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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빛 박용운 Feb 19. 2022

박인환의 목마와 숙녀(1)

버지니아 울프

내가 좋아하는 시 중에 “목마와 숙녀“란 시가 있다. 시인 박 인환선생이 쓴 작품으로 그 시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生涯)와 목마(木馬)를 타고 떠난 

숙녀(淑女)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거저 방울 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서 별이 떨어진다 상심(傷心)한 별은 내 가슴에 가벼웁게 부숴진다 

그러한 잠시 내가 알던 소녀(少女)는 정원(庭園)의 초목(草木) 옆에서 자라고 

문학(文學)이 죽고 인생(人生)이 죽고 사랑의 진리마저 애증(愛憎)의 그림자를 버릴 때 

목마(木馬)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세월은 가고 오는 것 한때는 고립(孤立)을 피하여 시들어 가고 

이제 우리는 작별(作別)하여야 한다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늙은 여류작가의 눈을 바라다 보아야 한다

등대(燈臺)에 불이 보이지 않아도 그저 간직한 페시미즘의 미래(未來)를 위하여 

우리는 처량한 목마(木馬) 소리를 기억(記憶)하여야 한다 

모든 것이 떠나든 죽든 그저 가슴에 남은 희미한 의식(意識)을 붙잡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두 개의 바위 틈을 지나 청춘(靑春)을 찾는 뱀과 같이 눈을 뜨고 한 잔의 술을 마셔야 한다 

인생(人生)은 외롭지도 않고 거저 잡지(雜誌)의 표지(表紙)처럼 통속(通俗)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목마는 하늘에 있고 방울 소리는 귓전에 철렁거리는데 

가을 바람 소리는 내 쓰러진 술병 속에서 목메어 우는데"


―박인환(朴寅煥)· 1926~1956)의 「목마와 숙녀」 


  박인환(1926~1956)의 20주기였던 1976년 3월 고인의 유족이 엮어 펴낸 시집에 ‘목마와 숙녀’라는 표제가 붙었다. 이 시를 읽으면 나는 언제나 가슴을 흔드는 것 같이 공감하곤 한다. 내가 태어나기 수년 전 31살의 나이로 세상을 뜬 시인 박인환! 너무 안타까운 나이였다. 죽기 전 사흘 동안 과음과 심장마비가 원인이었다고 한다. 이 시를 발표한지 꼭 5개월 후였다. 

  이 시를 가수 박인희의 토크송을 통해 처음 듣던 날을 잊지 못한다. 전율했다고나 할까. 그냥 떨렸고 어떤 무시무시한 정체가 나를 꼼짝 못 하게 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수많은 상념이 찾아왔고 버지니아 울프가 궁금해졌으며 페시미즘 pessimism은 아주 깊숙이 자리하기 시작했다. 잠시였지만 거의 단숨에 다 외울 정도로 지금도 잊지 않고 있는 몇 안 되는 시 중의 한 편이다.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로 시작하는 이 작품의 감상적 시행들은 이 시를 알고 있는 사람들 대부분에게, 종이 위의 활자로서보다는, 그 시행들만큼이나 감상적인 배경음악과 거기 실린 박인희의 목소리로 기억되고 있다. 


  그러나 곧이곧대로 말하자면, ‘목마와 숙녀’는 시인이 작고하기 한 해 전(1955년) 출간된 ‘박인환 선 시집’(산호장 간행)의 개정판 격이라 할 수 있다. ‘박인환 선 시집’의 수록 작품을 거의 고스란히 옮기고 거기 빠져 있던 작품 일곱 편을 보탠 것이 ‘목마와 숙녀’이기 때문이다. ‘박인환 선 시집’이 시인 생전에 나온 유일한 시집이므로, ‘목마와 숙녀’는 박인환의 시를 얼추 망라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시인의 초기 작품인 ‘인도네시아 인민에게 주는 시’(1948)를 비롯해 몇몇 시가 빠져 이 시집이 박인환의 시 전집이 되지 못한 것은 당시의 엄혹한 정치 상황에 대한 고려 탓이었을 것이다.


  “전 인민은 일치단결하여 스콜처럼 부서져라/ 국가방위와 인민전선을 위해 피를 뿌려라” 같은 선동이, 비록 시대와 대상을 달리해 발설됐다 하더라도, 유신 체제 아래서 버젓이 활자화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박인환이 누린 생애는 서른 해에도 채 이르지 못했고, 그의 작품 활동은 생애 마지막 열 해 동안 이뤄졌다. 물론 20대의 10년은 큰 시인이 되기에 짧은 기간이 아니다. 소월이 그것을 증명한 바 있다. 소월처럼 요절하지는 않았지만, 서정주나 이용악도 이미 20대에 커다란 시인이었다. 더 나아가, 아르투르 랭보는 10대 후반 다섯 해의 작업만으로 큰 시인이 되었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타고난 재능이 필요하다.

  누구나 소월이나 랭보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 재능을 타고나지 못한 시인에게는 이드거니 재능을 벼릴 시간이 필요하다. 박인환은 뒤쪽에 속했다. 

  시어 하나하나가 가슴에 박힌 채로 지난 세월을 살지 않았나. 몇 년 전 우연히 강원도 인제군에 있는 박인환 문학관에 갔을 때도 「세월이 가면」과 함께 스피커를 통해 계속 이 시가 흘러나왔다. 그는 요절한 시인이다. ‘마리서사’란 서점을 운영하기도 했고, 이 시만큼 우울과 고독 등 도시적 서정과 시대적 고뇌를 노래한 작품이 또 있을까 싶다. 해마다 가을이 깊어지면 문득문득 떠오르며 그가 그리워진다. 아마도 이 시는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일필휘지一筆揮之로 썼음에 틀림없다. 시인 덕분에 저는 평생 버지니아 울프의 전작 주의자가 됐다. 평생 『등대로- To the lighthouse』를 비롯하여 그녀의 작품을 읽었다. 박인환은 천생 시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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