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고향은 강원도 홍천이다. 추석 명절을 지내고 올라오는 길, 홍천강을 바라보며 남편이 즉흥적으로 ‘팔봉산을 타볼까?’ 한다. 귀로야 딱지가 앉을 만큼 자주 듣던 팔봉산이지만 갑자기 아무런 준비도 없이 가게 될 줄이야.
팔봉이라고 하여 완만하고 오종종한 봉우리가 8개 있을 줄 알았다. 일반 운동화를 신고 가볍게 시작했는데 등산을 시작하고 채 10 여분이 지나지 않아 산은 성질을 부리기 시작했다. 키는 작지만 성격이 못돼 먹어서 어디로 튈지도 모르고 누구의 말도 듣지 않는 어린아이와 대치하는 상황이다. 어떻게 달래도 화내고 떼쓰고 울기만 하는 아이를 보는 느낌이랄까? 피할 수도 등을 돌릴 수도 없고 앞에 있는 화가 잔뜩 난 아이에게 적응해 어떻게든 화합을 이뤄해야하는 상황이라면 맞으려나?
나무와 풀과 꽃이 있는데도 산이 푸근하거나 환영하거나 안아주는 기분이 아니었다. 계속 ‘그만 와, 돌아가란 말이야!’라고 얘기하는 듯했다. 히드득거리며 출발한 우리는 웃음을 잃고 얼굴에 인상만 잔뜩 썼다. 가끔 술 마시고 등산하는 사람들을 보는 경우가 있다. 등산 중에 마시는 사람들도 있다.
이 산에 갈 때는 절대로 술을 가까이 해서는 안된다는 말이 있단다. 실족하기 딱 좋다. 최대로 정신을 집중하고 발밑을 봐야한다. 다리를 최대한 벌려서 올라가고 내려가야한다. 발 끝이 닿지 않아 바위를 기어올라가야하고 디딜 곳이 없어 바위에 박아놓은 쇠바를 디뎌야한다. 온몸에 세포가 깨어나고 혈액이 급하게 순환하는 느낌을 온 몸으로 받는다.
2봉, 3봉. 몸에 있는 오기를 다 동원해 올랐다. 다리를 부들부들 떨며 내려가기를 반복했다. 보이는 봉우리는 코앞에 있는 듯 했지만 다음 봉우리까지 가기 위한 길은 난이도가 높았다. 각 봉우리 사이에 하산길이 있기는 하다. 4봉에 가서 사진을 찍으며 남편에게 내려가자고 얘기하고 싶었다. 시원한 날씨인데 땀이 어찌나 나던지.호흡이 마라톤이라도 완주한 것처럼 가빴다. 다녀온 후 기억이 잊히지 않아 팔봉산에 헌사하는 시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