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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사람의 고백

보잘것없는 저에게 귀중한 마음을 써주신 분들께 드리는 헌사

by Ubermensch






오늘은 스산한 날씨의 2025. 10. 11. 평범한 토요일이 될 뻔했던 날이다. 발레학원에 가는 길에 느닷없이 날아온 메일을 받기 전까지 그랬다. 본인이 로또에 당첨되면 내가 한평생 반복해서 가위에 눌릴 때마다 꾸는 끔찍한 악몽을 사주고 싶다는 이상할 만큼 뜨거운 심장을 가진 사람으로부터 온. 그 메일은 내 단단한 얼음 장벽을 뚫고 심장에 즉시 날아와 박혀버렸다.


어젯밤 유독 열혈 독자님들의 덧글이 많았던 내 로또 글이 한순간의 실수로 날아가서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는데, 캡처해 둔 파일을 찾아 다시 올렸지만 사람들이 눌러준 소중한 하트 100개와 수십 개의 덧글은 복구할 수 없어서 속이 무척 상했다. 그 덧글에는 내가 두 달간 작성한 글 중 사람들이 베스트로 꼽는 글들에 대한 언급과 분에 넘치는 칭찬이 난무했던, 글쓴이로서 행복하기 그지없는 내용이 빼곡히 있었는데, 내 빌어먹을 예쁘기만 한 손가락이 다 날려먹은 것이었다.


그런데 기적 같은 일이 생겼다. 이미 며칠 전 읽었을 같은 내용의 글에 사람들은 하트를 다시 눌러주기 시작했고, 날아간 내용과 동일한 내용의 덧글을 다시 써주고, 내 글 중 베스트로 꼽는 몇몇 글에 대한 독후감까지 더 자세하게 남겨 주신 것이다. 급기야 이미 장편 소설 출간 경험이 있는 한 작가님께서는 "한 직장 생활 28년, 글쓰기 20년, 많은 글을 써왔지만 추천 글은 처음 씁니다···."로 시작하는 내 일상소곡집에 대한 추천 서평을 본인의 브런치에 게시해 주셨다. 나는 다른 작가님들이 백날 천날 내 글에 와서 덧글을 써주시고, 하트를 눌러주시고, 응원을 해주시고, 메일을 보내주시고, 각종 분에 넘치는 찬양을 해주셔도, 오로지 내 관심사 니체 관련 글을 쓰시는 작가분 한 명 말고는 맞구독조차 안 하는 매정하고 경우 없는 사람이다.


오늘 이렇게 마음씨 따뜻한 작가님들의 뜨거운 애정을 날벼락처럼 연달아 얻어맞고 있자니, 내가 오랫동안 공들여 건설한 얼음왕국 속 빙하들은 속수무책으로 녹아내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내가 성공한 사람이라는 것을. 나는 돈도 한 달에 2백 몇십만 원밖에 못 벌고, 겨울에 난방도 못하고, 투자가치 없는 외곽 동네 집을 사느라 대출만 많고, 15년식 뽀동이는 녹슬고 찌그러지고 각종 경고등이 떠서 굴러다니는 게 신기한 데다가, 직업도 7급 공무원이므로 별 볼 일 없다. 사회 보편적 관점에서 본다면 나는 성공한 사람 근처에도 끼워주지 않을 거다. 하지만 나는 내가 성공한 사람이라고 오늘 확신하게 됐다. 삼십몇 해동안 딱히 행복했던 생일이 없었는데, 오늘은 생일도 아니면서 가슴속 행복이 충만함을 느낀다. 무쾌감증도 다 나은 것 같다.


그래서 오랫동안 속여왔던 사실에 대한 고백을 해보고자 한다. 나는 항상 당당한 척 센 척 아무렇지 않은 척을 했다. 어딘가 위축된 것을 들키고 싶지 않아서였다. 가진 게 많지 않으므로 그 결핍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내가 이룰 수 있는 최대한의 성취에 목을 맸다. 정이 별로 없는 척, 사랑을 안 하는척하고. 사랑한다는 말을 들으면 뒷걸음질 쳤던 이유는, 관계가 깊어지면 깨질까 무서워서 도망간 거였고. 혼자가 편하고 좋은 척하면서도 왜인지 다 커서도 인형을 끌어안아야 잠을 잔다. 한여름에 땀을 흘리면서도 무릎 위에 담요를 덮고 만지작거린다. 불쌍해 보이는 것보다는 못돼 보이는 게 나아서 그렇게 행동했고, 남겨지기 전에 먼저 떠나는 방식을 택했다.


자전적인 에세이를 쓰면서도, 저 너무 슬퍼요 고통스러워요 힘들어요 도와주세요 하는 식의 감정선을 드러낸 적이 한 번도 없다. 항상 괜찮다고 했다. 용서한다, 단단하다, 나는 강한 사람이라고 했다. 그런데 예리한 감각이 발달한 어떤 사람들은 내가 비워둔 행간에서 나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거나 애써 외면하고 있던 어떤 슬픔이나 고통을 감지해 냈다. 내가 스스로 속이고 숨기던 것들을 알아보신 거다. 그리고 나는 그 가능성에 대한 미필적 고의가 있는 채로 글을 썼을지도 모르겠다고 인정하기로 했다.


나를 안쓰럽게 여기며 난방비를 후원해주고 싶다는 한 작가님께, 저는 알아서 잘 삽니다 멸종 위기 동물이나 후원해 주세요 하면서,

아프리카 TV에서 여자들이 굳이 노출을 왜 하지? 글만 써도 이렇게 사람들이 돈을 보태주고 싶어 하는데. 라는 식으로 가볍게 넘기며 도움은 사양하면서도, 그 따뜻한 마음 덕분에 뜨겁게 차오르는 내 눈과 가슴의 울렁임은, 사실은 내가 그간 많이 추웠었다고 알려주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 따뜻한 손들을 저에게 내밀어주셔서, 혼자만의 왕국에 가득 차 있던 빙하를 녹여주셔서, 아주 많이 감사합니다. 하고, 오늘 이 자리를 빌려 고백해 봅니다. 오늘은 여러 분들 덕분에 조금 눈물이 났어요. 앞으로는 울리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오늘은 임경주 작가님 덕분에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부족함이 많은 저에게 마음을 나누어 주시고 큰 어른이 되어주셔서 감사합니다.

https://brunch.co.kr/@fausijfe/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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