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별빛 박용운 Oct 19. 2022

파스칼의 우연(偶然)

“계획된 우연 이론 (panned hap-penstance theory)

                

   아주 오래전 읽었던 책을 다시 꺼내 읽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일상이 바쁘기도 하고 읽을만한 책들이 꾸준히 눈에 띄기 때문이다. 지금 읽는 책에 더욱 마음을 담아 읽어야 한다는 생각마저 든다.

  오래전 읽으며 마음에 담아 두었던 구절들도 그러하다. 내용에 대한 기억이 희미하거나 정확한 문장이 떠오르지 않을 때면 다시 책을 찾아보아야 하지만 그 또한 쉽지 않다. 이런저런 이유로 당장 책이 없다면 더욱더 아쉬울 것이다.      

  파스칼의 ‘팡세’가 떠오른다. ‘생각’을 뜻하는 ‘팡세’라는 말이 강렬했기 때문일까. 젊은 시절 충분히 이해하기 힘든 문장이 많았지만 그래도 애정을 갖고 읽었던 기억이 새롭다. 물론 기억이 희미하고 정확한 문장에 대한 자신도 없지만, 지금까지 남아있는 내용 중에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직업을 선택하는 일인데, 그것을 결정하는 것은 ‘우연’이라는 문장이다.     

  미국에서 직업을 상담하는 일로 널리 알려진 크롬 볼츠 또한 비슷한 말을 했다. “직업 선택은 자신의 능력이나 적성보다는 살면서 마주치는 다양한 우연적인 사건들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라고 

  그런 현상을 “계획된 우연 이론(panned hap-penstance theory)”이라고 부른다고 하니 제법 체계를 갖춘 이론이지 싶다. 우연이 진로를 정한다는 말을 떠올리게 된 일이 최근에 있었다. “남아있는 모든 것”이라는 책을 접하며 ”죽음이 삶에 남긴 이야기들 “이라는 부재가 달린 책이었다. 죽음의 의미가 무엇인지, 사랑하는 사람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떠난 사람을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지 등의 내용이 담겼는데 재미있고도 따뜻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자칫 딱딱하고 무거울 수 있는 죽음에 관한 이야기가 진지하면서도 유머러스하게 이어 간다.      

  책 서두에 저자 ’ 수 블랙‘은 자신의 첫 아르바이트 이야기를 한다. 부모님의 확고한 직업윤리에 따라 열두 살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는데, 첫 번째 일은 정육점에서 일하는 것이었다. 다른 친구들이 약국이나 슈퍼마켓, 옷가게 등에서 일하는 것과는 아주 다른 선택이었다. 그곳에서 고기를 다루는 일을 하면서 저자는 미래의 해부학자 또는 법 인류학자의 꿈을 키워 간다. 물론 그 당시만 해도 자신이 전혀 다른 길을 걷게 되리라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한 채 말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때 그 일이 그의 길을 선택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이다. 세상이 정해 놓은 검증된 길로 가라고, 그것도 남보다 앞서려고 자신을 닦달할 일이 아니다. 오히려 다양한 경험의 기회를 주어야 한다. 생각하지 못한 순간 우연히 접한 경험이 삶의 방향과 길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작가의 이전글 낙엽(落葉)은 지는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