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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숏폼소설] 사진

by 홍윤표

핼러윈을 맞아 다소 기괴한 핼러윈 한정 음료가 출시되었다.
<병뚜껑을 확인하세요. 당첨된 분들에겐 죽은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드립니다.>
집에 오는 길에 들른 편의점에서 보고 무시했었는데, 냉장고를 열어 보니 음료 한 병이 보였다. 아버지가 담배를 사면서 같이 사 오셨나 보다. 의외다. 이런 거 사시는 분이 아닌데.
거실의 아버지는 티브이를 켠 채 소파에 누워 새우잠을 자고 계셨다. 난 티브이를 끄고 방으로 들어갔다.

엄마는 사진 찍는 걸 좋아하셨다. 어딜 가나 화려한 꽃이나 나무는 물론, 조금이라도 예쁘거나 독특한 풍경이 있으면 습관적으로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셨다. 그리고 반드시 그 앞에 나나 아버지 혹은 둘 다를 세우셨다. 유난히 엄마에게 무뚝뚝하던 아버지는 엄마를 무시하며 가던 길을 가기 일쑤였고, 무심한 아들인 나도 엄마 손을 뿌리치고 걸음을 옮겼다. 그때마다 엄마는 황급히 셔터를 누르며 어떻게든 우리 사진을 찍으려 하셨고 우리 뒤에 혼자 남아 사람 없는 풍경을 찍으셨다. 엄마들은 왜 그리 사진에 집착할까. 그땐 그렇게 생각했었다.

두 달 전 엄마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시고 유품을 정리하다가 본 엄마의 휴대전화에는 사진이 많이 저장돼 있었다. 갤러리에는 꽃과 나무 그리고 아무 의미 없어 보이는 사물과 풍경 사진이 가득했다. 그리고 아버지와 나의 딱딱한 무표정의 얼굴들, 사진을 찍지 않으려 걸음을 재촉하느라 초점이 나간 몸짓들, 그리고 유난히 많은 아버지와 나의 뒷모습들.
엄마의 사진은 한 장도 없었다.

그 뒤로 난 자기 전에 습관적으로 내 휴대전화 갤러리를 뒤적거렸다. 여자친구와 음식 사진, 술자리의 친구들과 몇 장의 셀카.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엄마 사진은 없었다. 아버지 휴대전화에는 엄마 사진이 있을까. 없을 거 같다.
우리가 가진 거라곤 20년도 더 된 앨범 속의 젊은 시절 엄마 사진이 전부다.
엄마는 본인 사진이나 좀 찍어두지. 괜스레 엄마에게 화가 났다.

아침에 일어나 거실로 나갔더니 엄마가 계셨다. 아버지는 소파에 앉아 멍한 표정으로 엄마를 올려보고 있었고, 발치에는 음료수 병이 뒹굴며 바닥을 적시고 있었다. 아버지 손에서 재빨리 병뚜껑을 빼앗아 보았다. 당첨. 축하드립니다.

우리 셋은 오랜만에 같이 밥을 차려 먹었다. 아버지와 둘이 지낸 뒤로 제대로 된 밥을 한 적이 없어서 쌀이 떨어진 줄도 몰랐다. 급하게 햇반 세 개를 사 오니 엄마가 어느새 냉장고에서 오래된 김치를 꺼내 찌개를 끓이고 계셨다. 돼지고기 대신 참치를 듬뿍 넣었고, 맛있었다.
밥을 다 먹자 엄마가 빈 그릇들을 싱크대에 놓고 말했다. 갈게.
잠깐. 아버지가 엉거주춤 일어나 엄마를 꽉 안았다. 아버지는 울고 계셨다.
난 갑자기 생각이 떠올라 방으로 뛰어갔다. 엄마, 우리 사진 찍어요.
티브이 위에 휴대전화를 조심스레 올려놓고 우리 셋은 소파에 나란히 앉았다. 김치-. 찰칵.
사진을 찍자마자 엄마는 왔을 때처럼 홀연히 가버렸다.

사진에는 아버지와 나 둘밖에 없었다. 죽은 사람은 사진에 찍히지 않는다는 게 진짜였나 보다.
대신 아버지와 나 둘 다 웃고 있었다. 그 안에,
엄마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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