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번에 처음 도착했을 때는 모나쉬(Monash) 대학교 기숙사에 들어갔다. 유학생들에게 제일 싼 숙박형태이다. 죽어 있는 날벌레 주위에 개미가 50마리쯤 모여 있다. 아무래도 청소를 해야겠다 싶어 RA(resident assistant) 에게 연락했다. 진공청소기를 빌려준다. 방이 지저분하다고 하니 사무실에 얘기해보란다. 한 직원이 와서 방에 개미약을 열심히 뿌려댄다. 가뭄 때문에 그렇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고 개미가 어디에나 출현할거라는 얘기를 한다.
결론은 참고 살아야한다는 거다. 그도 그럴 것이 온통 주위에 나무, 풀, 꽃들이다. ‘개미정도는 감수해야하나?’ 문을 열면 보이는 건 건물 5,6층 정도 높이의 나무뿐이고 들리는 건 새소리뿐이다. 아! 또 있다. 영어, 영어는 생존 수단이고 다들 영어로 의사소통을 한다. 갑자기 영어에 욱여쌈을 당한 듯 오도가도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 남들은 소통이 원활한데 나만 다른 차원에서 보이지 않는 벽에 가로막혀 갇혀있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기숙사 방의 벽은 시멘트 블록으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나라 아파트처럼 벽지가 발라진 것이 아니다 보니 썰렁하다. 한국에서 본 모나쉬 대학교 홈페이지의 사진과는 많이 달랐다. 아늑하고 편안해 보이는 방과 시설들까지는 기대하지 않은 내 눈에도 차이가 커 보였다. 침대는 뒤척일 때마다 삐걱거리고 이전에 누가 사용했는지 방 전체에 불쾌한 냄새가 스며 있었다. 일주일을 뜬눈으로 밤을 새우다시피 했다.
주방, 화장실, 세탁실이 공용인데 주방이 제일 문제였다. 뭘 해 먹으려고 해도 지저분한 것이 눈에 띄니 도통 요리해 먹을 마음이 들지 않았다. 양념병에 흐른 잔여물을 따라 개미들이 줄을 지어 올라가고 내려가고 있었다. 세탁실을 사용하러 가면 영어 원어민들이 대화를 시도하는데 창피하게도 간단한 인사 외에 정확히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은 없었다. ‘난 그동안 무엇을 공부한 걸까? 왜 먼 곳에 와 사서 고생하고 있을까?’ 누가 떠민 것이 아니니 하소연할 수도 없고 답답하기만 했다. 1년을 공부하고 시험에 합격해 떠난 유학길인데 도착하고 하루가 지나지 않아 어이없게도 후회가 밀려왔다.
알아본다고 최선을 다 했지만 현지에 와서 부딪치는 생활은 어려움 그 자체였다. 필요한 것을 사기 위해 대형 쇼핑센터에 가야 했다. 버스를 어떻게 타는 것인지, 버스표를 어디서 사는지, 버스비와 지하철 요금이 얼마인지 등의 사전 정보를 갖고 있지 않았다. ‘현금만 있으면 되겠지?’라는 무식한 정신으로 버스를 탔다.
요금을 내려고 하니 운전기사가 뭐라고 얘기를 하는데 알아들을 수 없었다. 용어 자체도 생소하고 후루룩 빨리 얘기해버리는 바람에 재차 얘기를 들었지만 요금 시스템을 이해하기에는 내 영어 듣기실력이 형편없었다. ‘와! 버스 타기도 힘드네’. 계속 못 알아듣자, 기가 막히는지 운전기사는 요금 받기를 포기하고 그냥 가서 앉으라고 말했다. 버스 안에 있는 사람들이 나만 쳐다보는 듯, 옷을 다 입고 있는데도 홀딱 벗고 있는 듯 부끄럽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내 인생 최대의 난관이 줄줄이 이어지는 서막이 열린 것이다. 그렇게 오고 싶어 시도했는데 오자마자부터 계속 후회되고 가족 생각만 나 견딜 수 없는 하루하루가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