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이 너무 선명했다.
거울을 보다 말고,
서랍을 열고 린넨 셔츠를 꺼냈다.
그건 작년 여름에 단 하루 입고 넣어뒀던 옷이었다.
어떤 계절은 옷보다 먼저 내 안에 도착한다.
봄은 아직 다 안 끝났는데
길가엔 아직 벚꽃이 몇 송이 남아 있었다.
그래서 더 이상하게 느껴졌다.
나는 벌써 여름 옷을 꺼냈는데,
거리엔 아직 봄의 잔상이 붙어 있었다.
시즌이 바뀌는 건,
옷장보다 몸이 먼저 알아채는 일인지도 모른다.
얇은 셔츠 하나로는 부족할지도 몰라
하지만 오늘은 그냥 그렇게 입고 나갔다.
속이 다 비칠 정도로 얇은 셔츠.
어깨에 걸린 햇살과 바람이
조금은 무서울 정도로 가까이 있었다.
이 계절은 무방비한 사람만을 기억하는 듯하다.
그래도 나는 이 계절을 믿기로 했다
린넨 셔츠는, 어떤 날엔 방어막이고
어떤 날엔 신호탄이다.
나는 오늘, 여름을 얇게 입기로 했다.
이 계절이 내 마음을 다 데려가 버리기 전에
그냥 같이 걸어보기로 했다.
#여름을입다 #린넨셔츠 #계절이동 #브런치에세이 #감성기록 #옷과기억 #햇살이준순간 #얇은계절 #여름앞에서 #마음의기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