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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고통

고통은 나의 힘

by Ubermensch





모든 존재는 고통받지 않기 위해 몸부림치며 살아간다. 행복을 갈망하고 기대를 하고 꿈을 꾸면서. 하지만 그것은 예측 불가한 어느 날의 날씨처럼, 잠에서 깨어난 우리를 덮치곤 한다. 정신적인 형태이든 신체적인 형태이든 반드시 온다. 그 빈도와 정도는 제각각이겠지만, 삶에서 피해갈 수 없는 이 고통을 다룰 방법에 대해 우리는 터득해낼 필요가 있다.


사람들은 어떤 고통의 순간을 맞닥뜨렸을 때, 그 원인을 제공한 상대 혹은 상황을 탓하거나, 위축되어 자기 연민 같은 류의 감정에 잠식되거나, 부정하거나, 도피하거나, 망가지거나, 극단적인 경우 파괴를 택한다.


쇼펜하우어는 사는 것은 고통하는 것이라 명명했다. 세계의 근원은 의지이고, 이 의지가 끝없는 결핍을 낳기에 인간은 항상 고통할 수밖에 없다고. 숙명적으로 고통을 짊어진 인간이 그것을 회피한다면 본인의 존재를 부정하고 껍데기로 사는 것이나 다름없다. 키르케고르는 절망이란 자기 자신이 되는 고통이라고 했다. 그는 고통을 부정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이 실존적 자각으로 이어지는 과정이라고 보았다. 니체는 고통을 피하려는 태도를 노예 도덕이라고 본다. 나는 신에 의탁해 구원을 바라는 태도도 인간으로서의 주체성을 포기한 일종의 구걸이라 생각한다. 이런 태도로 인해 지옥에 간대도 상관없다. 나는 사후에 구원을 받아 천국에 가는 것보다 현재 내 삶의 주인으로 남고자 한다.


우리는 고통을 현상학적으로 느낄 필요가 있다. 사르트르는 고통이란 의식이 자기 존재의 불완전함을 자각하는 방식이라 하는데, 이는 존재가 스스로 존재하고 있음을 아는 순간 발생한다. 고통을 피하거나 오롯이 품지 않는 사람들은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인형에 가깝다. 시몽동이라는 그다지 안 유명한 프랑스 철학자가 있다. 그의 기본 사상은 존재는 완성된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중이고, 끊임없이 개체화되는 과정이며, '나'라고 부르는 정체성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존재가 새로운 균형을 찾고 구조가 새 구조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틈에서 발생하는 현상을 고통으로 해석한다. 개체와 세계가 조율되려 할 때 생기는 불협화음. 우리는 이 불협화음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고통이란 마냥 회피해야 할 무서운 대상이 아니라, 존재가 스스로를 인식하는 가장 날것의 형태다. 고통을 겪으며 한차원 더 단단해진 정신으로 자신과 세계를 이성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게 되고, 나아가 니체식 창조의 원동력으로 삼아 초인으로 한 걸음씩 걸어가면 된다.


그러므로,

When life gives you lemons, make lemonade.

떨거나 숨지 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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