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숏폼소설] 분류

by 홍윤표

분류사의 일을 한 줄로 요약하면 이렇다. 생물과 무생물을 분류하는 것. 하지만 업무 내용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그리 간단하지 않다는 걸 쉽게 알 수 있다.
채집한 사물에 특정 실험을 시행하여 그 사물이 생물인지 아닌지 분류해야 하는데, 실험 대상이 어마어마하게 많다. 사물에 생명이 생긴 게 벌써 5년 전이고, 인류가 분류작업을 시작한 게 4년 전이지만 세상엔 아직 분류작업을 끝내지 못한 사물이 차고 넘친다. 전 세계는 4년 전 제2차 생물다양성협약을 맺고 자국 내에서 발견한 생물에 대한 자세한 목록을 공유하고 주기적인 감시체계를 의무화하였지만, 모두 조금씩 회의적으로 돌아섰다. 이미 영국과 캐나다, 브라질, 인도, 핀란드, 스웨덴이 협약에서 탈퇴했고, 그보다 더 많은 국가가 탈퇴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분류작업이 너무나 더뎠고, 분류작업으로 인한 실효성이 아직 없기 때문이다.

지구상의 유기체는 식물적 유기체와 동물적 유기체로 나눌 수 있다. 그리고 이 둘을 나누는 가장 큰 기준은 유동성이다. 그런 점에서 생명화 된 사물은 식물적 유기체에 가깝다. 스스로 움직이지도 못하고 소리를 내거나 감정을 표현하지도 못한다. 하지만 세포구조로 되어 있으며 미약하나마 물질대사도 하고 있다.
분류작업에 회의적인 이들의 가장 큰 주장은 이거다. 예를 들어, 당신이 이 글을 보며 손에 쥐고 있는 스마트폰이 생명체라면 어떠한가. 생명이지만 움직이지도 않고, 감정 표현도 없고, 소리를 내지도 않는다. 그냥 생명이 있다뿐이다. 물론 처음에는 위화감이나 거부감이 들 것이다. 하지만 그 뒤에도 아무런 변화가 없다면? 당신은 비싸게 주고 산, 아직 기곗값 할부도 끝나지 않은 그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을 것인가. 예전처럼 화장실 갈 때나, 출근길 지하철에서나, 자기 전 이불속에서 꼭 쥐게 될 것이다. 그래도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으니까.
생명인 게 밝혀진 사물의 본래의 쓰임 외에 별다른 쓰임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분류작업의 의미가 없지 않을까. 이게 회의론자들의 주장이다. 그리고 이 주장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힘을 얻었다.

사물에서 생명이 발견된 지 6년, 인류는 분류작업을 멈췄다. 미국과 중국이 차례로 손을 떼자 그나마 분류작업을 유지하던 몇몇 국가들도 모두 손을 뗐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였다.
분류작업은 전면중지 됐고, 분류센터는 폐쇄되거나 다른 기관과 통합됐다. 분류사들은 대부분 그만두고 다른 일을 찾거나 다른 행정기관으로 차출되었다.
난 홀로 남아 센터에서 진행되던 작업을 마무리 짓는 대로 다른 기관으로 옮겨갈 예정이다. 난 여기에 마지막 남은 분류사였다.
그동안의 실험 결과와 진행 상황의 기록을 모두 마치고 서버에 저장했다. 국가기록원에 저장은 되겠지만 아마 아무도 찾지 않을 것이다. 필요 없어진 문서들을 파쇄기에 넣고 있는데 종이 뒷면에 못 보던 글씨가 적혀 있었다.

분류를 멈추지 말아 주세요

누가 쓴 글씨인지 생각하는데 조금 시간이 걸렸다. 책상 위에 놓인 프린터를 분류작업 했던가. 다행히도 처분하지 않은 실험도구가 남아있었다. 한 시간 후, 사무실 프린터는 모두 생명으로 분류됐다. 처음으로 의사 표현을 한 사물이기도 하다. 실험 결과를 교육과학기술부에 보고했다.

그 뒤로 분류작업의 당위성에 대한 논의가 다시 활발해졌다. 회의론자들은 자신들의 기존 입장을 고수했지만 이번에는 분류작업 옹호론자들의 주장에 힘이 실렸다. 내가 발견한 프린터의 한 마디가 복사되어 전 세계에 흩뿌려졌고, 생명의 존엄성을 지켜줘야 한다는 여론이 드셌다.
반년 후, 분류작업은 재개되었다. 분류센터의 문은 다시 열렸고, 분류사들은 친정으로 돌아왔다.

아직도 생물과 무생물의 구분에 의문을 제기하는 시선들이 많이 있다. 또한, 분류작업에 따른 실효성 다시 말해, 생물로 판명된 사물의 특별한 쓰임을 아직 발견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사물들은 생명으로 구별만 되었을 뿐 전과 다름없는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심지어 프린터는 그 뒤로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우리 분류사들은 우리가 하는 일에 상당한 자긍심을 갖고 있다. 생명을 생명으로 인식하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큰 가치가 있다고 믿고 있다. 프린터가 그 한 마디만을 남기고 입을 다문 것은 자신들을 하나의 생명으로 구별해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의미일지도 모르겠다.
분류사들의 업무수첩 맨 앞장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다.

유기체는 자기 자신을 내몰아 유지하는 무한한 과정에서 자립적인 '주체'로 끊임없이 자기를 '형태화' 함과 동시에, 그 형태화 과정으로부터 유기조직을 지닌 개별적인 '생명체'로 산출된다. - 헤겔 -

생명은 자립적인 주체성의 문제와 직결된다. 모든 생명은 주체성을 가진 고유한 존재여야 한다. 쓰임이 천편일률적이고 평범하다 할지라도 그것이 생명인 한, 그것의 주체성은, 고유성은 훼손되지 못한다.
프린터는 이 말이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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