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싫은 사람
어느덧 내가 가장 싫어하는 천고마비의 계절 가을이다. 말띠라 그런지 살도 좀 붙었다. 아침저녁으로 시려운 냉기가 옷 속으로 파고들고, 쨍하던 퇴근길은 어느덧 해가 저물어 깜깜하다. 밤눈이 몹시 어두워 불을 안 켜고 화장실에 가다가 늘 그곳에 있는 우리 집 지형지물에 걸려 넘어지기 일쑤인 나는 밤이 길어지는 상황이 불편하기 짝이 없다. 십 년 간 내 모든 일상을 일방적으로 보고 들어준 인간 일기장 선배님의 표현에 따르면 또 계절병이 도지는 중이다. 아침에 눈을 뜨는 게 너무 괴로워서, 지각할 걸 알면서도 10분을 더 자버리고. 긴 머리카락을 예쁘게 돌돌 말아 꾸미는 일은 한참 전에 포기해 버렸다. 이젠 머리를 말리지도 않고 물방울을 질질 흘리며 집을 나선다.
가을은 울긋불긋 딥 다크한 그 색채 자체가 울적하다. 내 피부색은 창백한 느낌의 쿨톤이라서, 흰색이나 하늘색처럼 맑고 푸른 계열의 색감이 잘 받기 때문에, 내 옷장은(그리고 방에 쌓여있는 옷으로 된 산들은) 그런 계열의 맑고 밝은 색들로 가득 차 있는데. 가을에는 베이지색이나 갈색처럼 온화한 계열의 웜톤 피부를 위한 색조의 착장이 계절감도 맞고 자연스럽다. 그래서 내가 주 4회쯤 택하게 되는 하늘색 옷을 입고 다니자니 어딘가 붕붕 뜨고 추워 보인다. 가을다운 색조의 옷을 굳이 찾아 입어보면 얼굴이 유독 칙칙해지고 못생겨 보여서 영 언짢다.
붉게 물든 낙엽이든, 노랗게 물든 은행잎이든 가을 나무에 매달린 것들은 결국 수분과 생기를 잃은 채 낙하한다. 눈도 비도 낙하하지만 그 뒤끝의 형체를 남기지 않고 물로써 세상을 정화하는 기능을 하는데, 가을이 지상으로 떨구는 것들은 사람들의 발길에 짓이겨지고 썩기만 한다. 가을이 풍요와 결실의 계절이라지만, 나는 그 결실은 잘 모르겠고, 가을 하늘의 청명하고 드높고 넓은 크기만큼 마음속 허기도 커다랗게 느껴진다.
가을의 과일도 그렇다. 나는 입안 가득 침이 고이는 상큼한 과일이 맛있다. 딸기나 복숭아나 자두나 체리나 앵두 같은. 가을의 과일은 사과, 감, 배 이런 못생기고 투박한 제사상에나 올릴 법한 영감님 전용 같다. 맛도 밍밍하고 영 특색을 모르겠다. 이런저런 가을이 싫은 이유에 대해 쭉 나열을 했지만, 가을에 대한 이 심리적 저항에서 비롯된 계절병의 근본적 이유는 따로 있는 듯하다. 가을은 한 해의 과반을 뜻하고, 조금만 지나면 나이 한 살을 더 먹게 되고, 그 계절의 변화로 체감되는 노화에 대한 거부감이 가을이 유독 싫은 가장 큰 이유이지 싶다.
어릴 때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어른이 되면 내가 대단한 사람이 되어 있을 줄로만 알았다. 그래서 뭐든 열심히 하고 최선을 다해 살아갈 이유가 있었다. 아직 정해진 게 없었기 때문이다. 그 미정의 상태는 불안을 동반하지만, 다가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꿈꿀 수 있기에 행복한 시절이다.
이제 눈을 빛내며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기보다는 타성에 젖어 관성의 법칙대로 흘러만 가면서 40대를 바라보는 이 시기에, 나는 참기 힘든 무력감을 느낀다. 김수영 시인의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에서 화자는 말한다. 모래야 나는 얼마큼 작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작으냐 정말 얼마큼 작으냐···
꿈꾸던 소녀 시절 나는 이다음에 크면 세상에 반짝반짝 빛나는 커다랗고 의미 있는 존재가 되고 싶었는데. 그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이렇게 모래나 먼지나 풀떼기처럼 작고 보잘것없는 존재로 늙어가게 될 줄은 몰랐다. 그래서 삶이 무척 비참하다.
안정적인 직장에 다니고, 물론 직장이 존폐의 위기에 처해 있긴 하지만, 비록 나보다는 은행 소유로 보는 게 더 적합하고, 경기도 외곽이긴 하지만, 내 한 몸과 고양이 두 마리를 누일 곳 있는 내 명의의 집이 있고, 찌그러지고 깨지고 녹슬고 간헐적으로 드드드득 소리를 내긴 하지만 잘 굴러다니는 열 살 먹은 뽀동이도 있고, 괜찮은 학벌과 지금까지는 곧잘 먹혀왔지만 곧 스러질 미모도 있었으니, 사회 보편적 관점에서 너 정도면 그렇게 신세를 한탄할 만한 사람은 아니라고 타박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사람마다 스스로에게 기대하고 목적했던 바가 있을 테고, 그런 게 없는 사람도 있겠지만, 어쨌든 그 기대하고 목적했던 바를 이런저런 이유로 이루지 못한 좌절감은 인생 전반에 짙은 그림자로 드리워 고통을 남긴다. 그래서 매일 일정 양의 괴로움을 느낀다.
봄의 벚꽃은 설레지만 가을의 단풍은 아무런 감흥을 일으키지 않는다. 가을의 선선한 바람은 그저 서글픔만 실어올 뿐이다. 그건 아마도 내 지독한 계절병 때문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