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썸의 윤리학

말하지 않았으니 책임이 없다는 사람들

by 김형건

“우리는 사귄 게 아니잖아.”


그 말은 면죄부처럼 쓰인다. 그 관계가 명확히 규정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상처받은 사람에게는 오해의 책임이 주어지고, 침묵했던 사람은 의도하지 않았다는 말로 빠져나간다.


그들은 감정을 일으켜 놓고도, 관계를 시작한 적이 없다며, 감정은 그 사람의 것이었을 뿐이라며, 조용히 등을 돌린다.


‘썸’이라는 말은 그래서 잔인하다. 이름도 없고, 약속도 없지만, 기억은 남고 감정은 흔들리며 상처는 분명히 남기 때문이다.




‘썸’이라는 단어는 관계를 숨기는 장막이다

한때는 ‘플러팅’이라고 불렸다. 그보다 더 옛날에는 ‘밀당’이라는 말이 유행했다. 지금은 ‘썸’이다. 그리고 이 모든 말에는 명확하게 말하지 않기 위한 기술이 숨어 있다.


이 관계는 연애도 아니고, 우정도 아니다. 둘은 매일 연락하고, 서로의 일상에 관심을 보이고, 때로는 연인처럼 걱정하고, 때로는 모르는 사람처럼 피한다. 마치 정해지지 않은 게임처럼, 그 규칙은 늘 유예되고, 서사는 늘 어긋난다.


정의하지 않음으로써, 관계는 책임에서 자유로워진다. 그러나 감정은 그 자유를 견딜 수 없다. 썸은 언어의 회피로 만들어진 구조이지만, 감정은 말보다 먼저 반응한다.


말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책임이 없는 걸까

“사귀자고 한 적 없어.”

“그건 그냥 친한 거였어.”

“너 혼자 그렇게 느낀 거 아냐?”


이런 말은 익숙하다. 그러나 그 안에는 묘한 무책임이 숨어 있다. 관계는 말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책임을 피할 수 없고, 감정은 계약이 아니기에 무효화할 수 없다.


썸이라는 이름 아래에서 가장 흔하게 벌어지는 일은 바로 이것이다. 감정을 자극하면서도, 그 감정이 커지면 뒤로 빠지고, 관계를 제안하지도 않지만, 관계처럼 행동한다.


이건 단순한 어장관리가 아니다. 말하지 않음으로 권력과 안전을 확보하려는 구조다. 말을 하지 않았기에, 언제든 도망칠 수 있고, 말을 하지 않았기에, 상대의 감정은 ‘착각’으로 몰아갈 수 있다.


감정의 유효성은 말에 의해서가 아니라, 태도에 의해 발생한다

우리는 종종 사랑을 말로 정의하려 한다.

“사귀는 거야?”

“좋아하는 거야?”

“이건 뭔데?”


하지만 인간 관계에서 감정은 말보다 훨씬 먼저 시작된다. 먼저 도착하는 건 ‘느낌’이고, 그 느낌은 반복된 행동, 꾸준한 관심, 애매한 기대 속에서 증식한다.


썸이라는 말은 그래서 구조적으로 불균형한 감정의 실험실이다. 한쪽은 확신 없는 태도로 유예하고, 다른 쪽은 확신을 원해 스스로 감정을 해석한다.


“그렇게까지 한 거면 나한테 관심 있었던 거 아냐?”

“그 사람이 먼저 연락하고 먼저 보자고 했는데…”

“기대한 내가 잘못인가?”


그리고 어느 날, 그 사람은 조용히 빠져나간다.

“사귀는 거 아니었잖아.”

이 한마디와 함께.


그 한마디가 무너뜨리는 것들

그 말은 단지 관계를 정리하는 말이 아니다. 그건 감정을 지워버리는 말이다. “그건 너 혼자 느낀 거였어”라는 선언이며, “나는 아무 약속도 하지 않았어”라는 판결이다.


하지만 감정은 판결로 소멸되지 않는다. 말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감정의 존재 자체를 지워버릴 수는 없다.


말을 하지 않았어도, 그 사람의 태도는 분명히 누군가의 마음을 흔들었다. 말을 하지 않았어도, 함께한 시간은 어떤 감정의 빛깔로 채색되었다. 말을 하지 않았어도, 그 모든 감정은 누군가에게는 진짜였다.


썸은 계약이 아니지만, 관계다

우리는 너무 자주 관계를 계약처럼 정의하려 한다.

“고백하지 않았으니까, 아니고.”

“사귀자고 안 했으니까, 무효고.”

“그건 그냥 호의였어.”


그러나 그런 태도야말로 윤리적 책임의 부재를 드러낸다. 감정이란 말로 계약하지 않아도, 그 행동은 상대의 감정을 유도하고, 그 시간은 분명히 관계의 서사를 만들었다.


그 관계가 사귀는 사이가 아니었다면, 오히려 더 섬세하고 조심스러워야 했다. 감정의 가능성만 존재하는 시기일수록, 그 가능성에 대한 존중이 윤리적 태도다.


윤리가 필요한 건 사랑이 아니라 썸이다

연애는 오히려 명확하다. 사귀자고 말했고, 만나기로 약속했고, 서로의 위치와 감정에 대해 어느 정도 정리된 공간이다.


그러나 썸은 말이 없고, 경계가 없고, 방향이 없다. 그만큼 상대의 감정은 더 불안정하고, 더 흔들리기 쉽다. 그리고 그 틈을 이용해, 감정을 일으키고도 책임지지 않으려는 사람이 있다.


“그건 그냥 친절이었어.”

“넌 왜 다르게 받아들였어?”

“네가 너무 몰입한 거잖아.”


그 말은 사실상 “나는 의도는 있었지만 책임은 없다는 뜻”이다. 의도와 책임 사이를 가볍게 도약하는 말. 그게 썸의 가장 비윤리적인 순간이다.




감정이 시작될 때, 책임도 함께 시작된다

우리는 사랑이라는 말을 너무 쉽게 꺼내는 시대에 살고 있다. 반면, 책임이라는 말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그러나 진짜 감정은 —사랑이든 우정이든— 책임을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을 때 비로소 정당하다.


썸이라는 이름 아래에서 벌어지는 무수한 상처들. 그건 감정이 잘못된 게 아니라, 감정을 유도하고도 책임지지 않으려는 태도가 잘못된 것이다. 사귀지 않았다고 해서, 그 사람이 느낀 감정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썸이라는 관계 앞에서,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말하지 않았더라도,

그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있었고,

그 마음을 이용할 수도 있었고,

그 마음을 외면할 수도 있었던 순간들.


그 모든 선택의 순간마다 우리는 하나의 사람이 된다. 책임지지 않기로 선택한 사람. 아니면, 상대의 감정을 인정하고 손을 내밀 수 있는 사람. 윤리란 거창한 선언이 아니라, 그 작은 선택의 축적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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