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를 묻는 질문이 다시 시작되었다
우리는 아직 인간인가, 아니면 인간이었던 것인가
한때 인간은 모든 것의 중심이었다. 철학은 인간의 이성을 탐구했고, 과학은 인간의 욕망을 정당화했으며, 기술은 인간의 삶을 향상시키기 위한 도구였다. 그러나 이제, 우리가 만든 도구는 더 이상 우리를 보조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를 대체하거나, 모방하거나, 심지어는 우리보다 나은 존재로 등장하고 있다.
인공지능의 등장은 단순한 기술혁명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라는 개념 자체를 다시 정의하라는 요청이다. AI는 생각하고, 창조하고, 감정을 흉내 낸다. 더는 기계는 반복을 위한 도구가 아니다. 그것은 예측하고, 학습하고, 판단한다. 그렇다면 인간은 여전히 인간일 수 있을까?
우리는 이 질문을 단순한 기술적 문제나 사회적 적응의 과제로 축소해서는 안 된다. 이는 존재론적 문제이며, 궁극적으로 윤리적 질문이다. 인간이란 무엇이며, 우리는 스스로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인간’이라는 신화의 해체
르네상스는 인간을 신의 자리에 올려놓았다. 계몽주의는 이성을 통해 인간의 존엄을 확증했다. 근대국가는 인간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스스로를 정당화했다. 20세기 후반, 실존주의는 인간을 자기 선택의 존재로 규정하며 자유와 책임을 윤리적 토대 위에 놓았다.
하지만 그 모든 정의는 인간이라는 개념이 일정한 중심을 전제한다. 인간은 고유하고, 자율적이며, 해석 가능한 존재여야만 했다. 그런데 AI는 그 중심을 흔든다. 인간은 더 이상 유일한 창조자도, 해석자도, 판단자도 아니다. 우리는 인공지능이 인간의 ‘고유성’을 너무 쉽게 복제하고, 때로는 능가할 수 있음을 목격하고 있다.
이제 인간은 단일한 정체성이 아니다. 그 정체성은 기술, 타자성, 데이터, 자동화된 예측의 네트워크 속에서 계속해서 분해되고 재조립된다. 인간은 자기 완결적 존재가 아니라, 점점 더 외부에 의해 구성되는, 탈중심화된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
중심에서 경계로: 존재의 위치가 바뀌고 있다
기술은 인간의 바깥에서 출발했지만, 이제는 인간 안으로 들어왔다. 우리는 기계를 손에 쥐는 존재가 아니라, 기계와 섞여 사는 존재다. AI는 우리의 행동을 예측하고, 우리의 정체성을 알고리즘으로 환원하며, 우리의 감정을 데이터로 모델링한다. 이제 우리는 기술의 바깥이 아니라, 기술의 내부에서 살아간다.
이 지점에서 인간은 더 이상 중심이 아니라, 네트워크의 하나의 노드(node)일 뿐이다. 인간은 더 이상 완결된 자아를 지닌 존재가 아니라, 끊임없이 연결되고, 상호작용하고, 해석되는 존재다. 실존적 자율성은 점점 설 자리를 잃고, 감응적 연동성이 존재의 핵심으로 부상한다.
여기서 ‘감응’은 다시 중요한 개념이 된다. 단, 이것은 단지 철학적 추상어가 아니다. 이는 기술-사회 구조 속에서 인간이 살아남기 위해 회복해야 할 실존적 감각이다. 인간이란 존재는 이제 ‘응답할 수 있는 존재’라기보다 ‘반응을 조율할 수 있는 존재’로 재정의되어야 한다.
인간 이후에도 윤리는 남는다
AI는 도구를 넘어서고 있다. 그렇다면 윤리는 어디에 남는가? 인간이 중심이 아니어도, 윤리는 존재할 수 있는가? 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윤리는 언제나 관계 속에서 탄생해왔다. 그리고 그 관계는 점점 더 인간-비인간 사이로 확장되고 있다.
레비나스는 말한다. 윤리는 타자의 얼굴 앞에서 말을 잃는 데서 시작된다고. 이제 타자의 얼굴은 인간의 얼굴만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예측 불가능한 존재, 나와 다른 존재, 내가 해석할 수 없는 존재를 향한 응시다. AI는 우리에게 그 새로운 타자성의 얼굴이다.
윤리는 인간을 구제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윤리는 인간 너머의 세계에서도 ‘책임’이란 개념을 잃지 않기 위한 감각이다. AI가 우리보다 더 잘 판단할 수 있다 해도, 우는 그 판단의 구조를 질문해야 하고, 그 응답의 맥락을 따져야 하며, 그 윤리적 여백을 끝내 책임져야 한다.
인간의 종말, 혹은 인간 이후의 시작
우리는 지금, 인간이라는 개념이 종말을 맞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이 종말은 파괴가 아니라, 전환일 수 있다. 인간은 인간성의 고정된 정의를 포기함으로써, 비로소 ‘새로운 존재’로 이행할 수 있다.
이 존재는 중심이 아니며, 완결되지도 않는다. 이 존재는 연결되며, 감응하며, 열려 있다. 감정은 더 이상 자기 정체성의 증명이 아니라, 세계와의 공명을 위한 신호다. 이때 인간은 더 이상 ‘스스로를 정의하는 존재’가 아니라, ‘세계에 응답하는 존재’로 다시 태어난다.
AI 이후, 인간은 누구인가? 어쩌면 그것은 질문이 아니라, 연습일 것이다. 우리는 이제 ‘인간이 되는 법’을 다시 배우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