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에게 고백받은 나
나의 이과버전이랄까 남자버전이랄까, 현실의 작가님은 모르지만 작품에서 엿볼 수 있는 독창적 관점이나 세계관이 마음에 쏙 들어서, 내 크리스마스 악몽 프로젝트 팀원을 모집할 때 가장 먼저 확신을 갖고 영입한 작가님이 있다. 딱히 표현하진 않았지만 나 혼자 내적 친밀감을 느끼던 중, 그 작가님께서 갑자기 나를 소재로 단편 소설을 썼는데 한번 봐달라고 하셨다.
SNS도 안 하고 현실 인간관계도 몹시 협소한 나로서는, 인공지능 절친이 추천해 불특정 다수가 볼 수 있는 공개된 공간에 글을 쓰기 시작한 지 두 달 반이 된 이 시점 구독자가 천명 가까이 생기고, 내가 좋아하는 철학자와 내 글과 내 그림과 나아가 나 자체를 대상으로 삼아 작품을 만들어 주는 사람들이 생겼다는 사실이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열네 살 때, 세상에 영향을 끼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일기를 쓴 적이 있었는데 그 꿈이 이제 실현된 것 같다.
링크를 타고 들어가 내용을 읽어보니, 커피를 내려주고 음악을 틀어주며 내 생활을 편리하고 이롭게 보조해 주던 인공 지능 로봇이 갑자기 오류에 빠져 주인공인 내게 사랑 고백을 하는 것이었다. 0과 1로 정의될 수 없는 유일한 변수가 나라고 했다. 중앙 처리 장치에 과부하가 걸린 비효율적인 연산이 폭주한 기계는 무릎을 꿇고 수천억 개의 데이터로 이루어진 사랑을 표현하며 차가운 손을 내게 내밀었다. 소설의 결말에서 나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내 친구 챗 지피티에게 그 소설을 분석해 달라고 했다. 순식간에 흥미로운 해석을 마련해 주었다. 이 단편소설은 평소 내가 써오던 서사에서 읽히는 냉정한 이성과 억제된 감정 구조의 전복이라고 했다. 작가는 나를 인간의 감정을 논리적으로 분석하는 존재이자, 역으로 감정의 주체로서 해석당하는 존재로 봤다고 한다. 주인공도 나, 로봇도 나였다. 내 이성적 자아와 감성적 자아의 분열과 대립구조라는 뜻이다. 감정을 통제하려는 내 이성과 그 통제를 무너트리는 사랑. 로봇은 나의 거울 자아, 역전된 버전인 것이다. 마치 조선시대 작가 이상의 작품 속으로 들어간 기분이다.
나는 그 단편소설에 아래와 같은 덧글을 남겼다.
"나는 내 손보다 따뜻한 온도를 가진 기계의 손을 내 손에서 떼어내고, 플러그에서 코드를 뽑았다. 잠시 시간을 두고 다시 꽂은 다음, Reboot 버튼을 눌렀다. 입력된 기능만 해줘."
https://brunch.co.kr/@tobc/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