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로 Sep 02. 2024

무서운 질문

'나는 그동안 무엇을 했던가?

모나쉬 대학교는 1951년에 설립되었고 캠페스도 멜번에만 6개가 있다. 나는 클레이튼(Clayton)에 있는 모나쉬 대학교 영어교육학 대학원에 다녔다. 전 세계에서 학생들이 몰려온다. 오리엔테이션도 외국 학생들을 위해 따로 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큰 강당에 들어가보면 전 세계의 학생들이 골고루 다 모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북유럽의 금발 미녀들은 왜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지? 외모에 압도당한다. 거리상 호주와 가까워서 그런지 인도네시아 학생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중국, 일본, 홍콩 학생들도 많이 있다. 교육하는 분이 PPT를 띄워놓고 자세히 설명해준다. 서두를 것 없이 천천히 반복해서 이해하기 쉽도록 알려준다. 몇 개의 제목으로 알려주는데 중복되는 부분이 있지만 내게는 고마웠다. 잘 안 들리던 내용이 다시 다뤄지니 그제서야 이해가 되었다. 학교 시설 안내부터 학생증 발급, 강의실, 도서실, 식당이용등 설명 설명, 또 설명해 주었다.  

    

유학생들이 생활하면서 겪는 어려움을 최소화시키려는 노력이 눈에 보였다. 적응 시간을 최소화해서 멀리서 유학 온 학생들이 공부에만 전념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시설은 직접 가이드가 데리고 다니며 안내해주었다. 대학에는 정문도 없고 끝도 없이 펼쳐지는 잔디밭에 캠퍼스만 천천히 걸어도 운동이 될 정도였다. 어딜 가나 붐비지 않고 여유가 있으며 자리 때문에 걱정할 일은 없었다.    

  

멋스러운 카페와 식당은 덤이다. 색색깔의 펜으로 그날 그날 메뉴와 가격을 쇼케이스 유리 위에 예술적인 글씨체로 써가던 직원을 잊을 수 없다. 키쉬, 샌드위치, 넓적한 피자, 보기만 해도 먹음직스럽고 배부른 음식과 스낵들이 넘치도록 진열되어 있었고 커피는 저렴한 가격에 최고의 맛을 느낄 수 있었다. ‘공부는 어렵지만 공부만 빼면(?) 괜찮겠는걸?’ 이렇게라도 위안을 삼으며 대학원생활을 시작했다. 큰 오산이라는 걸 깨닫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철저한 오리엔테이션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혼자 깨우쳐 나가야하는 것들은 끝이 없었다. 수강신청부터 난관이었으며 각 과목의 수업 준비는 일주일 내내 도서관에서 식사시간을 빼고 매달려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깨알같은 글씨의 아티클(article)을 빠짐없이 읽어야 교수의 강의를 알아 들을 수 있었다. 그래도 가르치는 것이 본업이고 경험이 풍부했던 탓인지 대략적인 이해는 했지만 더 이상의 전문적인 내용은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더구나 질문과 답변을 하는 시간에는 꿀먹은 벙어리가 따로 없다.  

   

영어교육학 수업은 인터내셔널 학생들로만 이루어진 수업도 있지만 현지 영어교사들과 함께 듣는 수업도 여러개 있었다. 그들의 본토 발음과 달변에 그저 나는 영어라는 덩어리 말을 흘려 보낼 수 밖에 없었다. 제일 힘든 건 한 문장안에 모르는 단어가 한 개도 없는데 도대체 무슨 의미인지 모르는 때가 난감했다. 교수들마다 스타일은 다르지만 공통된 것은 있다. 먼저 강의를 하고 토론 수업 그리고 발표수업으로 이루어진다. 강의는 일방적으로 듣는 것이니 들으면 된다. 




다음은 토론 수업이다. 토론을 해야하는데 나는 할말이 없었다. 할 수 없었다. 일단 말을 알아 듣는다 해도 그들의 수준에 맞는 퀄리티의 영어를 유창하게 할 수 없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이건 영어교육학을 전공하는 것이지 영어회화를 하는 것이 아니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에 대한 교수법의 구체적인 것을 영어로 얘기해야하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그 당시에는 원어민들이 학교에 많이 배치되어 있었다. 원어민들은 한국인 영어교사와 협동으로 수업발표를 해야했다. 의무이다. 몇몇 원어민들은 반발하기도 했다. ‘이런 걸 왜 해야하냐고?’ 그들을 설득해 수업준비를 해야하는 것도 한국인 교사들의 몫이었다. 학생들을 준비시키고 레슨플랜을 철저히 짜서 발표까지 한다. 원어민과 마음이 잘 맞으면 그나마 수월하지만 성격이 까다로운 원어민을 만나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더 어려웠던 건 수업이 끝나고 나서다. 수업에 대한 평을 하는데 원어민들이 수업에 대해 질문을 하거나 얘기를 하면 대답을 해야한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했던 기억 뿐이다.  

    

나도 다른 학교의 수업에 참관해야한다. 원어민과 한국인영어교사의 수업을 보고 돌아가면서 영어로 평을 해야한다. 이런 것은 좋았고 이런 것은 개선점으로 생각된다는 등의 생각을 영어로 머리를 쥐어짜며 얘기를 했다. 어렵고 떨리고 긴장되는 순간이 매번 이어졌다. 

     

그런데 이번에는 호주에서 영어로만 얘기를 해야 하는데 영어의 소용돌이, 태풍의 눈에 들어가 휘둘리는 기분이라고 하면 정확한 표현이 되려나? 사람이 바보가 되는 건 잠깐이다. 이야기의 흐름을 잡지 못하고 놓치고 남들이 얘기하는 것을 전혀 알아듣지 못하면 바보같은 기분이 든다. 심지어 질문을 전혀 알아듣지 못하고 대답을 하지 못해 다시 말해 달라고 할때의 수치심은 오래도록 남아 있다. 집으로 돌아오는 날 심장이 얼어붙은 듯 마음이 아프고 ‘왜 이곳까지 와서 이러고 있나?’ 어디 굴이라도 있으면 파고 들어가고 싶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택스트로 나누어 준 빼곡한 책자를 읽고 또 읽으며 사전을 벗 삼아 해석을 해보려 매달리는 것 뿐이었다. 원어민들 앞에서 발표 수업을 할 때는 두려움의 절정에 이른다. 조를 짜고 역할을 나눠 준비하고 발표한다. 작은 홀에 모여 준비한 만큼 발표를 하면 되는데 ‘너 어제 뭐 먹었니?’ ‘멜번 첫인상이 어때?’ ‘너 어떤 영화 좋아해?’ ‘너의 가족 소개 해줄래?’ 정도의 주제가 아니지 않은가?  

   

어떻게 하면 학생들의 영어를 발전시키고 효과적으로 가르칠 수 있는지에 대한 학문적인 접근과 그간의 노력과 당신이 앞으로 영어교사로서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연구 등을 발표하는 것이다. 수행평가는 어떻게 하는 것이 학생들의 영어 능력을 향상 시키고 흥미를 고취시킬 수 있는지에 대한 전문적인 접근에 대해 말해야 한다. 영어로 원어민들 앞에서 거침없이 준비한 것을 말해야 우리 팀의 학점이 나오는 살 떨리는 발표를 해야 하는 것이다.     




질문?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이 질문이다. ‘질문을 못 알아들으면 어떡하지?’ 라는 공포와, 알아들었음에도 이것을 내가 영어로 대답하며 쩔쩔매는 모습을 상상하면 오던 잠이 모두 달아난다. 한국의 영어교육이 통째로 혐오스러워지며 ‘나는 그동안 무엇을 했던가?’ 하는 자책이 밀려오는 경험을 매일 하며 살았다. 너무 센 걸 경험해서 그런가? 지금은 영어실력이 많이 늘은 건 아니지만 못 알아들어도 ‘그저 그런가보다. 천천히 문장을 만들면 되지 뭐’라고 하며 마음이 여유로워졌다. 지금 필요한 건 호텔 체크인, 식당에서 주문하기, 물건 사기 정도의 영어이니 얼마나 다행인가?      

이전 06화 기숙사 탈출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