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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 Sep 03. 2024

해보기 전에 말하지 말자

남편: 100타 안으로만 치면 좋겠다

나: 너무 늦게 시작했어 

남편: 아니야, 막차라도 탄 게 어디야?

나: 오른쪽 팔을 최대한 붙이고 왼쪽 어깨를 내밀어    

 

이기주의 ‘사랑은 내 시간을 기꺼이 건네주는 것이다’에는 걷기로 분노를 다스리는 이누이트족의 이야기가 나온다.    

 

극지에 사는 이누이트들은 분노를 현명하게 다스린다. 아니, 놓아준다. 그들은 확 치밀어 오르면 하던 일을 멈추고 무작정 걷는다고 한다. 언제까지? 분노의 감정이 스르륵 가라앉을 때까지. 그리고 충분히 멀리 왔다 싶으면 그 자리에 긴 막대기 하나를 꽂아두고 온다. 미움, 원망, 서러움으로 얼키고 설킨, 누군가에게 화상을 입힐지도 모르는 지나치게 뜨거운 감정을 그곳에 남겨두고 돌아오는 것이다.   

   



나는 걷기 예찬론자다. 걸어서 이렇게 분노의 감정을 다스리곤 했다. 그 감정이 없어지는 건 아니다. 어디에 내려놓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잠깐 큰불을 잠재울 뿐 잔불은 꺼지지 않고 남아 언제든 다시 활활 타오를 수 있다. 그래도 위기의 순간에 어찌할 도리가 없을 때 걷는 것은 도움이 된다. 누구도 마주하고 싶지 않은 깊은 절망과 슬픔의 시간에 걸었다. 누구의 위로도 도움이 되지 않고 내 지혜로 해결 되지 않는 막다른 골목에 봉착했을 때 긴 시간 로봇처럼 걸었다. 걷기는 매직처럼 생각을 순환시키고 좋은 에너지를 펌프질 해 큰 문제의 사이즈를 줄여놓는다. 긍정적인 생각이 솟아오르고 뇌의 생각 회로를 최대한 가동시켜 솔루션을 내어놓기도 한다.     


걸으면서 계속 나쁜 생각을 하기는 쉽지 않다. 문제를 다각도로 여러 차원에서 다양하게 바라본다. 어떻게 받아들이는 것이 가장 좋을지 생각한다. 작은 해결책이라도 도출해내려 노력한다. 이러한 과정은 마음먹고 ‘이렇게 해야지’가 아니다. 걷다 보면, 가는 줄이 거미의 몸 안에서 나오듯이 내 안에서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실처럼 생성되는 기분이다.    

  




걷기만 하던 내게 남편이 골프를 추천했다. 걷기도 좋지만 스포츠를 함께 해보는 것이 어떠냐는 것이다. 푸른 자연을 좋아하고 나이가 들어서도 할 수 있는 격하지 않은 운동이니 더 늦기 전에 입문하자는 거였다. 50대 중반이니 늦은 출발이다.     


골프 치는 사람들에게 관심이 없었고 멀쩡한 산을 깎아 골프장을 만든다는 것에 거부감이 있었다. 무엇보다 배우고 치러 갈 시간이 없었다. 평일은 내내 일을 하고 파김치가 되어 돌아온다. 주말은 막히는 도로를 뚫고 갈 만큼 젊지 않았으며 골프에 대한 매력을 알아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골프클럽도 비싸고 티셔츠 하나에 몇 십만원이라는 걸 알고 놀랐다. 그린피, 카트비, 캐디비등 치러야할 비용도 많다. 멀리까지 가야하고 네 명이 충족되어야 입장할 수 있다. 


4명이 기본 정원이니 3명이 가도 4명의 비용을 내야한다는 것에 더 놀랐다. 이전에 공항에서 랩핑된 거대한 골프클럽을 카트에 싣고 왔다갔다하는 사람들을 보며 ‘굳이 저렇게까지 해서 골프를 쳐야하나?’ 하며 이해하지 못했다. ‘이런 내가 골프에 취미를 붙일 수 있을까?’   

   

여러 가지 육체적인 증상으로 정신까지 우울해지고 다운되어있을 때 남편의 제안은 거절하기 힘들었다. ‘어렵고 안 맞으면 하다가 그만두면 되지.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들 치고 먼 곳을 운전해 가면서 치러 가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거야. 사교를 하려면 꼭 필요하다는데 안 가본 길을 가보자. 새로운 세계로의 문을 열어보자. 번지점프나 패러글라이딩같이 위험한 극한 스포츠도 아니다. 넓은 들판에서 스틱으로 공을 치는 것인데 위험하지는 않겠지. 점점 하다보면 실력도 늘겠지?’ 마음을 고쳐먹고 접근해보기로 결정했다. 

      




레슨을 받았다. 개인 레슨은 비용이 많이 든다. 대학교 평생학습원에서 3개월에 48만원이라고 하여 등록했다. 평일 낮시간에 골프를 배우러 간다는 것이 생소했다. ‘이 시간쯤이면 5교시 수업을 하고 있을 시간인데... 여기에 이렇게 서 있네’ 연습장의 푸른 하늘과 산자락을 보고 있으면 이질감이 느껴졌다.   

   

늘 있던 장소가 아닌 다른 곳에 있는 나, 좋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하다. 골프클럽을 들고 있는 모습도 익숙해지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운동을 좋아하지 않고 새로운 걸 시도도 잘 하지 않는다. 어차피 잘 못할 거고 스트레스 받을텐데 궂이 시작하고 싶지 않아서다. ‘골프에 대해 얘기를 많이 하니 조금이라도 배워두는 건 나쁘지 않겠지’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갔다. 처음에는 골프장에 있는 연습용 클럽으로 배운다. 잡는 그립이 튀어 나와있어 초보자에게 도움이 된다.  

    



언급하고 싶은 건 가르치는 사람의 중요성이다. 만나는 사람이 없던 내게 강사는 골프 연습장을 갈 때 마다 큰 웃음을 주었다. ‘선생님 덕분에 오늘 처음 웃어봐요.’라는 말을 안 할 수 없다. 가르치는 스킬도 중요하지만 재미도 있어야한다. 골프에 대한 거부감을 갖지 않도록 쉽고 유쾌하게 가르쳐주었다. 가르칠 건 다 가르치면서 지루하지 않게 수업을 이끌었다. 어쩌다 웃기고 어쩌다 유쾌한 것이 아니라 매번 새로 가르치듯이 성의를 다해 가르치고 재미있게 가르쳐주었다. 개인적인 어려움이나 컨디션의 난조도 있을텐데 운동을 오래 한 사람이라 그런지 멘탈관리, 체력관리가 놀라울만큼 일관성이 있었다. 그것 하나로도 이미 많은 것을 배운 셈이다.     

10여명이 넘는 강습생들 모두 선생님과 대화를 하면 웃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잘 못치면 유치한 장난을 한다. 경찰서에 전화 거는 시늉을 하며 ‘여보세요, 여기 골프 진짜 못 치는 사람 있는데 좀 오셔야 할 거 같아요.’ 라며 농담을 한다. 선생님 자체가 유머가 많으니 무슨 말을 하든, 어떤 행동을 하든 웃음이 나왔다. 가장자리에 있는 타이어를 가리키며 ‘저걸 끌고 다니며 근력 운동을 해서 힘을 키워야한다’고 말한다. ‘산꼭대기에 올라가면 골프장이 있는데 거기서 수련을 해야한다’고도 하며 웃긴다. 


가뜩이나 초보라 주눅이 들어 있는데 경직된 분위기에서 어려운 이론만으로 접근했다면 몇 번 가다가 그만 두었을 것이다. 놀러가듯 유쾌한 기분으로 도착해 대화와 샷으로 우울함을 날릴 수 있었다. 때로는 가까이 있는 사람보다 다소 심리적으로 멀리 있는 사람에게서 뜻하지 않은 위로를 받을 때가 있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인연을 맺어야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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