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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 Sep 16. 2024

어김없이 모닝티(morning tea)

다음날은 학교에서 제공하는 여러 가지 서비스(주차, 도서관, IT)등에 대한 짧은 소개가 있었다. 어김없이 10시 45분에는 모닝티 시간이 있다. 항상 제공되는 간단한 차와 비스킷, 머핀, 케익은 맛있었다. 크기는 과장하자면 우리나라 것의 약 3배정도, 머핀 하나만 먹어도 배가 부르다. 그 시간을 기다리며 오리엔테이션을 견뎠다고 해도 틀리지 않다. 알아듣지 못하는 영어의 홍수 속에서 뭐라도 붙잡으려 애쓰며 버텼다. 빵을 좋아하기도 했지만 디저트가 예쁘고 거대하게 쌓여있어 바라만 봐도 행복했다.   

   

색색깔의 플라스틱 컵과 다양한 맛의 머핀탑. 보는 것만으로도 문화충격이고 안 먹어도 배부르다는 표현이 생각났다. 하나만 먹어도 배불러 다른 여러 가지를 맛보는 건 불가능했다.    

  



다음은 워크샵 시간인데 네 개 주제로 나뉘어져 있어 듣고 싶은 것을 오전에 하나, 오후에 하나 들을 수 있었다. 오전에는 ‘에세이 쓰기’를 듣고 오후에는 ‘시간 관리’에 대한 내용을 들었다. 대학원 과정이라 장년기에 접어든 학생들도 많이 보인다. 나이 지긋하신 분들이 돋보기 쓰고 워크샵에 귀기울이는 모습이 보기 좋고 내용은 많은 도움을 주었다.       


짧지 않은 오리엔테이션 시간 동안 느낀 것이 많다. 무엇이든 대충은 없고 서두르지도 않는다. 같은 내용을 여러번 반복해서 학생들이 이해하기 쉽게 만들어준다. 도서관 투어는 3월 한달 내내 이루어진다. 한번 참여해봤는데 10분정도 파워포인트로 설명을 듣고 가이드를 따라 도서관 시설과 내부를 돌면서 자세한 설명을 다시 듣는다. 매일 이어지는 오리엔테이션에서는 어김없이 모닝티 시간이 있었고 점심은 무료로 제공되었다. 

     

대학을 떠난 지 오래되어 우리나라 대학교의 오리엔테이션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알 수 없다. 대학마다 다르니 비교할 수도 없다. 호주 모나쉬 대학원의 오리엔테이션은 만족스러웠다. 철저히 학생중심으로 이루어지고, 내용은 편안하게 대학생활에 적응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학교에 대한 이미지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갖도록 해주었다.   



    

어디에나 함께 숨 쉬는 숲과도 같은 녹지는 보기만 해도 눈과 마음이 시원해졌고 여기가 대학교 강의실이 맞나 싶을 정도로 세련된 인테리어의 강의실은 보는 재미가 있었다. 나만 잘하면 아무 문제가 없었다. 중간중간 마련된 모닝티시간은 딱딱하게 얼어버린 마음을 녹이는 역할을 톡톡히 해주었다.    

       

‘밥퍼 목사’로 잘 알려진 최일도 목사님과 사모님이 함께 멜번에 있는 한 교회를 방문하셔서  설교를 들으러 갔다. 그 당시 교회를 다니고 있어 다른 성도들과 함께 새벽에 차를 타고 대형 교회 부흥회에 갔다. 설교말씀은 귀에 와서 제대로 박히고 새벽에 도착해 졸릴만도 한데 정신이 바짝 드는 에피소드들에 재미있고 성령이 충만한 부흥회를 마쳤다. 어김없이 모닝티 시간이 주어졌다. 눈을 의심했다. 


테이블에는 크로와상 탑이 쌓여있었다. 크로와상을 빵 중에 최고라고 여기는데 거대한 크기와 양에 먹기 전에 질려 버렸다. 그 당시 한국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청포도가 함께 놓여있었다. 퍽퍽한 빵과 함께 어우러지기에 청포도만한 것이 없다. 그리고 커피나 차가 있다. 파티 수준이다. 색색깔의 플라스틱 컵이 놓여있고 부족함 없는 훌륭한 모두의 아침 식탁이 준비되어 있었다. 


이곳의 크로와상은 버터를 많이 써서인지 바삭하고 부드럽고 진하고 맛있다. 호주가 낙농국가다 보니 유제품이 모두 맛있고 진하다. 그런 우유로 버터를 만들고 그런 버터로 크로와상을 만든 것이다. 성령 충만한 말씀을 듣고 주위 성도들과 함께 먹는 브런치는 낯선 곳에서의 허덕지덕한 삶을 외롭지 않게 해 주었다.   

   



다니던 모나쉬 대학교 내에는 몇 개의 카페가 있었다. 살던 쉐어하우스에서 도보로 40분이면 도착하는 학교 입구에는 이태리 가족들이 새로 문을 연 카페가 있었다. 사장님이 줄리엣 비노쉬를 닮았다. 봐도 봐도 신기하고 언뜻 보면 배우랑 비슷해 여자인 나도 자꾸 흘끗거렸다. 2.8호주 달러. 3,000원 정도의 가격으로 세련되고 맛있는 커피를 마셨다. 물어보고 싶었다. ‘커피에다 무슨 짓을 한 거니?’ 커피에 대해 잘 모르지만 맛은 평가할 수 있었던지라 궁금하기도 하고 그들에게 고맙기까지 했다. 우거진 나무 아래 카페 앞 벤치에서 먹는 커피는 세상근심과 공부에 대한 어려움과 발표에 대한 두려움을 잠시나마 잊게 만들었다.


     



도서관 옆에 본격적으로 학생들의 식사를 해결해주던 ‘Den’이라는 카페를 빠뜨릴 수 없다. 늘 ‘모카치노’를 마셨더니 직원이 내 차례가 되니 본인이 알아서 ‘모카치노?’하며 묻는다. 웃으며 그렇다고 할 수밖에. 머그컵이 아닌 정통 커피잔에 담긴 커피는 찰랑찰랑하다. 얼른 한모금 마시지 않으면 흘러넘칠 정도로 위태롭게 담겨있다. 풍미가 가득하고 맛이 더할 수 없이 좋다. 쇼케이스에는 색감도 화려한 식사와 디저트들이 즐비하게 놓여있다. 자태가 곱기도 하고 사랑스럽기도 하다.      


안에 내용물이 빵밖으로 삐져 나올 정도로 꽉 찬 샌드위치와 하나 먹으면 든든할 것 같은 시금치 키쉬, 피자등 좋아하는 메뉴들이 가득하다. 더 기억에 남는 건 직원이 유리로 된 쇼케이스 위에 칼라마커펜으로 메뉴와 가격을 써놓는 장면이다. 출근하다시피 들러 커피를 마셨는데 시간이 맞아서인지 직원이 가격 쓰는 것을 자주 볼 수 있었다. 글씨도 예술이고 색감도 예술적이다. 고정되어 변하지 않는 메뉴와 가격이 아니라 메뉴도 바뀌고 가격도 유동적이라 매일 다시 써야하는 그 새로움과 변화는 보는 재미가 있다. 나와의 모닝티시간이 없었다면 힘든 유학생활에 안착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공부는 하기 싫고 카페는 멋있으니 자주 들러 혼자 공부하러 온 자의 외로움과 고단함을 달랬었다. 그립고 또 그립다. 가끔은 카페에서 가수가 노래도 불렀다. 대학교 카페내에서 소소하게 공연을 한거다. ‘피쉬앤 칩스’와 커피를 함께하며 노래를 들으면 다시 *맹아가 된 듯 힘겨운 유학생활을 이겨낼 힘이 생기곤 했다. 어렵고 힘들긴 해도 공부하러 오길 잘했다고 생각하는 순간들 중 손에 꼽히는 순간이다.      


*맹아: 풀이나 나무에 새로 돋아 나오는 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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