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행복하고 빛나는 순간
결국 기숙사에서의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나와 버렸다. 외롭고 무서웠다. 감옥 같았고 방에 가면 가족 생각뿐이고 얘기를 나눌 사람도 없었다. 각종 시설이나 시스템이 불편하고 TV를 보려고 해도 공동실로 가야하니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영어에 온 몸을 노출 시키러 왔는데 속이 타 죽을 것 같았다. 그러던 중 같은 과정을 공부하는 한국 친구가 자기가 머무는 집에 남는 방이 하나 있다고 했다.
기숙사 사무실로 가서 퇴사할 수 있는지, 또 가능하다면 얼마를 내야 하는지 알아보았다. 하루에 35호주달러, 7일을 있었으니까 약 245호주달러(한화 178,850원)을 내면 퇴사 할 수 있다고 했다. 1년을 있으면 기숙사비가 하루에 16호주달러이다. 그것에 비하면 비싸긴 했지만 그 당시 상태로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기숙사에서 빠져나오고만 싶었다. 사람이 그립고 제대로 된 방에서 잠들고 싶었다.
비용을 치르고 탈출하듯이 기숙사에서 나와 친구네 집으로 방을 보러 갔다. 마음에 쏙 들었다. 벽은 블루색이고 옷장과 작은 책상도 있었다. 앞 뒤 마당에는 각종 나무와 식물이 자라고 있었고 정겨운 빨래줄과 집게도 있었다. 안채에는 주인내외가 머물고 별채에는 주인집 딸과 홍콩 여학생, 한국인 여학생 그리고 나, 이렇게 4명이 머물게 되었다. 교통이 불편하긴 하지만 버스 시간이 정해져 있어 이용할 만 했다. 주인내외는 인상이 깔끔하고 인자해 보였다. 방을 보자마자 계약하고 싶다고 하자 만족스러운 듯 웃는다.
고3 딸은 이 집에 머무는 내내 큰 도움을 주었다. 붙임성이 좋고 다정한 성격으로 어른인 나와 금방 친구가 되어 때때로 머핀과 스콘을 함께 구워먹고 쇼핑몰에도 같이 놀러 다녔다. 그때 ‘라임’이라는 열매를 처음 보았다. 레몬과 비슷한데 푸른빛 라임은 잘게 썰어 스콘 구울 때 첨가하면 그 풍미가 대단하다.
주인집 딸은 훌륭한 영어공부 상대가 되어주었다. 항상 미소를 띠고 있으며 고 3인데 전혀 바빠 보이지 않았다. 목소리가 버터 바른 듯 기름지고 발음은 또 왜 그렇게 멋있었던지. 이름은 탬(Tam). 탬과 얘기하면 얘기가 술술 잘도 풀려 내 영어 실력이 갑자기 향상된 듯 기분이 붕붕 뜨곤했다. 기숙사에서 탈출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고집 부려 계속 머물렀다면 공부도 힘든데 학업에 집중하기가 더 어려웠을 것이다. 되도록 주어진 환경에 어떻게든 적응하여 버티려고 하지만 오히려 마이너스라는 판단이 서면 과감히 다른 길로 바꾸는 것도 지혜롭다는 생각이 든다.
‘적응도 잘 못하고 어려움도 이겨내지 못하는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이 마음 속에 남아 있어 한동안 씁쓸하기는 했었다. 그러나 공부를 하기 위해 최상은 아니지만 차상의 상태라도 만들어야하고 자책할 필요는 없다. 먼 곳에 홀로 온 것도 용기를 낸 것인데 자신을 끝까지 몰아세울건 없지 않은가? 최근 책을 읽으면서 이런 마음이 해소되었다.
손흥민은 '축구를 하며 생각한 것들'에서 말한다.
‘오늘 최선을 다해 행복해야 한다’라는 아버지의 신념도 나를 지켜 준 원동력이었다. 어제의 일을 계속 끌어안거나 내일을 걱정하는 통에 오늘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오늘 행복하지 못한 사람은 내일이 되어도 불행하기는 마찬가지다. 독일 유소년시절부터 그렇게 자기 암시를 해왔다. 지금 나는 행복하다.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기회가 아니다. 이 기회를 절대로 놓쳐선 안 된다. 오늘 나의 축구는 행복하고 즐거워야 한다고 속으로 되뇌었다.
미래도 중요하지만 오늘 행복한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생각하게 해주는 구절이다. 외국으로 삶의 배경을 바꾼 것도 진취적인 일인데 감당하기 힘든 열악한 기숙사라는 궁지에 계속 나를 머물게 했다면 우울증에 걸렸을거다. 이럴 때 중요한 것은 판단이다. 견디는 것이 궁극적으로 나에게 도움이 될지, 아니면 더 큰 목표를 해치는 요인이 될지 간취하는 것은 순전히 본인의 몫이다.
떠날 의지를 실행시킨 나에게 감당 못할 짐을 더하는 건 소탐대실이라는 생각이 들어 과감하게 행동한 것은 잘한 일이다. 어떻게 해서 온 유학인데 이렇게 망칠 수는 없다. 한국인을 피하기 위해 시드니가 아닌 멜번으로 왔는데 결국 한국인의 도움을 받게 되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멜번은 직항도 없어 경유해야하니 상대적으로 시드니를 가는 것보다 번거롭다. 그래도 나의 목표는 영어공부이니 멜번을 선택하게 된 것이다. 결혼하여 아이까지 둔 엄마가 30대 중반의(20년 전이다) 나이에 공부를 하겠다고 혼자 모든 것을 준비하고 트렁크 하나 들고 다른 대륙까지 날아온 것이다.
그때의 무모함이 지금도 남아 있어 앞으로 나아가는 동력이 되어준다. 영어를 정복하고야 말겠다는 강한 의지 속에 모든 장애물을 녹여버렸다. 계획하고 마음 먹은 건 어떻게 해서든 꽃을 피우겠다는 씨앗이 내 안에 숨쉬고 있었다. 공부는 어떻게든 어려워도 따라가겠는데 생활면에서 어려움을 더 많이 느꼈다. 주거가 안정적이지 않고 차가 없으니 불편했다. 버스는 배차 간격이 매우 넓고 주말에는 차가 일찍 끊기니 말이다. 그 때 라이딩 해준 대학원생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학교를 못 다니거나 택시비로 어마어마한 금액이 지출 되었을 것이다.
타인에게 잠시 나를 의탁한 들 뭐 어떠랴? 다른 사람들에게 빚을 갚으면 되는 일이다. 세상이 아무리 험악하다고 하지만 그보다 더 많은 천사들이 주변에 숨쉬고 있다. 그러니 무슨 일이든 마음 먹었다면 실행해보는 거다. 할까말까 저어하며 시간만 낭비하다보면 어느새 꿈은 멀어지고 나중에는 후회속에 잠긴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다소의 시행착오는 있지만 우리는 인간이기에 완벽하지 않다. 완벽하게 하려고 하면 아무것도 시작하지 못한다. 시간이 많이 지나 지금 분리주시해보면 기숙사 탈출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풋것이 되어 우왕좌왕, 좌충우돌, 지나고보니 그때가 내 인생에 있어 가장 행복하고 빛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나의 유학생활은 일진일퇴를 거듭하며 흘러가고 있었다.
출처: 축구를 하며 생각한 것들, 손흥민, 브레인스토어,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