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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還生)

다음 생에 대한 소망

by Ubermensch







어릴 때부터 항상 생각을 했다. 인간의 행복과 고통의 총량이 삶의 끝자락에서 매달아 봤을 때 결국 비슷한 양이 맞을까. 이번 힘든 고비를 넘기면 분명 좋은 일이 올 거야, 하는 식의 위로를 우리는 굉장히 많이 주고받는다. 고진감래(苦盡甘來), Stars can't shine without darkness 같은. 빛과 어둠은 양면 모두 꼭 필요하고 그 두 면을 경험함으로써 인간이 성숙하게 되며 궁극적으로 삶의 깊이가 생기고 풍요로워진다는 식으로. 그런데 그게 어느 정도 균형이 맞아야 사람이 숨을 쉬고 살아갈 희망이 생기는데, 일부 사람들에게는 희(喜)보다는 비(悲)의 비중이 극단적으로 거세고 격렬하게 몰아치는 탓에, 현재의 깜깜한 현실에서 더 나은 미래에 대한 흐릿한 기대가능성을 끝끝내 발견하지 못하고 삶을 놓아버리는 경우도 왕왕 생기곤 한다. 나는 특별히 살만하다고 느끼진 않지만, 그래도 자의로 생을 마감하고 싶을 정도까지는 아니므로, 대신 다른 방법으로 어지러운 마음을 달래 본다. 그건 바로 환생(還生)에 대한 상상이다.


그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대전제는 지금 내 뇌를 그대로 유지한다는 것이다. 내 모든 경험, 감각, 지식, 정보, 지능, 성격 모두 그대로여야 한다. 현생에서의 좋았고 나빴던 모든 기억 그대로 보존된 채로 환생하고 싶다. 그래야 보상으로써의 환생이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보상이라 해서 내가 재벌집 같은 곳에서 태어나기를 바라는 허황된 꿈을 꾸는 것은 결코 아니다. 로또 3등이 가장 되고 싶은 것처럼. 나는 기대를 적당한 수준으로만 한다. 기대가 클수록 이루어질 가능성도 낮고 이루어지지 못했을 때에 따른 실망도 큰 법이니까.


사후세계를 믿지 않으면서도 환생에 대해 생각하는 이유는 당장 눈앞의 현실의 고통을 달래기 위해서다. 일종의 망상이라고 볼 수 있겠다. 돈이 드는 것도 아니고 생각은 자유고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므로.


나는 남자로 태어날 거다. 고소한 정수리는 내게 여자로 살면서 참 인생 편하게 남자들 부려먹고 꿀을 빤다면서, 내가 만약 남자로 태어났으면 하루도 못 참고 자살을 택할 거라고 했다. 걔가 멍청해서 모르고 하는 말이다. 물론 여자의 삶이 편리한 점도 많다. 남자들의 습성 덕분에 여자들의 삶이 윤택해지는 건 확실하다.


대학 때 남자가 대다수인 학교를 다니면서, 매점에 가서 먹을 걸 고르면 어디선가 누가 튀어와 대신 계산을 해줬다. 필기도 손 아프게 내가 할 필요가 없이 누군가 열심히 해서 복사까지 해다 주는 동안 나는 그가 사준 커피를 마시며 기다리기만 하면 됐다. 심지어 그렇게 해달라고 부탁을 한 적도 없다. 법무연수원에 갔을 때 내 캐리어는 이 남자 저 남자 손에 연달아 끌려 다니며 내 손을 탈 일이 거의 없었다. 높은 지위의 남자 어른들한테 예의가 좀 부족해도 허용 범위가 굉장히 넓다. 까탈이나 짜증을 부려도 오냐오냐 해준다. 지저분하고 힘든 일은 고양이 눈으로 한번 쳐다보고 한숨을 폭 쉬면 굳이 아쉬운 태도로 요청하지 않아도 자발적 농노가 나서서 척척 해준다.


이렇게 나열하고 보면 고소한 정수리의 말대로 여자의 삶이 굉장히 꿀처럼 보이지만, 저건 어리고 미모를 유지하는 특정 시절에 한정된다는 사실을 나는 분명히 알고 있었다. 언젠가 머지않아 더 이상 남자들이 내게 보이던 전만큼의 호의를 보이지 않고, 나보다 더 어리고 더 예쁜 여자에게 환심을 사기 위해 내게 베풀던 호의를 퍼주는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될 것이다. 그 박탈감은 굉장히 크겠지. 게다가 이미 몇 년 전부터 너도 이제 꺾일 거라는 둥, 지 애를 낳을 생각도 없는데 무례하기 짝이 없는 노산 타령에다가, 같이 나이 먹는 처지에 여자 나이에 대한 끝도 없는 평가절하를 듣고 있자면 속이 팍 상하고 서럽다. 내가 봐도 어리고 싱그러운 여자 후배들을 보면 예쁘고 기분이 좋아지고 부럽고 눈길이 따라가기 때문이다.


뭔가를 받는다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지만, 결국 주는 사람이 존재하고 그가 마음을 먹고 주어야 받을 수 있는 것이므로, 이렇게 보면 여자들이 누리는 혜택이란 것은 굉장히 수동적이고 수혜적이며 한정적이라고 볼 수 있다. 라캉식으로 따지면 욕망의 대상과 타자의 시선의 객체로서 한 시절 존재하는 것이다. 어떤 주체의 격렬한 욕망이나 시선을 끌 만큼의 성적매력이 소멸하는 순간 그간 누리던 많은 것들도 함께 증발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욕망의 객체가 아닌 주체가 되고 싶다. 시혜의 입장이 되고 싶다. 내가 스스로 욕망할 대상을 탐색하고 구애하고 쟁취하는 입장이. 물론 요즘 세상에 여자도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하지만 나는 유교걸이기 때문에 그런 게 쉽지 않았다. 그리고 DNA에 새겨진 남녀 고유의 본능적인 행동방식이 있는 듯도 하고.

162센티미터 조금 넘는 쪼그마한 키에, 넘어지면 팔이 부러졌던 얇은 뼈대로 한평생을 살아온 나로서는, 아무리 내가 각종 운동을 꾸준히 해왔고, 사납게 굴고 센 척을 해봤자, 체격이 엄청나게 왜소한 남자와 힘으로 겨루면 상대도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몇 가지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다. 이건 굉장히 분한 점이다. 내가 아무리 검찰 수사관이고 어쩌고 저쩌고 해 봤자, 가로등이 없는 캄캄한 곳을 지날 때 귀신이 아닌 사람이 나타날까 봐 무서워 죽겠다든지, 기습 추행을 당한다든지, 고작 손목만 잡혔을 뿐인데 아무리 난리를 쳐도 벗어날 수 없다든지, 집착이 심한 남자를 만나 어떤 형태의 폭력을 당한다든지 했을 때는, 나도 우리 회사 기록에 등장하는 피해자들처럼 그냥 약하고 무력한 여자 중 하나일 뿐임을 뼈저리게 체감한다. 너무 자존심상하고 싫다.


환생을 하면 나는 키가 최소 177센티미터 이상은 되고, 얼굴은 잘생긴 남자로 태어날 거다. 외모를 가진 대신 부유한 가정이 아니어도 된다. 내가 열심히 살아서 일으키면 된다. 하지만 환생의 삶에서 화목하고 평범한 가족은 내가 이번 생에서 가장 간절히 원했지만 가지지 못했기에 필수 조건이다. 아빠의 직업은 철도 공무원이면 좋겠다. 굳이 그래야 하는 특별한 이유는 없지만 왠지 철도 공무원의 이미지가 돈은 넉넉하게 벌지 못해도 성실하고 가정에 헌신적이면서 자상한 남편과 아빠 느낌이 난다. 엄마는 사랑과 공감이 넘치는 가정주부면 좋겠다. 그리고 나는 다른 형제가 없는 외동아들. 이번 생에는 부족하고 한정된 자원으로 동생에게 양보를 강요당했던 상황이 지겹고 싫었기 때문이다.


나는 잘생긴 얼굴과 건장한 체격으로 험한 일도 마다하지 않고 성실하게 아르바이트를 해서, 어느 추운 겨울날 엄마 아빠한테 첫 월급으로 엄청 비싼 건 못 사도 질이 좋은 외투를 선물하고, 세 식구가 맛있는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소소한 일상 이야기를 나누고, 내 꿈과 목표에 대해 지지와 응원을 받고, 낡았지만 아기자기하게 꾸민 24평 주공아파트에서 26도 난방을 해서 훈훈한 온기가 감도는 집에서 잠이 드는 거다. 생각만 해도 몸과 마음이 따뜻해진다. 너무 큰 욕심인가? 이 정도는 다음 생에 기대해 봐도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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