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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 Aug 30. 2024

수면 놀람증

복도를 걸어가는데 연기가 되어 사라질 것 같다. 아니면 몸이 녹아 스르르 없어질 것도 같다. 에니메이션에서 자주 보던 장면처럼. 어느 날은 롤러코스터를 탔을 때처럼 심장이 갑자기 뚝 떨어진다. 종합병원 여러군데에 가서 심장검사를 해 보았는데 이상이 없다고 신경정신과에 가보란다. 많은 경우 심리적인 것이 원인이라며. 혹독한 갱년기가 시작되었다.     


자려고 누웠는데 머리 속에서 정전기를 일으키듯 하얀 폭탄이 터진다. 깜짝 놀라 깬다. 공포심에 잠은 멀리 달아나고 그 이후로 깜빡 잠이 들다 다시 깬다. 가장 힘든 건 자다가 깨는 것인데 원인은 놀람증이다. 누가 얼음을 한 바가지 작정하고 얼굴에 쏟아부은 듯하다. 벌떡 일어나 사위를 둘러보지만 고요하고, 이승인지 저승인지 모르겠다. 한참 동안 정신을 차릴 수 없어 진정시키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신경외과, 신경과를 여러 군데 다녔다. 생전 처음 겪어 보는 증상에 정신은 혼비백산이다. ‘의사 입에서 무슨 험한 소리가 나올까?’ 보통 긴장되는 것이 아니다. ‘오늘은 특별한 것이 나오려나? 결과가 나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지?’ 멘탈은 깨진 유리잔처럼 이미 산산조각이다.   

     

네 군데 병원에서 뇌 검사를 했다. 두 군데 병원과 다른 두 군데 병원 의사의 진단이 달랐다. 같은 병원에서도 의사마다 소견이 달랐다. MRI를 찍어도 특별한 이상이 없다. 그마나 다행인걸까?  머리에 껌 같은 걸 여러 개 붙이고 검사한다. 증상이 나타날 때마다 기록되고 뇌파가 고장났는지 여부를 검사한다. 1차 간단한 검사에서는 아무 이상이 없다. 2차 검사는 머리에 외계인처럼 온갖 줄을 붙이고 증상을 기록하는 가방을 옆구리에 차고 하루를 병실에서 잔다. 쉽게 잠들리 없다. 약을 먹지 않고 누워서 자야 하는데 곤욕이다. 잠들기 전 예의 그 번개가 머릿속에서 번쩍하는 증상을 느꼈는데 검사결과는 이상이 없단다.      


병명은 ‘근간대성 경련’, 또는 ‘수면 놀람증’이다. 입면 시 뇌파가 미세한 경련을 일으킨다는 것인데 누워서 눈을 감고 있을 때 느끼면 대단히 공포스럽다. 미처 아무런 준비도 없이 창졸간에 증상이 나타난다. 질병이라는 것이 그렇게 갑자기
도둑같이 들이닥친다.     


1년 동안 약을 먹으며 버티다가 명예 퇴임을 했다. 치료제는 없고 약을 안 먹으면 잠을 잘 수 없으니 증상을 잠재우는 약을 먹는다. 약을 안 먹고 잠들기 위해 몸을 피곤하게 했지만 경련으로 잠은 저 멀리 우주로 날아가 버린다. 의사들은 그냥 약 먹고 주무시라고 얘기한다. 그러나 내 몸에 들어가는 약이 ‘항경련제’이다 보니 어떻게든 약을 줄이고 싶었다. 반 알로 줄여보고 4분의 1로 줄여보려 노력한다. 어떤 날은 밤을 샌다. 바로 눕고 옆으로 누워도 보고 엎드려도 보았지만 두려움에 잠은 사라진다. 이런 날은 하루 이틀 한 달, 두 달 계속된다.       




다음 날 컨디션은 구름 낀 하늘이니 뭘 해도 즐겁지 않다. 어깨에 쌀가마니를 지고 다니는 듯 몸이 무겁고 신경은 날카로워 잘못도 없는 가족에게 화를 내기 일쑤다. 더구나 바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있는 남편은 화살의 과녁이 된다. ‘누군 안 바쁜가? 세상 일을 혼자 다하나? 부인이 이렇게 고통받고 있는데 병원에서 검사한 결과는 같이 가서 들어야 하는 거 아닌가?’ 온갖 원망의 표적이 된다. 지방 출장이 잦은 남편은 전화만 줄곧 해댄다. 검사도 혼자 하고 결과도 혼자 듣고 밤에도 혼자 잠드려 애쓴다. 결국 혼자다. 가족이지만 그 누구도 나의 아픔과 고통을 대신 해 줄 수 없다. 나 또한 그들의 고통을 대신 해 줄 수 없듯이. 

    

9시부터 졸리고 11시부터 자던 사람이다. 업무와 집안일로 몸은 물에 담근 솜처럼 무겁고 가수면 상태를 유지하던 사람이라 눕기 무섭게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아무리 직장에서 고민되는 일이 있어도, 사람들과의 관계로 기분이 나빠도 눈을 감았다 뜨면 아침이었다. 눈감았다 떴는데 왜 벌써 아침이냐며 불평하던 사람이다. 항상 잠이 고팠고 주말에는 11시까지 잤다. 잠이 안 온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고 언제나 잘 잤으며 불면증으로 고생해본 적이 없다. 수면제? 그런건 먹으면 큰일 나는 줄 알았다. 

   

모든 일이 남의 일이 아닌 나의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모든 것은 내 앞에서 무너져야 뒤로 물러나게 되어 있다. 


불덩어리가 바로 코 앞에 떨어져야 ‘아, 불이 났구나. 나도 타 죽을 수 있겠구나’하고 놀라는 것이 인간이다.     


‘차라리 약을 먹는 것이 낫지 않을까? 남들은 수면제도 몇 십년씩 먹는데 나라고 뭐 특별한가? 약 먹고 자는 게 낫지’ 조금씩 약과 타협한다. 살기 위해 먹는 것이고 약이 좋아서 먹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불변의 법칙’에 나오는 구절에 희망을 가져본다. 이것도 나의 삶이니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것밖에 도리가 없다. 좋은 이야기에도 나쁜 이야기에도 둔감해지지 말아야 한다. 좋은 상황도 나쁜 상황도 영원할 거라고 믿지 말아야겠다.      


탐욕과 두려움의 사이클은 흔히 이렇게 진행된다 

 


   

우리는 좋은 상황이 영원할 거라고 믿는다

그러면 나쁜 이야기에 둔감해진다

그다음엔 나쁜 이야기를 무시한다

그다음엔 나쁜 이야기를 부인한다

그다음엔 나쁜 상황 앞에서 패닉에 빠진다

그다음엔 나쁜 상황을 받아들인다

이제 나쁜 상황이 영원할 거라고 믿는다

그러면 좋은 이야기에 둔감해진다

그다음엔 좋은 이야기를 무시한다.

그다음엔 좋은 이야기를 부인한다.

그다음엔 좋은 상황을 받아들인다

이제 좋은 상황이 영원할 거라고 믿는다  



   

출처: Same as ever 불변의 법칙 (모건 하우절, 서삼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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