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은
단지 집을 벗어나고 싶었다.
누군가와 얘기하고 싶다거나
풍경을 바꾸고 싶다거나
그런 이유는 딱히 없었는데
그냥...
그 자리를 떠나고 싶은 기분이었다.
계절은 바뀌고
나는 아직 제자리에
햇살은 따뜻했고
바람은 살에 닿을 만큼 얇았다.
나는 무심코
창고 깊은 곳에 있던 텐트를 꺼냈다.
오래전 누군가와 함께 쓰려다
한 번도 쓰지 못한 그것.
펼치지도 않은 채 몇 해를 묵은 텐트는
묘하게 내 마음을 닮아 있었다.
그냥 펴보고, 그냥 앉아봤다
그날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텐트 하나 펴두고
그 안에 앉아 가만히 있었다.
누가 오지도 않았고
무엇이 생기지도 않았지만
그 안에 앉아 있으니
나 혼자서도 괜찮은 사람 같았다.
꼭 뭔가를 해야만 있는 하루는 아니니까
언제부턴가 밖에 나가고 싶은 이유를 말해야만 했고
무언가를 얻지 못하면 실패라고 여겼다.
하지만 텐트를 펴고
그냥 잠시 머물렀던 그 날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충분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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