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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연 Nov 25. 2024

자주, 보통, 문득

시간에 흐름에 따른 너의 의미

너는 내게 그랬다. 나에게 자주 생각나는 사람이었다. [~이었다]라는 것은 '이젠 그렇지 않다'는 뜻이다. 나는 너를 보통 생각하게 되었고, 6년이 지난 현재에는 문득 나에게 생각나는 사람이다.


우리는 학교 선후배로 만났다. 그리고 내가 18살 네가 20살 때 너의 고백으로 우리는 그렇게 우리가 되었다. 너는 네가 나에게 느끼는 감정들을 나에게 모두 쏟아내고 사랑을 주었다. 물질적으로든, 그렇지 않든 간에.

그에 비해 나는 너에게 아무것도 주지 못하였다. 물질적으로든, 그렇지 않든 간에. 나는 모든 게 새로웠고, 너 또한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 겁도 없이 모든 걸 보여준 너와는 달리 나는 유난히 조심성이 많아서 너처럼 그렇게 하지 못하였다. 나는 너를 의심했다. '사랑한다는 말이 저렇게 쉬운가?'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 그만큼 너는 나에게 부담스럽기도 하고 어딘가 간지러운 그 단어를 항상 그리고 매일 입에 올리며 나에게 전달했다. 그리고 나에게 기대했다. 자신과 똑같이 말해주기를.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아직도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내 마음속에 너에 대한 사랑이 남아있다. 그 단어를 입에 담지 못하고 내 입을 떠나지 못하게 한 것은 내 평생의 후회가 될 것이라고 감히 생각했다.


우리가 데이트를 마치고 네가 나를 집에 데려다주었다. 너의 표정이 좋지 않았지만, 괜히 건들지 말자라는 생각에 나는 따로 묻지 않았고, 내가 집에 들어오고 네가 운전을 해서 경비실을 빠져나갔을 때쯤 너에게 전화가 왔다. 너는 울고 있었다. 너는 힘들다고 말했다. 나와의 만남이 나의 반응이 나의 사랑이 불확실해서, 확실하다고 생각하는데 때때로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힘들다고 말했다. 나는 누군가 나의 머리를 세차게 때린 것 마냥 멍해졌다. 나는 늘 받기만 한 사람이 되어있었다. 돌려줄 마음이 너무나 가볍고 하찮다고 느껴서 줄 생각을 하지 못하였다. 너에게 미안함이 들었다. 나는 노력해 보겠다고 말하며 너를 달랬고, 용서를 빌었다. 너는 나의 사과를 받아주었고 용서해 주었다. 그때 우리에게 약간의 끈끈함과 약간의 틈이 생겼다.


그때 이후로 나는 너의 눈치를 많이 보게 되었다. 사소한 것 하나까지 모든 것들을 표현하려고 애썼다. 그게 나에게는 짐이었다. 하나의 숙제 같은 것이었고, 입 밖으로 꺼내는 연습을 매일 하는 기분이 들었다. 원래 나는 이러지 않았다는 고집으로 모른 척하고 싶었지만, 그때마다 나에게 조심스러운 눈물을 보이며 말하던 너의 목소리가 떠올라서 그러지 못하였다. 나는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지만, 너는 아직 부족했다. 나도 알고 있었다. 너의 표정에서는 아직도 의문이 남아있었다.


너는 어쩜 그렇게 사랑을 잘 주는지, 그렇지 않은 내가 볼 때 너는 참 사랑스럽고 귀여웠다. 나를 믿고 사랑을 주는 너의 모습은 어쩌면 가여워 보였을지도 모른다. 나로 인해 애타는 너의 모습을 볼 때면 마음이 아팠지만 나는 더 노력할 수 없었다. 서운해하는 너를, 나는 채울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내가 포기하기 전에 네가 먼저 나의 손을 놓았다. 이제 그만하자며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맺고 있었던 '우리'를 없애버렸다. 나는 그때 깨달았다. 내가 너를 많이 사랑한다는 것을. 너무나 늦었지만 미안하고 고마움이 가득한 만남이었다는 것을. 하지만 이미 너의 인내심은 바닥을 친 지 오래였고, 나는 눈치 없이 마음대로 행동했다. 그렇게 우리는 끝이 났다.


우리가 더 이상 우리가 아니게 되었을 때, 나는 그때의 우리를 생각했다. 서로 부둥켜안고 서로를 향해 아끼는 눈빛을 보냈었던 날들을, 서러움에 눈물을 쏟던 날들을, 서운함에 서로에게 뱉었던 모진 말들을, 그리고는 사랑으로 끝났던 모든 날들을. 이 날들은 사랑으로 끝났지만 이제 우리의 끝은 이별로 끝났다. '우리'가 '너'와 '나'로 변해있었다. 마음이 아프다는 것은 내가 살면서 절대 알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너를 잃고 나니 그 마음을 알게 되었다. 마음에 큰 빈 공간이 생긴 것 같은 공허함이 밀려들어왔다. 그것들을 채우려고 시간을 알차게 보냈지만, 그 빈 공간은 너의 모양으로 맞춰진 듯 다른 모양들로 채워지지 않았고, 나는 아직도 너의 빈 공간을 어느 무엇으로도 채우지 못하고 있다.


다시 너를 만나게 된다면 꼭 행복하게 해 주리라 다짐하지만 그럴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그래서 더 후회가 넘친다. 너의 사랑을 그렇게 많이 받고 채워 넣었으면서 왜 정작 나는 너에게 나의 사랑을 채워주지 못했는지 어리석게도 이제야 알아버렸다. 나는 그때에도 그리고 지금도 너를 사랑하고 있다. 이제야 나는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는데 너는 내 옆에 없다. '우리'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되돌아갈 수 없다. 마치 네가 나에게 준 벌처럼 느껴진다. 네가 나 때문에 많이 아팠으니, 그보다 더 나는 아파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다. 나는 그 벌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끝까지 나의 잘못을 부정하지 않을 것이다.


자주 생각이 나다가, 보통 생각이 나고, 이제는 문득 생각이 난다. 웃는 것이 참 예뻤던 너를, 나를 달래주러 1시간 동안 운전을 해서 나를 만나러 온 너를, 차 트렁크에서 와인과 사탕바구니를 들고 나에게 수줍게 미소 짓던 너를, 나의 매일과 시간과 모든 일들을 궁금해하며 물어봐주었던 너를, 나는 아주 드물게 생각한다. 그리고 아주 아프게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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