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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과 집중

그밖엔 블러(Blur)

by Ubermensch





날씨가 우중충한지 꽤 됐다. 비를 좋아하긴 하지만 그건 여름비나 봄비처럼 따뜻한 날에 세상을 샤워하듯 내릴 때 좋은 거지, 이렇게 밤이 길어지고 스산해질 무렵 내리는 비는 사람을 다운시킨다. 운전 시야도 육안 시야도 훨씬 비좁아진다. 원래도 시력이 안 좋고, 밤눈은 더욱 어두운 데다가 평소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특별히 포커스를 두고 다니지 않기 때문에 나는 일상적으로 여기저기 즐겨 부딪히는 편이다. 사실 즐기지는 않는다. 어제는 뻔히 3년째 살고 있는 단지 입구에 늘 그곳에 있던 벤치를 못 보고 힘차게 직진해서 걷다가 양쪽 정강이에서 피가 주르륵 났다.


정강이 뼈로부터 퍼지는 짜릿한 고통이 머리끝 발끝까지 피어오르는 걸 느끼고 있자니 스스로 어처구니가 없어서 헛웃음이 났다. 3년째 살고 있는 우리 집 도어록 비번을 누르고 들어가면서도 이유를 알 수 없이 현관문에 손가락이 끼어 비명을 지른다. 이쯤 되면 내가 자해를 하나 싶기도 한데, 나는 고통을 좋아하지도 않고 내 흰 피부에 눈에 띄는 상처가 나는 건 정말 싫다. 나이가 드니 상처가 빨리 재생되지도 않아서 흉을 볼 때마다 속상해 죽겠다.


이게 참 문제다. 뭔가에 골몰하면 그 밖의 모든 것들이 블러처리가 되는 이 습성. 주변 지형지물을 제대로 안 보고 다니니까 사람들과 수십 번 다녔던 곳도 혼자 가려면 절대 못 찾아가고. 1년간 바로 두 발자국 옆에 앉아 근무한 사람 이름도 얼굴도 외우지 못했다. 물론 더 먼 거리의 예쁘거나 잘생긴 사람 얼굴과 이름은 안다. 그건 포커싱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내 습성은 단지 시각적 부분에 한정되지 않는다. 인간 관계도 그렇다. 나는 '적당히', '두루두루' 같은 표현에 잘 맞지 않는 사람이다. 그래서 내 주변 사람들은 주로 내 팬 아니면 안티로 나뉘고, 적당히 친한 지인 무리가 딱히 없다. 부득이하게 그런 무리에 속하게 되면 불편해서 견디지를 못하겠고 최대한 피하려고 한다.


집중 대상에 대해서는, 거의 현미경으로 본 다큐멘터리 영상처럼 세밀하게 관찰해서 저장한다. 그 대상과 나눈 모든 대화, 눈빛, 문장, 공기의 질감, 냄새, 침묵의 순간, 여러 감정의 찰나를 빼곡하게 기억해서 소장하고 있다. 이건 잘 휘발되지 않는다. 관심이 있는 분야와 그렇지 않은 분야에 대한 편차가 너무 극명하고, 그 기준이 주로 사회적이라거나 생활에 도움이 되는 쪽이었다면 훨씬 덜 불편했을 텐데, 아쉽게도 내 포커스는 별 쓸데없는 호기심을 자극하거나, 어떤 신념이든 가치든 외형이 뭔가 감탄을 자아내거나, 뭐 그런 곳에 꽂혀버리곤 한다. 그에 몰입해 가진 에너지를 다 써버리므로, 그 밖의 일상의 필수적 요소들은 상대적으로 희미해져 결국 생활 속 불편함이 아주 많이 생긴다.


선택과 집중에는 필수적으로 대가가 따를 수밖에 없다. 선택되지 못한 것들은 그곳에 있어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이 버려진다. 아까워도 어쩔 수 없다. 내 세상 속 초점이 맞는 곳에만 한정하여 반짝이고 다채로운 색이 입혀지고, 그 밖의 것들은 흑백 사진처럼 조용히 묻혀 스러져 간다. 하지만 모든 게 다 번쩍번쩍 다채롭게 보이면 역설적으로 아무것도 눈에 띄지 않을 거다. 흐릿한 배경이 있음으로써 피사체가 선명히 살아나는 것처럼, 나만의 이 불편한 블러세상도 나름의 예술 작품 같은 면이 있다고 본다. 여전히 욱신거리고 있는 내 양쪽 정강이의 상처도 마치 낙관(落款) 같은 거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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