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여행 중 가장 긴 운전 시간이 소요되는 날이다. 아침 일찍 서둘러 크로아티아를 떠나 슬로베니아로 들어갔다. 오스트리아로 향하는 길에 슬로베니아의 유명한 블레드 호수를 잠시 들려볼 계획이었다. 그러나 슬로베니아에 도착한 순간, 이 썰렁함은 무엇인지... 블레드 호숫가의 노랗고 붉게 물든 단풍들은 아름다웠지만, 성수기가 아니어서인지 인적도 없고, 블레드 호수의 물 색깔은 사진으로 보던 그 환상적인 모습이 아니었다. 다소 실망스러운 모습에 우린 문을 연 동네 피자집에서 간단히 식사만 한 후 오스트리아로 출발을 재촉하였다.
오늘의 중요한 코스는 해가 지기 전에 그로스글로크너 하이 알파인로드(Grossglockner High Alpine Road)를 넘는 것이다. 이 도로는 오스트리아와 이탈리아의 국경을 가로지르는 알프스 산맥 속,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높은 산인 그로스글로크너를 지나간다. 그로스글로크너는 높이가 약 3,798미터로, 오스트리아의 지붕이라 불릴 만큼 웅장하고 위엄 있는 산이다.
48킬로미터에 걸쳐 산악 지역을 휘감아 도는 이 도로는, 절경을 자랑하는 풍경 덕분에 많은 여행자들의 꿈의 코스로 손꼽힌다.
오늘은 이 도로를 지나 산을 넘어가면 나오는 첼암제(Seebach) 마을에서 숙박할 예정이다.
첼암제 마을에 있는 첼호수는 그 물이 맑고 깨끗하기로 유명하고 주변의 알프스 산맥이 마치 그림처럼 둘러싸여 있어 환상적인 풍경을 선사한다고 하여 이곳으로 숙소를 잡았다.
하지만 이 모든 경치와 매력적인 계획이 완벽하게 이어지려면, 한 가지 중요한 과제가 있었다. 바로 해가 지기 전에 그 고산지대를 안전하게 넘어가야 한다는 것. 여행 전부터 도로가 폐쇄되지 않는지 계속 확인하였지만, 오늘의 날씨가 비와 눈이 섞여 내리고 있던 터라 상황이 급변할 수 있어 걱정이었다. 플리트비체에서 위험살벌한 안개를 경험했었기에 오늘은 어두워지기 전에 저 하이 알파인로드를 안전하게 잘 넘어 숙소에 도착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생각했다.
그로스글로크너 알파인로드(Grossglockner High Alpine Road)를 이용하는 데에는 요금이 부과되는데, 2025년 현재 기준으로 차량 요금이 €37.5 이니, 한 번 도로를 지나가는 비용이 꽤 비싼 편이긴 했다.
도로가 쉽지 않은 코스이다보니 보통 5월부터 10월까지만 개방이 되는데 우리는 거의 끝자락에 이곳을 지나게 된 셈이었다.
한 마디로, 알파인로드는 웅장했다. 산을 오를수록 하늘을 찌를 듯 우뚝 솟은 봉우리들이 드넓고 끝없이 펼쳐졌고 고산지대의 장엄한 풍경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로스글로크너는 단순히 높은 산이 아니라, 그 자체로 하나의 자연의 기념비 같았다. 산을 오를수록 눈앞에 펼쳐지는 경치가 끊임없이 변화하며, 그 크기와 위력에 점점 더 압도당했다. 이 산은 인간의 존재를 초월한 듯, 그 자체로 거대하고 신비로웠다. 다만, 주변의 색감과 날씨에서 오는 차가움 때문에 초록빛이 가득한 산과 산 꼭대기의 눈이 어우러지면 더 생동감 있게 다가왔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남긴 했다.
다행히 저녁 해질무렵 안전하게 첼암제에 도착해 짐을 풀 수 있었다. 근처 마켓에서 장을 봐 온 뒤, 아이들은 요리사처럼 가족들을 위한 식사를 준비했다. 신선한 채소와 치즈가 가득 담긴 샐러드, 고소한 토마토 스파게티, 그리고 바삭하게 튀긴 너겟까지, 피곤하지도 않은지 아이들은 신나게 요리를 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함께, 여행의 하루가 또 마무리됐다. 이렇게 소소하지만 의미 있는 순간들이 쌓여, 오스트리아에서의 밤을 더욱 따뜻하게 만들어 주었다. 이 여행이 끝나도, 마음속에 이런 소소한 순간들이 오래도록 함께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