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해 깊이 넣어두었던 추억을 꺼내 본다. 가고 싶지만 갈 수 없는, 태어난 곳이 아닌데도 고향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리운 멜번을 다시 떠올려본다. 20년 전 공부하러 떠났던 호주 멜번. 그 당시, 시드니는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졌지만 멜번은 다소 생소한 곳이었다.
5살짜리 딸을 둔 교사 엄마는 아이를 시댁 형님에게 맡기고 대학원 공부를 하기 위해 혼자 낯선 곳으로 떠난다. 공항까지 마중 나온 딸과 어떻게 헤어져야 할지가 가장 어려운 숙제였다. 간단한 인사 후 아빠의 손을 잡고 집으로 가는 딸 아이의 뒷모습이 생각나 기숙사에서 많이도 울었다.
해외 여행은 여러 번 해 보았지만 길게 머물러 간다는 건 다른 문제다. 어떤 역경이 기다리고 있을지 아무 것도 모르고 두려움과 기대를 잔뜩 안고 출발했다. 도착해 가방에 넣어 둔 남편의 편지를 읽으며 펑펑 울었다. ‘많이 반대했지만 결국 가게 된 유학이니 잘 적응하고 건강히 있다 오라’며 응원하는 글이었다.
공부한다고 아이를 남편에게 맡기고 강남에 있는 학원으로 일주일에 두 번씩 다니며 늦은 밤 두 번째 퇴근을 했다. '왜 여자는 유학을 가면 안되냐'고 남편과 싸우던 지난날이 생각난다. 결국 반강제로 허락을 받고 유학길에 오른 것이다. 계획했던 일은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았고 지금은 그저 그 시절을 추억하며 멜번을 그릴뿐이다. 겨우 1년 반 체류했지만 그곳에서의 하루하루가, 발걸음을 내딛었던 모든 곳이 그립다.
자다가 꿈을 꾸었다. 집 앞에서 멜번 가는 버스가 생겼다는 것이다. 47번 버스. 번호도 선명하게 기억난다. 꿈 속에서도 놀라고 많이 좋아했다. 추억은 빛이 바래고 기억에서 사라지기 마련인데 모든 것은 상대적인가보다. 선별적 기억장치가 있어 특별한 것은 오래도록 남는다. 아직도 생생한 그곳에서의 날들을 다시 수면 위로 띄워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