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너무 무거운 날
몇 주전부터 무기력증이 왔다. 틈틈이 찾아오는 이 녀석은 내가 달리는 것을 막고, 상상하는 것을 막고, 감정을 느끼는 것을 막는다. 이러한 상태가 되면 정말 아무것도 하고 싶지가 않다. 해야 할 것들과 하고 싶은 것들은 늘 존재하니 이 상태 안에서도 존재하지만 그것을 실천으로 옮길 마음과 행동이 생기거나 일어나지 않아서 그 연장선의 나 자신이 너무나 싫어진다.
왜 이러한 기분이 드는지 사실 잘 모르겠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듯 아무것도 모르겠다. 그냥 축 쳐지고 기운이 없고, 심지어 식욕도 없다. 밥 먹는 것까지 지겹고 귀찮아지면 이 무기력증은 굉장히 심한 상태이다.
항상 밝게 살아보려고 노력한다. 내가 좀 차갑게 생긴 편이라 웃는 법도 익혀서 많이 웃으려고 하고, 실제로도 많이 웃고 다닌다. 그런데 무기력증이 나에게 올 때면 웃음이고 뭐고 아무런 표정을 짓고 싶지가 않다. 노력할 마음도 생기지 않는다. 내가 이 무기력증 안에서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건 지금 이렇게 나의 마음을 글로 쓰는 것이다. 주저리주저리 한 글자씩 써내려 가다 보면 답이 나오겠지라는 생각과 더불어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정말 뇌가 멈춰버릴 것 같기 때문에 하는 행동이기도 하다.
글을 쓰는 것은 아주 오래전부터 마음이 복잡할 때 하고는 했던 행동이다. 나의 아이패드 안에는 수많은 일기들과 글들이 있는데, 기분이 좋을 때는 딱히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아서 내 기록에 남아있는 글들은 다 우울하거나, 슬프거나, 화가 나는 일에 대한 글이라서 다시 돌아보며 읽지는 못한다. (가장 친한 친구에게 만약 내가 이 세상을 뜨게 된다면 아이패드는 무조건 없애달라는 말을 해놨다.)
무기력에게 졌던 날들을 생각해 보았다. 과연 내가 그때 어떤 마음이었을까. 아마 그냥 펑펑 울었던 것 같다. 알차게 달려오던 삶에 급 브레이크를 밟아서 튕겨져 나간 상태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정말 정신이 없고 마음을 다잡기가 힘들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방 한 구석에서 소리 없이 계속 울었던 것 같다. 지금은 글을 쓰고 머리를 쓰고 있는 상태라서 그런지 울먹거림이 조금은 괜찮아진 듯하다. 아까 집에 오는 버스 안에서 김동률 플레이리스트를 재생해서 들었는데, 참 가사가 예뻤고, 위로가 되면서 더 울컥함이 몰려왔다. 밖에서는 절대 울지 않아서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지만, 살짝 울먹이긴 했던 것 같다. (진짜 안 울었다. 진짜다.)
어떻게 하면 조금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까 생각한다. 이 무기력에서 벗어나서 하고 싶은 일들과 해야 할 일들을 차근차근 해내고 싶은데 방법은 내 머릿속에 없다. 그냥 행동해야 한다는 것 정도는 나도 안다. 뭐라도 하고 움직이고, 먹고, 머리를 굴리면서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지금은 모든 게 다 멈춰있는 기분이다. 내가 만약 솜인형이라고 가정한다면 물을 잔뜩 머금은 채 쳐져 있는 모습일 것이다.
이제 이 글을 마무리하고 싶은데 어떠한 밝음도 담지 못한 글이라서 마지막까지 그렇게 유지해보려고 한다. 내가 늘 하는 생각이 '모든 건 다 지나가게 되어있다.'인데, 이 무기력도 언젠가는 지나갈 것이다. 하지만 그걸 기다리는 마음은 나에게 존재하지 않고, 무기력이 원하는 대로 나는 그곳에 빨려 들어가서 소용돌이치고 있다. 원하는 대로 해주고 싶지 않은데 말이다. 어쨌든, 나는 지금 무기력하고 그걸 아는 게 그나마 다행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것이 바로 정신승리일까.
매사에 행복할 순 없지만 매사에 우울하라는 법도 없다. 그러니 난 곧 괜찮아질 것이고, 또 나아갈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다만 해야 할 일이 산더미인데 언제 다 하나 하는 답답함과 무거움과 무서움과 두려움이 교차하는 마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