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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 Aug 23. 2024

밤 12만 되면

50이 넘어 불면증에 시달리며 괴로운 밤을 지내던 중 이벤트가 생겼다. 우연히 알게 된 온라인 글쓰기. 짧은 글을 주제에 맞게 쓰면 된다고 해서 가벼운 마음으로 덤벼들었다. 이 훈련은 글을 쓸 수 있게 해 주는 기초가 되었고 다소 편안한 시각으로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게 해주었다.  

    

밴드에서 하는 글쓰기 모임에 참여한 것이다. 많은 도움이 되었고, 글 쓰는 재미를 느끼게 해주었다. 밤 12시만 되면 ‘신데렐라’만 긴장하는 것이 아니다. 글감을 기다리는 회원들도 긴장한다. ‘오늘의 글감은 뭘까?’ 구내식당 오늘의 ‘스페셜 메뉴’를 알고 싶듯, 수능 보는 학생들이 시험지의 문제가 못 견디게 궁금하듯 11시 넘어서부터 기다린다. 어김없이 밤 12시가 되면 공지가 뜨고 ‘오늘의 글감’이 올라온다. 잠을 못 잔다는 우울함은 날아가고 온통 생각은 ‘오늘의 글감’에 집중된다.     

 

오호! 생각지도 않았던 글감, 혹은 좋아하는 콘텐츠의 글감이 올라와 있는 날이 많다. 어느 날은 5분도 생각 안 하고 바로 글을 쓴다. 안내사항에는 세 줄만 써도 된다고 하지만 세 줄을 쓰는 사람은 없다. 한 줄을 쓰다 보면 고구마 줄기에 고구마가 딸려 나오듯 생각이 줄을 잇는다. 중언부언하지 않고 압축해서 쓰려 노력한다. 내 안에 있는 생각, 의견, 느낌, 경험을 뒤져 끄집어 내는 시간이다. ‘나라는 사람의 방 깊숙한 곳에 이런 것들이 있었구나’. 먼지를 털며 추억을 떠올리기도 하고 잊고 지내던 소중함에 잠깐 눈물이 나기도 한다. ‘평소에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구나’를 알게 된다. 나의 모습인데 낯설다.    

 



색다른 환경에 가면 새로운 모습이 나오듯 던져진 글감 앞에 평소에 모르고 있던 생각이 얼굴을 내민다. 신기했던 것은 어떤 글감이 와도 몇 줄을 쓸 수 있다는 것이다. 잘 쓰고 못 쓰고는 나중 문제이고 글을 이어서 쓰고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아무 생각 없이 살고 있는 줄 알았는데 주제가 주어지니 생각을 써내려갔다. 황무지이던 곳에 도로가 생기면 자동차들이 다니듯, 어수선한 마음을 빗자루로 싹 깨끗이 쓸어놓는 느낌이 들었다. 회원이 한 기수에 보통 30명 내외이니 밤부터 새벽까지 올라오는 타인의 글을 읽는 재미도 좋았다.    

  

같은 주제지만 생각하는 바와 해결방법이 다르니 읽는 즐거움이 있었다. 그림을 그려 올리는 회원도 있다. 겹치는 대답은 거의 없이 다 다른 색깔의 글을 올렸다. 생각의 전환, 확대, 무한확장이다.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구나, 어! 이런 방법도 있었네, 이런 일도 겪었구나. 저런....’ 옆에 있는 친구가 좋은 해결책을 제시한 듯 얼굴에 미소가 퍼진다.      



혹은 우울함에 눌려 바깥 출입을 못하고 비애에 빠져있는 사람의 속마음도 들여다볼 수 있다. 쉽사리 위로를 건넬 수 없는 아픈 글에 한참을 넘어가지 못하고 핸드폰 화면만 바라보았던 기억이 있다.  생각해본 적 없는 주제가 주어져도 어떻게든 써진다는 것이 놀라웠다. 던져진 매듭을 풀어야하는 것이다. 차근차근 정성 들여 자신만의 방식으로 차분하게 한올 한올 해체해야 한다. 매일 가던 길을 벗어나 다른 길로 드라이브하며 거리에 핀 꽃도 보고 저 멀리 산도 쳐다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지는 것처럼 글을 통해 여행한 것이다. 새로움은 힘들기도 하지만 머리를 가동시키고 순환시키는 역할도 한다. 권태로워 긴장이 풀린 뇌에 새로운 자극을 주고 다시 정신 차리게 하는 글감들. ‘오늘의 글감’이 기다려지는 이유다.       


‘나는 이런 사람이었구나!’ 잊고 지내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글, 현재의 나를 돌아보게 하는 질문, 미래를 내다보고 꿈꾸게 하는 질문들. 생각이 마사지를 받는 기분이다. 평소에 등이나 목만 마사지를 받았다면 이번에는 손바닥, 종아리, 얼굴 등 평소에 닿지 않은 부분이 눌려지는 느낌이다. 생각이 순환되고 재배열되는 기분이랄까?

     



우북 자란 생각을 다듬을 새도 없이 글을 올렸다. 뭐가 그리 급하고 부산스러웠는지? ‘땡’하고 글이 오면 ‘마구마구’ 생각해서 ‘착’하고 글을 올렸다. 거의 1등으로 업로드했다. 누가 상을 주는 것도 아니고 시간은 24시간이나 있는데도 그렇게 수선을 떨었다. 다른 사람들이 나의 글을 읽어주는 것도 좋았다. 표정도 달리고 댓글도 남긴다. 그때였나보다. ‘글로’ 사람들과 직접 소통하고 서로 ‘좋아요’를 눌러주고 읽어주고 아픈 마음을 안아주는 일. 그런 것들이, 가까이에 있지만 멀리 느껴지는 사람들과의 소원함을 메워 주었다.  

     

‘나를 알아가야 하는 것에는 끝이 없구나!’ 질문들을 통해 내 안에 있는 조각이 맞춰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가 질문을 통해 답을 얻게 한 건가?’라는 생각도 해 본다. 하루 10분 글쓰기를 여섯 차례 했다. 한 기수가 3주니 18주간 한 셈이다. 90개의 질문에 답하며 내 안에 있는 나를 알아갔다. 뭉툭한 나무토막이 비로소 나로 조각되는 과정이랄까? 질문들로 인해 내 실체가 더 명확하고 뚜렷하게 나타났다. 중년에야 비로소 마주할 수 있게 된 나의 모습을 이제 어떤 마음가짐으로 끌어안고 살아야 할까? 글의 힘은 두려울 정도로 놀랍고도 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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