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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 Aug 20. 2024

나보다는 빛나게 살아줘

모래에 묻혀 보이지 않던 글자

가족의 힘은 어려울 때 모래에 묻혀 보이지 않던 글자처럼 나타난다. 뒤돌아보면 많은 사람들이 곁을 스쳐가며 관계를 유지했지만 남는 것은 가족이다. 가족회원과 어떻게 잘 지내느냐가 숙제처럼 느껴질 만큼 힘들 때도 있다. 그러나 가족과의 웃음과 유쾌한 시간은 삶을 가볍게 해주는 힘이 된다. 딸 둘은 내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자산이다.  

    

큰딸은 성인이 되며 더 마음을 이해해주고 남편의 뒷담화를 할 수 있는 믿을만한 수다 상대가 되어주기도 한다. 큰딸은 아토피가 심해 고생을 많이 했다. 15개월부터 시작된 아토피는 20대 중반인 지금까지 딸의 인생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음식을 잘못 먹으면 눈두덩과 기도까지 부어 숨을 쉴 수 없으니 응급상황이 된다. 참을 수 없는 가려움으로 긁다보면 손톱의 날카로운 부분이 생채기를 내어 2차 감염이 온다. 진물이 흘러 더 위험한 상황이 오기 전에 응급실에 가야했다.    

  

손흥민 선수 아버지 손웅정은 *‘모든 것은 기본에서 시작한다’에서 말한다.


흥민이 경기가 있는 날이면 나는 밥 먹는 것을 포기한다. 흥민이 경기하는 날 뭘 먹었다 하면 체하지 않는 날이 없기 때문이다. 빈속으로 관중석에 앉아 경기를 관람한다. 하지만 구경하고 바라본다는 의미의 관람이라면 나에게는 그 단어가 맞지 않겠다. 관람석의 나는 굳어진 얼굴을 한시도 펼 수 없을 정도로 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건강한 자식이라도 키우기가 쉽지 않은데 피부 트러블로 마음을 졸이다 보니 위의 구절에 더 마음이 갔다. 매일이 경기다. 딸이 어디서 뭘 하는지, 잘하고 있는지, 어디에서 마음의 상처를 받고 있지 않은지, 피부는 괜찮은지 긴장하며 하루를 보낸다.   

  

학창시절 가려움으로 힘들어 공부에 전념하라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전공을 정해야 하는데 물을 쓰지 않는 일이 거의 없었다. 고민하다 최종적으로 제과제빵과를 선택하여 어렵게 졸업을 했다. 베이커리에서 일을 하다가 고무장갑에 있는 균에 감염되어 화상을 입은 것처럼 손이 부어 직장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무엇이든 딸이 먼저 그만 둔 것은 없다. 아토피가 심해져 일을 할 수 없는 지경이 되어 내려놓았다. 얼굴이 빨개지거나 가려움을 참을 수 없어 직장에 다닐 수 없을 때는 얼마나 마음의 상처를 받았을지 짐작도 되지 않는다. 다행이라고 해야할지 모르겠지만 딸은 성격이 밝다. 언젠가 질문을 한 적이 있다.  

   

나: “너무 가려울 때 어떻게 이겨냈어? 너는 항상 웃잖아. 힘들텐데 어떻게 밝게 지낼 수 있었어?”

딸: “가려움을 나의 일부라고 생각하지 않고 나에게서 분리하고 객관화시켰어.”     


딸에게서 배우고 그 초연함에 탄복했다. 어느 절에서 면벽수행을 한 것도 아닌데 자신에게 닥친 어려움 때문에 낙담하지 않고 극복해 내는 딸의 인내와 의지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옆에서 도와주고 체휼하는것까지 해줄 수 있지만 하루 하루 가려움과의 싸움은 딸의 몫이다.  

    

어릴 때부터 가려움으로 많은 것을 포기하고 남들의 불편한 시선도 받아 쳐냈던 딸의 마음에는 얼마나 딱딱한 굳은살이 자리하고 있을까? ‘왠만해서는 끄떡하지 않겠구나’ 한편 마음이 놓이기도 했지만 ‘저렇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눈물을, 슬픔을 안으로 삭이고 흘리며 녹였던걸까?’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지금은 2주에 한 번씩 생물학제재로 만들어진 주사를 맞으며 치료하고 있다. 일상생활에서는 가려움을 거의 느끼지 않으며 90% 넘게 회복 되었지만 관리를 소홀히 하면 안 된다. 자식이 느끼는 아픔을 대신 해주지 못하는 부모의 마음은 채무자의 마음처럼 무겁다. 따뜻하게 바라보고 마음으로 안아주는 것 외에 해줄 것이 없다. 각자의 짐은 각자의 힘으로 들어올려야하니 스스로 잘 이겨내고 감당할 수 있기를 바래 본다.  

    

딸을 키우며 느낀 감정과 애틋함을 담아 가사를 썼다. 생일에 맞춰 노래를 발매하니 큰딸이 감동해서 눈물을 흘린다. 엄마가 줄 수 있는 제일 큰 선물이라고 해야 하나? 진심을 다하여 썼으니 부를 때 자꾸만 눈물이 나려는 걸 참느라 애쓴다. 어려움을 잘 참고 견뎌주는 딸이 안쓰럽고 고맙다.   

  

<나보다는 빛나게 살아줘>     

이제 니가 내 가장 빛날 때의 나이가 되었어

너에게서 내가 보일까 조바심이 난다

넌 다르길 바라지  

   

운동회날 무용하는 널 보며 왜 눈물이 날까

교회 발표회 날 어색해 하던 너의 모습에 나의 마음이 조여온다     

자꾸 내 맘이 앞서 욕심에 널 힘들게 했다


절벽 앞에 서야 날 수 있다며 움츠린 널 밀어내듯 말했지

고개 숙인 널 보며 등 돌려 눈물 흘리곤 했어     


나보다는 훨훨 날아줘 나보다는 빛나게 살아줘

그리고 먼 훗날 여기에서 만나 우리 안아주자


조금 아프지만 멀리에 있어도  

언제나 나의 딸이 되어줘  

   

이 세상 어느 침묵 어느 암흑에 있어도 알아볼 수 있는 너

사랑이란 말로는 부족한 마음 담아 널 부른다

     

나보다는 훨훨 날아줘 나보다는 빛나게 살아줘

그리고 너와 나 여기에서 만나 서로 바라보자


조금 다르지만 닮은 모습으로 

언제나 나의 딸이 되어줘   

  

*출처: 모든 것은 기본에서 시작한다. /손웅정/ 수오서재


*나보다는 빛나게 살아줘 /작사:글로, 작곡:홍수정/ 2023년.12.29일 발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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