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우린 가족 같아”라는 말의 착시

친밀함이 때로 침해가 되는 순간들

by 김형건

“넌 진짜 우리 가족 같아.”

“너는 내 동생 같아서 더 챙겨주고 싶어.”

“우린 그냥 친구 이상이잖아, 거의 가족이지.”


그 말은 따뜻하다. 가족은 가까운 존재이고, 함께한 시간이 쌓였다는 의미이며, 지속 가능성을 내포한 관계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어떤 순간, 그 말은 경계를 지우고 책임을 요구하며, 마땅히 받아야 할 것들을 더이상 요구하지 못하게 만드는 언어가 되기도 한다.




‘가족 같다’는 말이 주는 정서적 환상

가족이라는 말은 우리에게 무조건적인 지지를 상기시킨다. 가족은 돌아갈 곳,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 조건 없이 품어주는 존재라는 이미지로 포장되어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관계의 깊이를 말할 때, 그보다 더 강한 말이 없다고 느낀다. ‘연인’보다 더, ‘절친’보다 더, ‘영혼의 단짝’보다 더 확실한 말.


“넌 내 가족 같아.”


그 말은 모든 것을 포함하는 듯 들리지만, 사실은 모든 것을 생략하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가족은 항상 안전한 존재였을까

현실에서의 가족은 꼭 따뜻하지만은 않다. 때로는 가장 먼저 상처를 주는 존재이기도 하고, 의무와 책임, 위계와 통제를 동반하는 구조다.


“가족인데 이 정도는 참아야지.”

“네가 좀 더 이해해 줘야지, 피가 섞였잖아.”

“넌 이 집에 속했잖아, 그러니까 따라야지.”


이러한 문장은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감정의 경계를 침범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그것은 사랑의 형태로 가장한 책임의 요구이며, 관계를 벗어날 수 없도록 만드는 심리적 포획 장치다.


‘가족 같아’라는 말은 종종 관계의 위계를 만든다

사람들이 “가족 같다”고 말할 때, 그건 종종 상대에게 더 많은 감정노동을 요구하는 말이 된다.


“가족 같으니까 서운해하지 마.”

“가족이니까 이 정도는 해줘야지.”

“그렇게 말하는 거 좀 상처야, 가족끼리 그러면 안 되잖아.”


문제는 이 모든 말이 동등한 관계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비대칭적이라는 것이다. 가족이라는 이름은 종종 ‘가까움’을 이유로 경계를 허물고, 감정의 피로를 강요하고, 상대가 ‘아니오’라고 말할 권리를 빼앗는다.


친밀함은 동의 없이 공유될 수 없다

“너는 내 가족 같아.”


이 말이 진심일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상대가 그 감정에 동의했는가다. 나는 가족 같지 않은데, 상대가 나를 가족처럼 대해온다면, 그 관계는 오히려 불편함과 억압으로 바뀐다.


친밀함은 혼자서 성립되지 않는다. ‘우린 가족 같잖아’는 말은, 상대가 그 감정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일종의 감정적 폭력이 될 수도 있다.


‘가족 같다’는 말이 관계를 멈추게 만들 때

“우린 가족 같으니까.”

이 말은 감정을 안정시키는 데 사용되기도 하지만, 관계를 더 이상 질문하지 않게 만드는 종착점이 되기도 한다.


왜 이 관계는 불편한가?

나는 왜 이 사람에게 거리감을 느끼는가?

이 관계는 여전히 서로에게 유의미한가?


이 질문들을 건너뛰고, “가족이니까, 원래 그런 거야”라고 말해버리는 순간, 관계는 고착되고, 감정은 숨는다. 가족이라는 말은 사랑을 감싸는 듯하지만, 사실은 많은 질문을 지우는 일이다.


친밀함은 강요 없이도 지속될 수 있다

진짜 가까운 사이는 “우린 가족이야”라고 말하지 않아도 서로를 배려하고, 경계를 존중하며, 상대의 침묵과 불편함까지 읽으려는 태도에서 비롯된다.


‘가족 같다’는 말보다 더 강한 유대는 서로의 경계를 지켜주는 감각이다. 내가 편하다고 해서, 상대도 나를 편하게 여겨야 한다고 믿는 순간, 우리는 관계를 소유하려 들게 된다. 그리고 그 소유의 감정은 친밀함이 아니라, 통제의 감정이다.


가까워도 선이 필요하다

가장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 정확한 경계가 필요하다. 가족이든, 연인이든, 친구든 관계를 지켜주는 건 경계다. 그 경계는 거리를 두기 위한 것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감정을 위한 안전장치다.


우리가 서로를 오래 좋아하기 위해선 가까워지되, 지나치지 않아야 한다.


‘가족 같다’는 말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어야 한다

“가족 같아”라고 말하고 끝내지 말고, 그 말의 안쪽을 다시 묻자.


나는 이 사람에게 어떤 기대를 하고 있었나?

나는 상대가 나를 어떻게 대하길 원하고 있었나?

나는 진짜 이 관계를 존중하고 있었나?


그 질문들 속에서, 우리는 그 말을 가장 따뜻하게, 그러나 가장 조심스럽게 사용할 수 있게 된다. 가족이란 단어가 따뜻해지기 위해선, 그 안에 자유와 동의, 그리고 경계가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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