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단톡방의 침묵은 누구의 책임인가

디지털 관계에서의 응답 윤리

by 김형건

단톡방에 글을 올렸다. 한참이 지나도 아무도 반응이 없다. 누군가는 이미 읽었다는 걸 보여주는 ‘1 사라짐’ 표시. 그 이후에도 고요한 정적.


나만 이 말을 기억하고 있는 것 같고, 모두는 잊은 듯 지나가고 있다. 아무 말도 없다는 사실이, 어쩐지 나 혼자만 감정을 가진 것 같은 착각을 만든다.


그럴 땐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오른다.

“우리는 언제부터,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서 상처를 주게 되었을까.”




디지털 관계는 말하지 않음으로도 충분히 해석된다

과거엔 아무 말이 없으면 그냥 ‘모른다’고 여겼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읽었는지, 언제 읽었는지, 로그인 중인지, 심지어 입력 중인지까지도 보인다.


그 모든 흔적들이 “말하지 않았지만, 반응하지 않은 당신의 의도”로 해석된다. 침묵은 중립이 아니라 의사 표현이 되어버린 시대.


누군가의 침묵은 누군가에겐 분명한 메시지다.

“네 말에 별로 관심 없어.”

“굳이 반응할 필요는 못 느껴.”

“알았는데 그냥 넘겼어.”


문제는 그 말들을 상대는 한 번도 말한 적이 없다는 점이다.


읽씹은 상처가 아니라, 상처의 구조다

“읽고도 대답 안 하면 기분 나쁘다.”

이 문장은 이제 많은 사람들에게 너무나 자연스럽다.


그러나 생각해보자. 우리는 정말로 그 사람의 침묵이 나를 무시했다는 걸 알까? 아니면 내가 그렇게 해석하기로 선택한 것일까?


읽씹은 단순한 무응답이 아니다. 그건 디지털 시대가 만들어낸 감정 해석의 프로토콜이다. ‘읽었다’는 사실이 남는 한, 그 사람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어떤 의미를 남긴 것이 된다.


그리고 그 의미는, 종종 상대가 아닌 나의 상상력 안에서 더 증폭된다.


단톡방의 침묵은 개인의 피로일까, 공동체의 해체일까

사람들은 이제 ‘단톡방 피로감’을 말한다.

너무 많은 말

너무 빨리 사라지는 말

나와 상관없는 말

반응을 요구하는 말


그래서 점점 말이 줄고, 이모지 반응이나 ‘ㅋㅋ’ 한 줄로 감정을 절약하려 한다. 우리는 감정을 보여주는 대신, 감정을 관리하고 있다.


단톡방은 원래 공동체를 위한 공간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오히려 말하지 않음으로 나를 보호해야 하는 공간이 되었다.


“나까지 굳이 반응할 필요 없잖아.”

“누가 하겠지.”

“내가 왜 굳이 먼저…”


이러한 생각은 자연스럽지만, 결국 모두가 아무 말도 하지 않음으로써 공동체는 침묵의 방향으로 흘러간다.


말이 사라진 자리에 남는 것들

침묵은 종종 상처보다 더 오래 간다. 상처는 이유라도 있지만, 침묵은 이유를 찾는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단톡방에 올린 말이 무시당했다고 느끼는 순간, 사람은 관계를 회의하기 시작한다.

“내가 여기서 어떤 위치지?”

“다들 나를 불편해하는 걸까?”

“혹시 내가 과한 말을 했나?”


그 침묵의 공백을 채우는 건, 늘 말하지 않은 쪽이 아니라 말한 쪽이다. 말한 사람이 해석하고, 반성하고, 조심한다. 침묵한 사람은 그저 지나간다. 그래서 침묵은 종종 관계를 끊는 방식이자, 상처를 주는 비언어가 된다.


모든 응답은 감정의 연료다

우리는 대답을 원한다. 동의하지 않아도 좋고, 반대해도 괜찮다. 하지만 아무 말도 없을 때, 사람은 ‘무시당했다’는 감각을 가장 크게 느낀다. 그건 사실 ‘상대의 말’보다도 ‘존재의 부정’에 가까운 감정이다.


“나는 여기에 있었고, 너를 향해 말을 했는데 너는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다.”


그 한 줄의 감정은 수많은 관계를 침묵 속에서 말라가게 만든다.


침묵을 탓하기 전에, 관계의 리듬을 물어야 한다

물론 모든 침묵이 악의적인 건 아니다. 피곤할 수도 있고, 바빴을 수도 있다. 혹은 ‘굳이’라는 감정이 먼저였을 수도 있다. 우리 모두 그런 입장이 되어본 적 있다.


하지만 그 침묵이 반복되면, 관계는 질문을 품기 시작한다.


“우리는 아직 말이 닿는 사이인가?”

“이 관계는 누가 유지하고 있는가?”

“나는 여전히 이 공간 안에 있는가?”


그 질문이 오래 지속되면, 사람은 떠나고, 관계는 쓸쓸하게 텅 빈 방이 된다.


침묵은 메시지가 될 수 있지만, 응답은 윤리다

말하지 않을 자유는 누구에게나 있다. 하지만 그 자유는 감정의 관계를 맺는 순간부터, 책임의 윤리와 충돌하게 된다.


모든 말에 답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누군가의 감정이 걸린 말에는, 단 한 줄의 응답이 누군가의 하루를 바꿀 수도 있다. 때로 “응”, “맞아”, “그렇구나” 같은 말 한마디가 침묵보다 더 많은 감정을 구할 수 있다.


응답은 친절이 아니라 감정의 윤리다

우리는 늘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실제로는 점점 덜 응답하는 인간들이 되어가고 있다. 말의 홍수 속에서 오히려 말이 고갈된 시대. 그렇기에 더더욱 응답이라는 행위는 관계의 가장 작지만 깊은 책임이 된다.


그 단순한 행위 하나가, 당신과 누군가 사이의 거리를 조금 덜 외롭고, 조금 더 인간적으로 만들어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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