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등시절을 돌아보며 이 아이에게 남은 건 신나게 놀았던 사춘기시절의 진한 잔상과 평생을 함께할 수 있는 형제 같은 친구들이다. 휘몰아치던 사춘기시절.. 마트 갔다 오는 길 스터디카페 간다고 나갔던 아들이 여자 친구와 함께 있는 모습을 보고 기가차기도 했고, 시간제한을 걸어놓은 PC와 핸드폰이 회색빛깔 이상한 그래프를 보여주던 일도 다반사.. 아빠는 막기 바쁘고 아이는 뚫기 바쁘고.. 결국은 하고 싶다는 건 어떻게든 다 하는 아들을 보며 두 손 두 발 다 들 수밖에 없었던 그 시절. 이렇게 공부도 안 하고 노느니 가족들과 여행이나 가자 싶어 한번은 제주도여행을 갔다.
에메랄드빛 바다를 품고 아들이 서핑을 하는데, 서너 시간이 넘도록 넘실대는 파도의 타이밍을 맞추겠다고 포기하지 않고 계속 꼬꾸라지면서도 다시 또다시 또! 끊임없이 패들링을 해 깊이깊이 들어가는 아들의 모습을 보며 그 모습이 마치 사춘기 폭풍 속에서 헤매고 있는 아들의 모습 같아 뒤돌아 눈물 흘렸던 기억이 있다. 마치 서핑을 하던 그 모습처럼 깊은 고뇌속에서 잘 헤쳐나오기를 기도했다.
그런 아이가 중3 전학을 오며 서서히 달라지기 시작하더니 겨울방학부터 180도 달라졌다. 격변의 사춘기를 끝내고 아이는 원래의 의욕 넘치고 잘 웃는 모습으로 엄마와 대화도 잘하는 완연히 성숙한 어른의 모습으로 돌아와 주었다.
우리 식구는 모두 잠이 많은데, 아이는 방학기간 아침 7시 반에 일어나 졸린 눈을 비비며 꼬박꼬박 아침운동을 하고 매일같이 스카를 가서 하루종일 공부를 했다. 방학 동안 엉덩이에 종기가 두 번이나 났고 저녁이면 하도 앉아있어 엉덩이가 아프다고 할 정도였다. 너무 오랜만에 공부를 하다 보니 처음엔 몸뿐만 아니라 머리도 잘 돌아가지 않았다. 굳어진 머리를 공부모드로 바꾸는데도 한참의 시간이 필요했다. 당연히 원하는 만큼의 성과도 나오지 않았다. 난 아이가 혹여 실망할까 지치지 않고 달릴 수 있도록 온 힘을 다해 응원했다.
"네가 그동안 논 시간이 있기 때문에 아무리 해도 오르지 않는 힘든 시간이 분명 있을 거야. 그 시간을 반드시 견뎌내야만 해. 분명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나아가다 보면 반드시 급격한 성장을 이룰 테니 너 자신을 믿고 해 봐." 라며 아이들 응원하고 격려해 주는 것 외엔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없었다. 다행히 아이는 분명 힘든 일과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도 힘든 기색 없이 하루하루를 알차게 보냈다.
"전 신나게 놀아봤기 때문에 괜찮아요. 전 꼭 제가 원하는 걸 할 거예요"라고 확신에 차 말하는 아들의 눈빛은 하늘의 별 보다도 반짝였다.
이 동네 치열한 고등학교에 적응해 가면서 우리 아들은 매일매일 깨달음을 얻는다. 그래도 첫 시험에서 아이는 너무 멀어 보였던 꿈에 성큼 다가설 수 있었고, '이러다 진짜 되겠는데?' 하는 가능성을 충분히 맛봤다. 모든 공부를 골똘히 생각하고 깊이 들여다보면서 분석했고 자신에게 맞는 공부법을 알아내기 위해 노력했다. 여러 번의 시험을 거칠 수록 아이는 방법을 터득했고 가장 효율적인 공부법을 찾아가며 자신감을 얻어갔다.
지난번 시험에서는 "엄마 이번에는 학원 다 끊고 혼자 준비해 볼게요"라는 말과 함께 혼공을 선언했다. 학원을 가지 않으니 많은 숙제 양에 치이지도 않고 옆에서 보기엔 시간 여유가 좀 많아 보여 내심 걱정이 되기도 했다. 공부하는 게 한층 여유로워졌다. 온갖 자료를 찾아가며 제본을 뜨고 추가 자료를 찾아가며 알아서 공부하더니 난이도가 있던 시험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최고의 성적을 받아와 나를 놀라게 하기도 했다.
힘들게 움켜잡고 가는 게 아니라 여유로운 마음으로 즐기며 갈 줄 아는 이 아이는 공부를 하며 스스로 깨달음을 얻을 때마다 내게 달려와 종알종알 자신이 새롭게 알게 된 걸 얘기해 준다. 유레카를 외친 아르키메데스처럼 엄청나게 감격해 눈을 반짝이며 말이다. 그럼 난 감사한 마음으로 신나게 들어준다. 힘들다는 고등학교 시절을 자신의 미래를 꿈꾸며 설렐 수 있는 아들이어서 참 감사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