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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문동 Aug 07. 2024

너를 두 번 낳을 결심 3

 온은 봄과는 모든 면에서 달랐다.

 사춘기에 가까운 나이가 되었지만 자상하고 쾌활한 성격을 잃지 않고 사람들을 다독거릴 줄 아는 아이였다. 온이 없었다면, 그때 온을 포기하고야 말았다면 지금의 삶은 어떤 모양이었을지 정윤은 종종 생각했다.


 온에게서 예상치 못한 위로를 받을 때면 정윤은 정의되지 않은 죄책감을 느꼈다. 혹자는 이런 것을 차별이라고 할 것이다. 혹자는 어른에게 위로를 해줘야 하는 상황은 아이에게 가혹하다 할 것이다. 그렇지만 정윤은 어쩔 수 없이, 도리가 없이 온의 위로와 애정을 구했다.


 온이 뱃속에서 수정되고 착상되기 시작할 무렵, 정윤은 임신을 알지 못하고 독한 습진 약을 먹었다. 봄을 낳은 이후에 생긴 증상이었고 약을 먹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괴로움이었다. 정윤은 기쁜 감정보다 당혹스러움을 더 크게 느꼈고 병원에선 임신을 중단하길 권했다. 아직 초기라서 괜찮을 거라고 했다.


 정윤은 괜찮다,는 뜻이 무엇인지 오랫동안 생각했다. 생각을 하는 동안 다시는 병원에 가지 않았고 아이는 뱃속에서 무럭무럭 자랐다. 아무에게도, 심지어 남편에게도 발설하지 않은 일이라 모두의 축하를 받으면서도 정윤은 홀로 갈등했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을 갈등하고 후회하고, 그 후회를 또 후회하며 열 달이 지나갔다.


 온은 태어나면서부터 정윤의 안도가 되고 기쁨이 되었다. 온을 처음 안는 순간 모든 것이 꿈이면 어쩌나, 아이들을 두고 영영 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한 채 꾸는 꿈 속이면 어쩌나 걱정했지만 다행히 온은 실재였고 실존이었다. 다만, 온의 오른쪽 새끼손가락만은 부재했다. 약지에 붙어있는 것 같은 그것은 없다고 해도 무방할 작은 것이었다.   


 열 달의 걱정과 갈등이 이것으로 마무리되는 것이라면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생각보다 많은 아이들에게 발생되는 것이고 정윤이 생각하는 그 이 명확한 원인이라고 밝힐 수 없다는 것도 확인했다. 수술로 고칠 수 있다는 말을 믿었다. 무엇보다 자신이 잘 돌볼 수 있을 것이라 자신했다. 정윤은 문제를 피부로 느끼기 전까지 얼마든지 자신하는 유형이었다. 그러다 문제가 코앞까지 다가오면 몸을 웅크리고 시간이 지나가길 기다리는 사람이었다.


 온은 자신의 장애가 별거 아니라는 듯 씩씩했다. 온의 좋은 점 중에서도 가장 좋은 점은 공감능력과 상황 파악이 뛰어나다는 것이었다. 온은 마치 유능하고 능숙한 사회자처럼 부지런히 사람들의 안색과 분위기를 살폈다.


 봄은 일찍 일어나면 절대 혼자 노는 아이가 아니어서 자는 정윤을 일어날 때까지 깨워댔지만 온이 자라면서 누나와 함께 놀기 시작했다. 정윤은 아이를 기르면서 깨진 수면 리듬으로 인해 새벽에 잠들고 아침에 깊이 잠들었기에 그 잠깐의 숙면이 매우 소중했다.


 온은 다섯 살이 되도록 시옷 발음을 하지 못해 웃음거리가 되곤 했다. 도두관에 가자, 엄마 너무 타랑해, 타탕이라고 말할 때마다 함께 웃었다.


 “괜찮아, 온아. 원래 시옷 발음은 일곱 살 때 완성되는 거래. 온은 아직 다섯 살이니까 못하는 게 당연하지. 누나랑 비교하면 안 돼. 봄은 언어에 관해서라면 좀 특별하니까.”


 봄이 특별하다는 이야기에 온은 질투를 느꼈고, 모두가 온으로 인해 함께 웃는 것에 봄은 샘을 냈다.


 온에게 ‘아가’라는 말을 한 번도 쓰지 않을 만큼 봄의 마음을 지켜주려 노력했으나 번번이 실패했다. 봄에게 온은 걸리적거리고 번거롭고 귀찮은 존재일 뿐이었고 온에게 봄은 넘을 수 없는 산이었다. 공평하게 대하려 애를 쓸수록 둘은 서로의 존재를 과하게 의식했다. 너무 힘을 줘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튀어나가는 공 같았다.   


 글을 사랑하지만 쓰는 방법을 몰라 시달리던 때처럼 아이들을 사랑하지만 사랑하는 방법을 몰라 헤매는 시간이 계속되었다. 지나치게 사랑한다는 말이 성립한다면 정윤은  아이들을 지나치게 사랑했다.

 하지만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과 상대가 사랑을 느끼게 한다는 말은 동의어가 아니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과 자아를 포기한다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니었다.

 아이들이 잠들면 정윤은 겨우, 사랑한다고 속삭였다.


 이처럼 정윤의 사랑은 아슬아슬하고 생경했다. 정윤은 늘 다른 부모들의 사랑이 알고 싶고 배우고 싶었다. 그들은 누구에게서 배웠는지 또한 알고 싶었다. 타인들의 사랑은 완벽할 것이라고 정윤은 오해했고 그렇게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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