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숏폼소설] 업무분장

by 홍윤표

요새 자꾸 지각을 하는 김대리에게 그 이유를 물었더니, 이상한 대답이 돌아왔다.
갑자기 집안 물건들이 이상해졌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런 식이다.
아침에 알람 소리에 일어나서 알람을 끄려고 휴대전화를 보면 엉뚱한 데서 알람이 울리고 있다는 것이다. 10분 동안 집안을 뒤진 후에야 책상 서랍 속 작은 핀셋에서 알람이 울리고 있는 걸 발견했다고 한다.
또 양치질을 하려고 치약을 누르면 TV가 켜지고, 수도꼭지를 틀면 라디오에서 클래식 음악이 나오는 식이란다.
전자레인지를 돌리면 현관문이 열리고 선풍기를 켜면 휴대전화가 중국집에 멋대로 전화를 건다고도 했다.
"아침에 변기 물을 내리면 인터폰이 켜지고 헤어드라이기를 켜면 토스트기가 식빵을 굽더라니까요. 덕분에 출근 준비에만 삼십 분 이상이 걸려요."
결국 김대리는 일주일 휴가를 냈다.
그리고 일주일 만에 돌아온 김대리의 얼굴은 매우 밝아졌다.
"일주일 동안 철저한 연구 끝에 녀석들의 역할을 다 파악했어요!"
김대리는 휴가 동안 집안의 물건들을 붙잡고 수백 번의 시행착오 끝에 물건들의 기능과 역할을 다 파악했던 것이다.
김대리가 싱글벙글 웃으며 지갑에서 꺼낸 쪽지엔 물건들의 목록과 그 기능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그는 그것을 코팅까지 하고 소중하게 간직했다.

그러던 어느 날,
김대리가 다시 지각을 했다. 이유를 물어보니 김대리가 울상이 되어 말했다.
"아, 정말 미치겠어요! 어제 비누가 다 떨어져서 새로 사갔더니
글쎄 오늘 아침에 자기들끼리 업무분장을 싹 새로 해놨지 뭐예요!"
김대리는 업무분장표를 세단기에 갈아버리고 일주일 휴가를 냈다.

keyword
이전 09화[숏폼소설] 부루마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