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랑용 자식
5개월 전, 병원을 찾아 이런저런 검사를 받고 난 뒤, 엄마에게 연락해 엄마 나 이런이런 상태래. 심각하대. 오랫동안 치료를 받아야 한대.라고 하며 무쾌감증, 불안, 세로토닌 기능 조절 장애, 등을 포함한 이런저런 문제에 대해 길고 자세한 설명을 해줬다. 기쁨과 기대감을 느끼는 회로가 망가졌대. 내가 여기저기 부딪히고 다치고 사고가 잦고 이런 일상 기능에 문제가 있는 것도 뇌가 너무 각성하고 긴장해서 탈진한 상태라 그렇대. 나는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검사상으로는 내가 우울하고 불안한 상태래. 했을 때, 엄마는 말했다. 너는 머리도 좋고 사회생활도 잘하잖아. 그런데 왜? 병원에 왜 갔어? 엄만 요즘 이명이 들려.라고 했다. 그쪽 약은 부작용이 많다던데. 계속 먹을 거야?
엄마는 늘 이런 식이다. 외가 쪽 전체가 그랬다. 나만 빼고 서로가 서로를 안쓰럽게 여겼다. 나는 장녀로서 엄마와 동생에게 잘 해야한다고 귀가 터질만큼 들었다. 나중엔 정말로 귀가 터질 것 같아서 가족이 모일 때마다 빠졌다. 그중 공식적으로 가장 불쌍한 건 엄마다. 엄마도 스스로 그렇게 생각한다. 그리고 그 집안에서 제일 문제아면서 싸가지 없고 신경은 안 써도 되는데 동시에 제일 잘났고 대외적으로만 자랑하는 자식은 나다. 그것도 밖에만 하지 나한테 직접적으로 칭찬을 해주는 것도 아니다. 엄마는 내 앞에서 툭하면 울고, 고통을 호소하고, 외가 식구들이 엄마를 감싸고 돌며 나를 엄마 골수 빨아먹는, 갖다 버리지 않음에 감사해야 할 자식 취급을 해도 가만히만 있었다. 엄마는 나를 사랑한다고 말한다. 나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대답을 망설이게 된다.
엄마는 나를 주변에 엄청 자랑한다. 내가 손도 못 댈 만큼 어지럽힌 집을 치워주고,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해주고. 내 생활을 나아지게 할 만한 잔소리를 많이 한다. 그게 엄마 방식의 애정 표현인건지 정확히는 모르겠다. 나는 굳이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타인의 나에 대한 애정과 마음을 잘 느끼곤 한다. 잘 모르는 사람이나, 친구나, 동료나, 직장 상사의 따뜻한 말 한마디에도 수시로 감동받아 울어버리곤 하는데, 엄마한테 감동을 받아 눈물이 난 기억은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없다. 어떻게 엄마가 자식을 이렇게까지 전혀 이해하지 못할 수가 있나 어이가 없고 기가찬 원망이 목 끝까지 차서 울음으로 터져나온 기억만 많다.
엄마가 내게 바라는 점은, 내가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멀쩡히 기능하면 되는 거였다. 학생 때는 형편상 별로 투자는 못 받았지만 우수한 성적을 유지하고,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직장에 들어가서, 남들한테 자랑을 할 만한 자식이 되어줬다. 사회적 수순에 맞춰 이쯤엔 결혼해서 손주도 봐야 할 텐데 이 부분이 가장 아쉽겠지. 항상 엄마 친구들의 자식보다 내가 앞서있다가 여기서 막혀있으니까. 내게 큰 상처를 주고 문제가 많은 전 남자친구 누구하고 이혼을 하더라도 일단 결혼을 하라고 한다. 애부터 만들라고도 했다.
엄마는 내 마음과 머릿속이 얼마나 엉망이든, 내가 기쁨과 기대감을 느끼든 어쩌든, 밤마다 술을 마셔야 잠을 자고, 외가 식구들이 등장하는 악몽을 꾸면서 가위에 눌리고, 서른 중반에 인형을 안고 자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은가 보다. 엄마 눈에는 내가 정상으로 보인다고 한다. 내가 굳이 치료를 받고 약을 먹을 필요가 없다고 한다. 엄마한테 물어봤다. 엄마는 엄마도 불쌍하고 동생도 불쌍하고 엄마네 식구들 모두 다들 서로 안쓰럽게 여기잖아, 그런데 나는 안 불쌍해? 알아서 하니까, 똑똑하니까, 아무렇지도 않아? 처한 환경은 똑같은데, 자기 연민에 빠져서 힘든 소리만 하는 사람이랑,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나은 삶을 살겠다고 치열하게 사는 사람 중에 누가 더 힘들었을거라고 생각해? 하고 물었다.
엄마는 과거는 이미 지나간 일이고, 지금 진단받은 문제는 당연히 성장 환경 영향이 컸겠지. 그 얘기해봤자 너 기분만 또 나빠질 거잖아, 하면서 회피한다. 그런 환경에 너를 둬서 미안해, 더 많이 이해해주지 못해서 미안해, 네가 그렇게 원하던 꿈을 지원해주지 못해서 미안해. 하는 식의 진심어린 사과를 받아본 적도 없다. 포기했고. 그래서 이제 와서 내가 알아서 혼자 치료를 받겠다는데, 엄마 딸이 병원에 다니며 문제가 있는 사람처럼 보이는건 또 싫은가 보다. 내 머리와 마음이 곪아 터지든 말든, 지금까지 그랬던 대로 계속 엄마가 자랑할 수 있는 완벽한 기능을 선보이는 딸로 남아줬으면 하는, 엄마의 마음이 잘 느껴졌다. 우리 엄마는 딸을 사랑하는 방법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