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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 Aug 04. 2024

비싼 연애

남편은 서초동에 있는 진로 회사에 다녔고 나는 속초여자중학교에서 근무했다. 그 당시 서울과 속초는 차로 가도 편도 4시간이니 왔다 갔다 하기에는 많이 멀었다. 남편은 차가 없었고 나도 서울까지 운전해 갈 실력이 되지 않았다. 세 번째 만남에서 남편이 비행기를 타고 속초 공항에 왔다. 알고 보니 처음 타보는 비행기였단다. 그의 나이 30이다. 그 사실만으로도 놀라운데 선물을 사 들고 나타났다. 급하긴 했나보다. 그 당시 내가 좋아하는 브랜드가 있었다. ‘니콜’이라고 가방 등을 파는 브랜드였는데 가죽이 고급스럽고 색감이 좋아 탐내던 것이었다. 가격이 비싸 사지는 못하고 눈도장만 찍던 가방이 있었다.     

지금의 남편이 선물이라며 거짓말같이 ‘니콜’ 가방을 내미는 바람에 많이 놀랐다. 그것도 맘에 쏙 드는 디자인의 가방을. 아직 그렇게 친하지도 않은데 가방 하나 받고 호들갑 떨기에는 어색해 속으로만 쾌재를 불렀다. 선물은 이래서 중요한가보다. 상대의 환심을 사기에 선물만큼 좋은 게 있을까? 선물 주고받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애정도가 급상승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여직원 한 명을 대동해서 백화점으로 가 요즘 여자들이 무얼 좋아하는지 골라 달라고 부탁했다는 거다. 정말 그놈의 가방 때문에 결혼을 하게 된 건지. 서울에서 속초까지 비행기를 타고 와준 것도 그렇고 내 맘에 쏙 드는 가방을 사 들고 온 것도 그렇고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바닷가도 가고 낙산사도 돌아다니며 구경했다. 그때만 해도 젊으니 하이힐을 신고 다녔다. 낙산사 홍연암은 경사가 있고 계단의 높이가 꽤 되었다. 하이힐을 신고 쩔쩔매며 내려가려니 남편이 손을 잡으란다. 옆에서 손을 내미니 잡고는 싶은데 ‘아직 친하지 않은 남자의 손을 잡아야하나? 말아야하나?’ 양가성 감정으로 고민하다 손을 잡았다.     

그 순간 ‘옳다, 너 잘 걸렸다.’ 하는 식으로 손을 꽉 잡고 놓지를 않는 거다. 가을이었지만 계속 잡고 있으려니 답답하고 땀이 났다. 그래도 뭐가 좋은지 남편은 만면에 희색을 띄며 손을 놓지 않고 걸었다. 스킨쉽이라는 것이 중요하긴 한가보다. 손을 잡고 나니 훨씬 가까워진 느낌이 들고 마음이 훗훗했다. 

      

결혼해 살아보니 그때 남편이 큰 마음 먹고 가방을 샀다는 걸 알게 됐다. 여간해서는 선물을 하지 않으며 기념일에도 마음을 쓰지 않는 사람이다. 시골에서 자라 부모님이 농사일로 바쁘셔서 소풍 때 김밥 한번 싸간일이 없다고, 생일도 지나치는 일이 많았다고, 꼭 그런 걸 다 챙겨야하냐며 볼멘소리를 한다. 허투루 돈을 쓰지 않고 더군다나 본인을 위해서는 사치하지 않는 사람이다. 선물이라고 내미는 것은 거개 내 마음에 들지 않아 기뻐하는 내색을 보이지 않으니 남편도 그만 시들해져 이제는 현금봉투로 모든 것이 깔끔하게 마무리된다. 26년 전 비행기까지 타고 오가던 열정은 사그라들고 지금은 잠깐만 라이딩해달라고 해도 택시타고 오면 안 되냐며 미운 말을 한다.  

    

그래도 같이 살고 있는 걸 보면 결혼생활은 과학이 아니고 인문학에 가깝다. 논리도 수식도 없고 증명도 어렵다. 말로 길게 풀어도 때로는 이해 가지 않는 인문학. 서술형 시험지를 받아들고 고민하는 수험생이 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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