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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문동 Aug 07. 2024

너를 두 번 낳을 결심 4

온 Ⅱ

 온은 다섯 살 가을에 모음과 자음을 익히기 시작했다. 하루종일 끈기 있게 연습해도 다음 날이면 까맣게 잊어버리곤 하는 그 모습이 기특하면서도 안쓰러웠다. 그렇게까지 열심히 하는 이유도, 금방 휘발해 버리는 기억력도 정윤으로선 이해하기 힘든 것이었다. 그저 넌 정말 열심히 하는구나, 하고 사실만을 말해 줄 뿐이었다.

 

 며칠 전, 그러니까 봄과의 대립이 있고 난 며칠 뒤, 봄과 온이 크게 싸웠다.

 어떤 물건이 서로 자기 것이라고 언쟁을 하다가 급기야 봄이 온의 머리를 손바닥으로 내리치고 만 것이다. 정윤은 크게 화를 냈다. 어릴 때도 하지 않던 몸싸움을 이제 와서 하다니.

 무엇보다 아이 둘이 치고받고 싸우지 않는다는 것은 정윤의 자부심이기도 했다. 정윤의 가족들도 친구들도 모두 부러워하는 점이었다.


  왜 동생을 때리느냐고 물었을 때 봄은 오래되고 익숙한 대답을 내놓았다.

 “엄마가 아는 온은 진짜 온이 아니라니까?”

 “내가 너희 둘의 진짜 모습을 모른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건 네가 나를 모르는 거지.  난 너희들을 모르지 않아.”


 “엄만 한 번도 못 봤잖아. 온이 나를 향해 짓는 표정. 엄마는 절대 볼 수 없는, 엄마에게 뒤통수를 보일 때만 가능한 그 표정! 저 손가락 병신이!”


 온은 돌이 되기 전 손가락에 철심을 받고 허벅지의 피부를 이식하는 수술을 받았지만 새끼손가락이 남들보다 짧고 피부의 색도 미세하게 달랐다.  


 정윤은 손을 하늘 높이 쳐들었다가 주먹을 한번 꽉 쥐고 다시 내려놓았다. 봄의 기억력은 매우 좋은 편이라 일곱 살에 엉덩이 한 대 맞은 일을 두고두고 언급했다. 봄의 기억은 잊히고 싶은 권리를 모두 앗아갔다. 정윤은 그런 봄의 기억들이 피곤했다.


 “봄아, 다정도 능력이 되는 시대인데, 넌 참 무능력하구나.”


 떠오르는 수많은 생각 중 정윤이 낚아채서 입 밖으로 겨우 뱉은 말이었다.

 봄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봄이 마지막으로 우는 모습을 본 것도 오래전이었다.


 “넌 네가 참 잘났는 줄 아는데, 그래서 타인들을 공격하고 비난할 권리를 가지고 있는 줄 아나 본데, 큰 착각이야. 넌 무능력한 이기주의자일 뿐이야.”


 봄은 결국 입술을 깨물며 방 밖으로 나가버렸고 온은 살며시 정윤을 안아주었다. 정윤이 화를 내면 온은 언제나 먼저 다가와 정윤을 안았다. 그런 모습도 봄에겐 혐오스러운 장면일 뿐이겠지만 정윤은 다가오는 온을 내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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