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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 Aug 12. 2024

미션같은 쇼핑

단 열매

힘들게 도착한 쇼핑센터, 없는 게 없지만 넓고 커서 돌아다니려면 강한 체력이 요구되었다.  필요한 것들을 다 사고 싶었지만 들고 갈 일이 걱정이다. 한국에서 차를 갖고 다니는 것에 익숙하니 대중교통으로 많은 짐을 들고 갈 생각에 물건을 산다는 즐거움이 싹 사라졌다. 냄비, 숟가락, 포크, 나이프, 접시, 가위, 고구마, 바나나 등을 샀다. 호주의 여름은 덥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우리나라 한여름 폭염과 다를 바가 없었다. 습기만 없을 뿐, 태양은 찌를 듯 강렬했다. 갈 때는 쉽게 버스를 탔는데 되돌아 오는 것이 문제였다. 

     

쇼핑센터가 넓어 들어갈 때와 다른 문으로 나오니 어디가 어딘지 버스정류장을 찾을 수가 없었다. 혼자 사막에 떨어진 듯 무섭고 공포가 몰려왔다. 어제 있던 곳과 다른 지구 반대편에서 쇼핑을 한다. 집으로 돌아가는 방법을 모르는 미아가 된 듯, 엄마를 잃어버린 아이와 다를 바 없는 심정이다. 어른이니 울 수도 없고 심장은 뛰고 누구를 붙잡고 물어봐야하나? 물리적인 거리가 워낙 넓고 커서 보기만 해도 해결 의지가 생기기는커녕 지치는 형국이었다. 영어를 공부하러 간다는 생각만 하고 생활에 관련된 것은 준비하지 않은 나의 단순함에 놀라고 실망하기를 거듭한다.      


주위를 돌아다녀 봐도 정류장은 도통 보이지 않고 덥기는 너무 덥고. 주차하고 차에서 내리는 사람에게 버스 정류장의 위치를 물어보니 다행히 알려준다. 큰 희망을 갖지 않고 걸어갔는데 내렸던 버스정류장이 나타났다. 하지만 타려는 버스번호는 보이지 않으니 다시 절망이다. 그냥 있으면 아무도 도와주지 않으니 용기를 내 본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어보니 뒤에 있는 버스정류장으로 가란다. 그때 본 버스번호 ‘737’이 얼마나 반갑던지. 지구로 가는 탑승 버스 번호라도 발견한 듯 기뻤다. 찌는 더위에 무거운 짐을 들고 30여분을 걸으니 땀이 났다. 얼굴은 잘 익은 사과 같고 마음은 급하고 오로지 생각나는 건 남편과 딸뿐이다. 기숙사로 돌아와 벽에 붙인 딸 사진을 보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주현아, 미안해. 널 두고 온 벌인가보다. 엄마가 어떻게든 이겨내고 공부해야 하는데 많이 힘드네. 보고 싶다. 아! 집에 가고 싶다.’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고 집에 가고만 싶었다.   

   


‘괜한 고집을 부려 온 것에 대한 징벌인가?’ 무엇 하나 내가 생각한 것과 맞는 것이 없다. 예상한 것과 많이 다른 열악한 기숙사 환경, 들리지 않는 영어. 도와주는 사람 하나 없는 험악한 유학 생활의 어려움이 서서히 윤곽을 드러낸다. ‘유학 생활을 무사히 마치고 학위를 받아 갈 수 있을까? 어려움을 남편에게 솔직히 얘기해야 하나? 잘 지내고 있다고 거짓말로 일관해야 하나?’ 미지의 우주 속에 혼자 버려진 사람처럼 철저한 외로움과 두려움을 느끼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이제와 돌아보니 그때 경험한 혹독한 솔로 유학생활이 이후 해외를 마음대로 드나들게 만드는 맷집을 만들어주었다는 생각이 든다. 때로 고난은 어려움을 너끈히 이겨낼 수 있는 디딤돌이 되어준다. 지나고 보면 별 거 아닌 일도 맞닥뜨렸을 때는 넘을 수 없는 장애물로 여겨져 제자리를 맴도는 한 마리 개미가 된 듯 미약함을 느끼게 한다. 어렵게 시작한 호주 유학 생활은내 삶에 한 획을 그었고 궤적에 세피아톤으로 남아있다. 호주 유학 전과 호주 유학 후로 삶은 나뉘어지며 그곳에서의 생활은 더 넓게 생각하고 멀리 바라보며 많은 것을 담을 수 있는 그릇으로 성장하게 만들어주었다. 고생은 필요악이다. 누구나 고생은 마다하지만 견뎌내면 단 열매를 맛볼 수 있다.

      

『처음은 누구나 그렇듯 어설프고, 무지합니다. 돌이켜 보면 ‘왜 그랬을까’ 싶을 정도로 부끄러운 순간들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꽁꽁 숨겨두기만 한다면, 발전을 원하면서도 똑같은 패턴으로 일하고 생활한다면, 마찬가지로 결과 역시 똑같을 것입니다. 마음을 먹었다면 부딪히면 됩니다. 이것저것 재는 건 그 다음으로 미뤄도 충분합니다. 부딪히고 느꼈던 걸 보완하고 치열하게 고민한 결과로 계속해서 메우고 채운다면, 혹여 자신이 꿈꿨던 모습과 다르더라도 ‘충분히 만족할 만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무모하지만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온 몸으로 부딪치며 깨지는 삶을 살았다고 자부한다. 후회는 없다. 단연코 내 인생에서 호주에서의 생활이 가장 기억에 남고, 잘했다 칭찬해주고 싶은 시절이기 때문이다. 영어를 공부하러 갔지만 영어 외에 다른 것을 더 많이 배웠다. 실력이 껑충 뛴 건 아니지만 많은 체험을 할 수 있었다. 가서 직접 겪어 봐야 느끼고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겁을 내면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다. 그러나 내딛으면 그 다음 발자국도 나아갈 수 있다. 변화는 결국 시작에서 만들어지니까.   

  

출처: ‘당신은 결국 무엇이든 해내는 사람’/ 김상현, 필름,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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