나 결혼해도 잘 사는 사람들이 있다. 결혼은 수학 공식처럼 똑 떨어지는 맛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