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기연 2시간전

OOO에게

사랑한다는 말과 좋아한다는 말의 차이가 뭐라고 생각해? 사실 난 잘 모르겠어. 나에겐 둘 다 어렵게만 느껴지거든. 누군가와 연애를 했을 때도, 누군가에게 고마움을 표현할 때도, 난 늘 그랬어. 난 늘 사랑과 좋아함이 어려웠어.

그래서 상처를 많이 준 것 같아. 이유 없이 아무 말도 하지 못했으니까. 내 입장에선 이유가 없으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건데 말이야. 너가 떠나고 나서야 이게 잘못되었다는 걸 알아버렸어. 내가 가지고 있는 이 마음이 다 너에게 줘야 했던 마음이었다는 걸, 늦게 아주 늦게 알아버린 거야.

참 어리석고 멍청해. 난 내가 융통성 있고 나름 바르게 잘 자랐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면에서는 참 눈치가 없어. 그래서 너를 잡을 생각도 하지 못했어. 후회하냐고 묻는다면 망설임 없이 그렇다고 말할게. 후회해 아주 많이. 네가 돌아오길 바라냐고 묻는다면 망설임 없이 대답할게. 아니 절대로 돌아오지 마.

너는 나와 함께 있는 시간이 즐거웠을 거야 나도 그랬고, 그리고 그로 인해서 우리는 서로를 너무 많이 잃었을 거야. 그렇게 스스로가 아닌 서로에게 비치는 모습에 열중하고 치중했을 거야. 난 그게 무슨 의미가 될까 생각해. 내가 바라볼 수 없는 너의 모습도 분명 존재할 텐데 난 그걸 볼 수 없는 게 두렵고 미안했나 봐. 그래서 너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나 봐. 내가 너를 바꾸려고 하는 걸까 봐. 내가 내 입맛대로 너의 모양을 이리저리 뜯고 버리고 새로운 것을 붙이는 걸까 봐.

그게 서운했구나. 너를 사랑하지 않은 것 같았구나. 나는 그렇지 않았는데, 그냥 무서웠을 뿐이야. 그래도 절대로 돌아오지는 마. 너를 보내고 나는 많이 바뀌었어. 이제는 너를 바꾸려고 할 거야. 너로 인해 내가 바뀌었으니. 아무것도 하지 못한 나는 이제 없어.

너는 나의 어떤 면을 좋아했을까. 난 그게 궁금해. 내가 바라볼 수 있는 나는 너무나 작고 좁은 사람이라 한눈에도 좋은 사람인 것 같진 않아. 나를 사랑할 줄 모르는 나라서 너를 사랑하는 법을 몰랐나 봐. 정확히는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을 몰랐나 봐. 나를 보는 너의 눈빛을 읽을 수 없어서 너의 마음을 정확히 알아주지 못했어. 그때 나의 마음은 너무나 시끄러워서 네가 나에게 말하는 사랑을 나는 들을 수가 없었어. 나는 그렇게 나에게도 집중하지 못하고 또 너를 바라보지 못한 채로 둘 다 잃어버린 거야. 그렇게 삶 속에서 가장 소중했던 사람이 나를 떠나가는 걸 그냥 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던 거야.

너에게는 다 핑계로 들릴지 몰라도 그때 나는 그랬어. 내가 아는 너는 나의 이런 모습을 보며 슬퍼할지도 모르지만 난 괜찮아. 아직도 나는 나를 사랑하지 못하지만 누군가를 사랑하는 척은 할 수 있게 되었거든.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