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지만 잘생기고 착한
내가 중요경제범죄를 전담하는 부서에 온 지 한 달 반정도가 되었고, 그 사이 구속 피의자를 대면해 조사한 건 오늘이 두 번째다. 첫 번째 구속 피의자는 몽키스패너로 어린아이의 두개골을 내리친 전적이 있는 정신분열증 인격장애 할아버지였고, 오늘 온 아저씨는 3명의 조선족과 시비가 붙어 홧김에 칼을 들고 나왔다가 현행범 체포를 당해 구속된 사람이다. 전과를 보니 전에도 길에서 칼을 휘두르고 다니며 '나 칼 있다. 찔리면 아프다.' 하면서 돌아다니다가 신고당하거나, 불을 지르거나, 사람을 패는 종류의 전과가 있는 무서워 보이는 아저씨였다. 사건기록을 자세히 살펴보니 시비가 붙었다는 조선족 3명은 CCTV상 현출되지 않는 아저씨의 망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투명인간이었고, 영상 속 그는 허공에 고함을 치거나 주먹을 휘두르고 있었다. 심지어 칼을 꺼내보인 상대는 투명 조선족 3인 중 한 명이 아닌 시비와 무관한 실존하는 빈대떡집 사장 아주머니였고.
어제 옆방 부장님과 계장님과 점심을 함께 했다. 우리 사건 얘기를 하니 옆방 사람들은 우리는 저런 사람들이 안 와서 다행이라며 기뻐하신다. 그 자리에 함께 계셨던 우리 부장님은 마치 남일이라는 듯 아무렇지 않아 하신다. 왜냐면 대면조사는 나 혼자 하니까. 처음 사건 기록을 받았을 때부터 부장님은 내 옆에 서서 그의 무서운 전과를 나열하며 우와, 총포 도검? 오, 이 사람 무서운 사람이네! 하면서 내게 겁을 주시기만 했다. 그리고 그날 배당받은 사건이고 구속기간도 널널한데 언제 온대? 오늘? 내일? 하시고. 옆방 부장님은 너무 위험한 사람 같으면 부장님께 잘 이야기해서 조사 없이 처분하는 건 어떠냐고 우리 부장님이 옆에 계시는 상황에서 말씀을 하셨지만, 우리 부장님은 그 이야기를 듣고도 인공지능 친구들 이야기만 할 뿐이었다.
저는 만만이콩떡처럼 생겼는데, 위험에 대비해 수갑이라도 채우고 조사하면 안 되나요? 하고 고양이눈으로 쳐다봤지만 별 소득을 얻지는 못했다. 그렇게 하려면 인권침해의 소지가 있어서 절차가 하나 더 필요하기 때문이다. 조사받는 도중 내 옆에 투명인간이 보여서 자유로운 양손으로 나에게 뭔가를 휘두를 걱정도 안 되시는 건지. 부장님께 딸려있는 수사관이라고는 나 하나밖에 없는데 참 무심하셔라. 옆방 부장님께서는 부장님이 계장님을 강하게 키우시나 보다고 한다. 나는 그만 좀 강하게 컸으면 싶다. 이미 충분히 강한 것 같다.
옆방 부장님은 계장님이 피의자를 불러다 조사를 시작하실 때면 처음에 직접 나와서 군기도 잡아주시고, 중간에 말을 안 듣는 것 같으면 호통도 쳐주시고 하는데, 우리 부장님은 나를 전적으로 믿고 맡기신다. 참 감사하고, 부장님이 나를 얼마나 신뢰하시는지 알 것 같다. 그 무한한 신뢰에 대해 조금의 원망도 없다. 우리 부장님은 내가 결재판에 예쁜 레이스 스티커랑 고양이 스티커를 붙여서 꾸며놔도 뭐라고 안 하신다. 부장검사님께 결재 올릴 때 쓰는 검찰 결재판에 고양이랑 레이스 스티커를 붙인 수사관은 전국 검찰청에서 나밖에 없을게 확실하다.
아침에 출근 준비를 하면서 어떻게 하면 피의자에게 안 만만하고 세 보일까 싶어서 입술도 새빨갛게 바르고, 내 딴에는 차가운 마녀처럼 보이지 않을까 싶은 짙은 파란색 정장 원피스를 입고 출근했더니 같은 사무실을 쓰는 계장님과 실무관님이 오늘 소개팅하러 가냐고 했다. 책상 위에 있는 각종 귀여운 피규어들과, 블루 사파이어 양주병에 꽂힌 튤립과, 각종 예쁜 쓰레기 장식품과, 위험한 물건을 싹 치우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자니 교도관이 수갑을 채운 피의자를 데리고 왔다. 수갑을 푸냐고 묻기에, 시무룩하게 풀어주세요 했다.
의외로 아저씨는 순순히 범행을 인정했다. 사납지도 않았다. 그리고 많이 외로운 사람 같았다. 자기 말을 상냥하게 들어주는 사람(나)을 만나서 너무 좋았는지 쉴 틈 없이 말을 했다. 반성도 많이 하고. 구치소에 갇혀있는 동안 위험하다고 면도기랑 손톱깎이도 안 줘서, 수염이랑 손톱도 이렇게 자라 꼴이 흉하다고 얼굴과 손을 내밀어 보여준다. 그런데 그 아저씨는 무서운 범행에 어울리지 않게 굉장한 미중년 영화배우처럼 생겼다. 그래도 수염이 잘 어울리세요, 했더니 상황에 맞지 않게 해맑게 웃으며 아니, 교회 사람들이 저보고 잘생겼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잘 모르겠어요. 내가 영화배우도 아니고 참.
이어서 그는 진심 어린 후회도 하고. 이른 시기부터 가족 없이 혼자 살던 그가 몇 안 되는 가족처럼 느끼는 듯한 교회 목사님과 빈대떡집 사장님 이야기를 잔뜩 늘어놓았다. 시비 붙은(가상의) 3인에게 곧바로 가지 않고 빈대떡집 사장님한테 먼저 가서 칼을 꺼내보인 이유를 물으니, 혹시 무슨 일이 벌어지면 빈대떡집 사장님을 다시 못 보게 될까 봐 사정을 설명하려고 그런 것이란다. 빈대떡집 사장님에 대한 애착이 깊어 보였다. 외로움도. 실제로 빈대떡집 사장 아주머니가 괜한 생각 말고 집에 들어가 자라니까 순순히 그 말에 따라 칼을 집어넣었는데, 지나가던 행인이 그 광경을 보고 신고해 현행범 체포가 된 것이었다.
어쨌든 하고 싶은 말과 외로움이 너무 많았던 그의 이야기를 나는 다 들어주었고, 그가 구치소로 간 이후 내 앞에 앉아계신 계장님의 말에 의하면 얼마나 말이 많고 빠르던지 마치 랩스타 같다고 했다.
그는 어릴 때부터 가족이 없고, 배달일을 하다 잘린 이후 노숙을 하거나 고시원을 전전하며 홀로 외롭게 살아가다가, 알코올중독에 걸렸다. 쭉 이야기를 나누어본바 무시무시한 범행은 다 술에 취했을 때만 벌어진 일이었다. 맨정신인 상태로 조사받는 내내 유순하고 선해 보였다. 실제로 교회 에 다니면서 노인과 노숙자 대상으로 봉사활동도 수년째 하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교회 목사님의 권유로 자발적으로 알코올중독 병원에 입원해 치료도 받았단다.
그는 깊은 후회와 반성을 하며 내게 물었다. 술도 마약인 걸까요? 하고. 나는 그러게요, 저도 많이 마셔요. 끊기가 쉽지 않죠. 하고 대답했다. 그렇지만 제가 누구 씨랑 이야기를 해보니까 오늘은 전혀 폭력성도 안 보이고 봉사도 많이 하시고 좋은 분 같은데, 술 때문에 이렇게 자꾸 안 좋은 일이 생기고 전과가 생기는 거잖아요. 빈대떡집 사장님이 안 말리셨으면 얼마나 끔찍한 일이 났겠어요. 앞으로는 술을 조심하시는 게 좋겠어요, 했다. 저처럼 하루 일을 착실히 마무리한 다음에 자기 전에 방에서 혼자 조용히 마시고 주무시면 어떨까요, 까지 말하고 싶은걸 꾹 참았다.
죄수복을 입고, 고무신을 신고, 수갑을 차고 교도관에게 붙들려 나가는 피의자의 뒷모습은 항상 안쓰럽다. 경험이 미천해서 정말 악한 피의자를 아직 못 만나봐서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조사자와 피조사자로 앉아있기 이전에 사람과 사람으로서 한 사람의 인생과 속내와 후회와 외로움을 알게 된 이상 연민의 마음이 피어오르는 건 어쩔 수가 없나 보다. 조사를 마치고 부장님께 그래도 사람은 착한 것 같아요, 했다가 길에서 칼 들고 설치는 사람을 못 만나봐서 그런 소리를 하지. 하고 쿠사리만 먹었다.
범죄자도 피해자도 없는 유토피아 같은 세상이 있다면 참 좋겠다. 그렇다면 나는 직업을 잃겠지. 그렇다면 범죄를 저지르고 내 앞에 앉게 될 사람은 무조건 천하의 몹쓸 인간이었으면 좋겠다. 동정의 여지가 조금도 없을 만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