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은 자각

직업을 잘못 정했나

by Ubermensch







일주일새 조사 목적으로 부른 사람들이 4명이다. 연락을 안 받는 이들이 몇 있어서 임의로 지정한 출석일시를 문자로 마구 보내고 출석요구서를 등기로 발송하고 그러다 지정한 기일이 지나고 하다 보니, 스케줄이 꼬여서 연관 없는 사건의 두 사람이 같은 날 같은 시각에 출석하게 된 것이었다. 몹시 당혹스러웠다. 조사 예정 시간인 오후 두 시, 준비는 한 명밖에 되어있지 않았다.


1층 데스크에서 연락해 온 피의자에게, 나는 상황을 설명하고 거듭 사과를 한 뒤 다음 주에 다시 방문해 줄 것을 요청했다. 그는 불만스러운 기색을 감추지 않고 알겠다며 다시 오겠다고 했다. 고령 피의자의 집은 아주 멀었다. 헛걸음을 시킨 나에게 불만을 갖고 거센 항의를 할까 봐 조마조마했다. 그 피의자는 어제 새로 조율한 일정에 맞춰 다시 찾아왔다.


우리 사무실은 일반적인 검사실과 달리 검사님이 같은 공간에 함께 계시지 않는다. 검사가 피의자를 직접 조사하는 경우도 있지만 보통 계장이 조사하는 경우가 많은데, 계장이 조사를 하는 경우라도 같은 공간에 있는 검사의 존재감이 피의자에게 주는 위압감이 있다. 하지만 우리 사무실에는 없다. 그래서 처음엔 겁이 났다. 같은 공간에 상황을 지켜보고 통제해 주시는 검사님도 안 계시고, 나는 경험이 많지 않은 젊은 여자 수사관이므로 근엄하고 권위 있어 보이는 베테랑 아저씨 계장님들처럼 피의자를 압도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사를 거듭하다 보니 꼭 사람을 굴복시키거나 압도할 필요가 없었다. 사건 기록을 꼼꼼히 파악하고, 피의자가 부인을 하거나 변명을 할 때 논리적으로 반박할 수 있는 자료를 준비하고, 혐의를 입증할 만한 질문을 잘 준비하면 충분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피조사자를 사람으로 대하며 그가 하는 이야기를 경청하다 보면 의외로 어느 순간 본인의 잘못을 자백하고 반성하고 후회하는 경우가 많았다. 굳이 큰소리를 내거나 다그칠 일이 전혀 없었다.


어제 방문한 고령의 피의자는 지난 한 달간 증거 확보를 위해 나를 영수증 지옥에서 살게 만든 사람이다. 내가 피땀 흘려 만든 범죄일람표를 내밀자 순순히 혐의 사실을 인정했다. 그에게 내가 그동안 고통받았던 영수증 지옥 이야기를 하지 않았음에도 본인의 잘못으로 내 시간을 빼앗아서 죄송하다고 했다. 내가 소환일자를 잘못 보내서 먼 거리를 두 번이나 왕복하게 했는데도 그랬다. 나도 번거롭게 헛걸음하게 해서 죄송하다고 했다.


조사자와 피조사자의 관계로 만나 피의자신문조서를 작성하는 과정임에도 우리는 웃었다. 그는 시골 백구 같은 눈을 꿈뻑이며 내가 야심차게 준비한 날카로운 질문을 피하지 않고 성심성의껏 대답했다. 부끄러운 말이지만 저는 배운 게 없어 글도 제대로 쓸 줄 모릅니다. 주차장 관리 일을 하다가 차단기가 생기면서 쫓겨났어요. 회사에서 월급을 반만 받아도 좋으니 일을 시켜줬으면 좋겠습니다. 기술의 발전이 사람의 자리를 빼앗는구나. 노인 노동 인구는 이렇게 갈 곳을 잃는구나. 이런 비참을 느끼겠구나. 국가에서 대책을 마련해 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기록만 봤을 때는 피의자를 엄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른 범죄 전력이 전혀 없었기에 그는 어떤 처벌을 받게 될지 두려워하며 한숨을 푹푹 쉬었다. 늙고 병들고 초라한 행색을 하고 와서, 잔돈을 가져간 건 횡령이 맞다며 죄송하다고 하는 그의 눈을 바라보다가, 차라리 뻔뻔하게 부인하는 태도를 보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죄를 지은건 지은게 맞다. 괜찮다. 별일 없을 거라는 이야기를 해 줄 수는 없다. 실무관님은 내게 앞으로 조사를 할 때 피의자의 눈 말고 코를 보라고 권유해 주셨다.


조사를 마치고 피의자에게 출력한 피신조서를 건넸다. 조서에 진술한 대로 기재되지 아니하였거나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는가요, 하는 내 질문에 그는 읽어보지 않아도 된다며 알아서 잘 적어주셨겠지요, 했다. 나는 그래도 읽어보라고 했다. 조사 과정에서 이의를 제기할 부분이 있는지 표시하는 부분에 피의자는 '어슴' 이라고 적었다. 그리고 척추협착증이 있다며 조사 과정에서 몇 차례나 통증을 호소하던 허리를 굽혀 인사하고 떠났다.


차라리 이의제기 부분에 나를 두 번이나 불러서 불편하게 함.이라고 적었다면 마음이 더 편했을 것 같다. 퇴근길에 운전을 하다보니 내가 직업을 잘못 정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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