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斷想) 말고.
내가 보기에 남자들은 바보다. 대의인척 하지만 사실은 별 하찮은 계기로 목숨을 건 전쟁을 일으키기도 하고, 때로는 놀랄 만큼 투명하고 순수해서, 이성적인 존재라기보다는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기나 들판을 뛰어다니는 동물에 더 가깝게 느껴질 때도 있다.
내게는 남사친이 없다. 남사친을 만드는 건 참 쉽다. 남자가 있는 환경에 존재하기만 하면, 내가 마치 철가루 세상 속 유일한 자석이 된 듯 순식간에 생겨난다. 돈이 들지도 않고, 사회적 에너지를 필요로 하지도 않는다. 그냥 구석에 앉아 입 다물고 있기만 해도 된다. 하지만 그렇게 쉽게 만들어진 남사친들은, 시간 차이만 둘 뿐 반드시 고백 공격을 해온다. 아쉽게도 나를 무한 복제해서 모두의 여자 친구가 되어줄 수 없고, 나에게도 연인을 시켜줄 만한 일정 기준이라는 게 있기 때문에. 일단 친구의 선을 넘는 감정을 보인 사람을, 애초에 존재했는지조차 의심이 되는 우정이라는 위선적인 형태로, 안 그래도 피곤한 내 인생에 둘 수는 없으므로. 결국 남자 사람과의 친교 관계는 쉽게 생성된 만큼 쉽게 소멸되고 만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눈에 확 뜨일 만큼 엄청난 미모의 소유자도 아니다. 가끔 사진에 찍힌 내 모습을 보면 와 이렇게 못생겨서 어떻게 이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지 싶을 때도 있다. 세상에는 예쁜 여자들이 정말 많다. 나이가 어리기만 해도 그 특유의 싱그러움 때문에 예쁜 사람들이 널리고 널렸다. 나는 이미 서른 중반이고, 고소한 정수리는 내가 서른 살이 넘었을 때부터, 너도 이제 얼마 안 남았다며 내 기를 꺾으려고 못된 말을 일삼았다. 예쁜 할머니는 양로원에서도 할아버지들한테 양갱을 받는다던데. 내 인간 일기장 선배님은 이다음에 내가 양로원에 가서도 양갱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위로해 주었다. 그리고 특히 나는 여자 기준에서보다는 남자 기준에 더 예뻐 보이는 편이다. 그래서 처신을 잘해야겠다고 아주 어릴 때부터 느꼈다.
여자들은 보통 이목구비가 화려하고 뚜렷한 여자를 예쁘다고 생각한다. 나도 그런 여자가 예쁘다고 생각한다. 내가 남자가 아니라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남자들은 전체적인 느낌이나 분위기를 보는 것 같다. 스스로 평가하기에 나는 전형적으로 예쁜 편이 아니다. 그렇게 못 봐줄 만큼 못생긴 건 아니지만, 긴 생머리에 흰 피부에 가녀린 체구에 오밀조밀한 이목구비니까 굳이 따지자면 뭐 분위기 미인 정도랄까.
어쨌든 내가 자칫 웃거나 상냥하거나 반응을 좋게 하면, 주변에서는 여우라느니 여지를 준다느니 꼬리를 쳤다느니 온갖 부정적 말들이 난무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나는 한평생 남자들을 대할 때면 쌀쌀맞고 싸가지없고 무심하고 건조한 태도로 방어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코로나 이전부터 거리두기 전문 수사관으로 불렸다. 주변 직장 남자들이 내게 장난을 걸거나, 뭘 먹으러 가자고 하거나, 이런저런 제안을 해도. 가세요. 가시라고요. 저 바빠요. 됐어요. 저는 낯을 많이 가려서요. 관심 없어요. 혼자 있고 싶어요. 싫어요. 싫다고요. 안 궁금해요.
하지만 예상과 달리 내가 야심차게 세운 전략적 태도의 부작용도 있었다. 사회에서는 어느 정도 보통 사람들의 상식선에 입각해 기대하는 수준이 있기 마련인데, 그 상식을 뛰어넘는 정도의 모질고 차가운 반응을 당한 남자들은 오히려 도전 욕구라든지 정복욕이라도 생겨나는 건지 더욱 투지를 불태우기도 한다. 사실은 뭣도 없는데, 쟤 뭐 되나? 싶은 건지. 나를 이렇게 막 대하는 여자는 네가 처음이야. 더욱 더 알고 싶어진다, 같은 식의 심리인지 뭔진 모르겠다.
그래서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음에도, 아주 유치하게 내 머리를 잡아당기거나, 어깨를 콕콕 찌르거나, 과자를 내 책상 위에 올려 두고 가거나, 호시탐탐 관찰을 하다가 도움이 필요해 보이는 순간 백마 탄 왕자처럼 나타나 도움을 주고 으쓱하기도 하며, 쉴 틈 없는 개그를 날리며 무시당하다가 내 입꼬리가 조금이라도 씰룩거리면 세상을 얻은 양 즐거워하기도 한다. 귀찮게 연락도 자꾸 한다. 나는 남자 친구 하고도 연락을 잘 안 하는데.
남자들은 본인이 마음이 가는 여자들에게 다 퍼주고 싶어 하는 순수함이 있다. 놀라울 정도다. 나는 아무리 사랑을 해도 내가 우선이지 상대가 우선이 아니다. 예전에 고소한 정수리는 두툼한 손으로 심혈을 기울여 껍질을 깐 새우를 내 앞접시에 잔뜩 놓아주며 말했다. 너는 누가 먹는 것만 봐도 배가 부른다는 말이 뭔지 모르지? 하고. 나는 대답한다. 내가 먹어야 배가 부르지 어떻게 남이 먹는 걸 보고 배가 부르겠어. 고소한 정수리는, 나는 네가 먹는 걸 보면 배가 불러. 그 애는 나랑 뭘 먹을 때면 항상 내가 먼저 가장 맛있는 부분을 한입 먹고 삼킨 후 표정을 볼 때까지 수저를 뜨지 않았다. 내가 씹어 삼키고 눈을 빛내며 음 맛있어! 하는 표정을 짓거나 만족해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을 본 직후에야 식사를 시작했다. 그렇지만 왜인지 고기는 항상 내게 양보해 줘도 마지막 볶음밥만큼은 얄짤없었다. 고기를 이미 많이 양보해서 배가 덜 찼기도 하고, 무엇보다 탄수만큼은 포기를 못한단다.
자기한테 쓰는 돈은 거의 없으면서, 내가 딱히 필요가 없다는 비싼 명품백을 굳이 할부로 사서 안기기도 하고. 뭐든 다 해주고 싶다고 한다. 그들도 각자 집에서는 귀한 아들일 텐데, 밖에서 이러고 다니는 걸 알면 그 귀한 아들을 금이야 옥이야 키웠을 부모님은 얼마나 속이 터지고 가슴이 아플지 내가 다 죄송한 마음이 든다. 대학 때 친구한테 나 남자친구랑 또 싸웠어. 하자마자 친구는 그 불쌍한 애한테 그만 좀 해. 하는 거다. 나 아직 왜 싸웠는지 말도 안 했는데, 너 내 친구 아니야? 해도. 안 들어도 뻔하단다. 무조건 내 잘못이라고 한다.
XX염색체와 XY염색체의 Y자 하나 때문인 건지, 화성과 금성의 거리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다. 사랑에 빠진 남자들이 해낼 수 있는 일은 무궁무진하다. 때로는 그 객기의 수준이 너무나도 비현실적이라 기가 막힐 정도다. 연애를 할 때, 나는 그들이 내게 해주는 것들을 당연하게 여기거나 익숙해지지 않으려고 항상 의식적으로 애썼다. 세상에 공짜는 없고, 영원히 지속되는 것은 없으니까.
그들은 내게 사랑도 주고 상처도 주면서 내 삶의 한 시절을 이런저런 색으로 물들여주었다. 그들과 함께한 시절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이 모습으로 성장했고, 그래서 지금은 비록 함께하지 않을지라도, 그들을 만나 사랑을 하고 울고 웃던 시절을 후회하진 않는다. 그들도 그럴 거다. 나를 만난 남자들은 하나같이 내게 말해주었다. 살면서 너만큼 사랑한 사람은 없다고. 너 없인 못살겠다고. 그래도 지금 나 없이 다 잘 살고 있다. 나도 잘 살고 있다.
이제는 나이가 든 만큼, 어릴 때 마냥 혈기와 치기에 불타는 사랑을 또 경험할 가능성이 그리 크진 않을 것 같다. 그래도 우연히 뺨에 닿는 한줄기 바람의 차가운 감촉을 느낄 때라든지, 짬뽕에 들어있는 새우를 톡 씹을 때처럼 일상의 사소함을 계기로 뜨거웠던 지난날이 떠오를 때면, 내가 누군가에게 깊이 사랑받던 시절이 재생된다. 그 큰 사랑을 준 바보 같던 남자들에게, 닿지 못할 감사를 전하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