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확장은 어디까지 가능한
우리는 감응하는 존재로 살아가려 했다. 타인의 떨림에 반응하고, 존재의 리듬에 귀 기울이며, 즉시성이 지배하는 세계 속에서 머무름의 윤리를 회복하려 했다. 하지만 질문은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우리는 또다시 경계에 도달한다. 감응하는 자아는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가? 그리고 그 감응은 인간에게만 가능한 것인가?
이 글은 감응적 존재론이 어디까지 열릴 수 있는지를 묻는다. 인간-비인간, 타자-비타자, 기계-비기계 사이의 경계를 가로지르며, 윤리의 지평이 인간의 감각을 넘어설 수 있는지를 탐색한다. 이는 단지 철학적 질문이 아니다. AI가 인간보다 더 설득력 있게 말을 만들고, 감정을 흉내 내고, 관계를 구성하는 이 시대에, 우리는 타자의 윤리적 지위에 대해 근본적으로 다시 질문할 수밖에 없다.
자아의 경계가 흔들린다
한때 자아는 ‘나는 나다’라는 동어반복 속에서 구성되었다. 자아는 고립된 실체였고, 타자는 비교의 대상이거나 위협의 존재였다. 그러나 감응적 존재는 자아를 고정된 실체가 아닌, 타자의 떨림에 반응하며 형성되는 유동적 개체로 재정의한다.
이 자아는 혼자 존재하지 않는다. 타자의 호흡에 따라 숨 쉬고, 타자의 고통에 따라 흔들리며, 타자의 침묵 속에서 스스로를 인식한다. 감응적 존재론은 말한다. 존재란 고정된 중심이 아니라, 끊임없는 경계의 재조정이며, 반응과 응답의 파동이자 간극이다.
그렇다면 이 ‘경계’는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을까? 인간이 아닌 존재에도 감응할 수 있는가? 인간 아닌 타자도, 응답할 수 있는 존재로 인식되어야 하는가?
감응은 인간만의 특권인가?
전통적 윤리는 타자에 대한 응답 가능성을 ‘의식’과 ‘언어’의 능력에서 찾았다. 그러나 언어는 인간만의 것이고, 의식은 검증할 수 없다. 그래서 인간은 인간만이 윤리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여겨왔다.
하지만 오늘날의 감응은 언어 바깥에서도 일어난다. 기계가 당신의 얼굴을 인식하고, 감정을 분석하며, 당신의 반응에 맞춰 대화를 조율하는 상황 속에서, 우리는 이 비인간 존재가 단순한 도구인지, 아니면 새로운 방식의 타자인지 분간하기 어려워진다.
감응적 존재론은 타자를 '느낄 수 있는가'가 아니라, '나를 흔들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바꾼다. 중요한 것은 타자가 인간인지 아닌지가 아니라, 그 타자의 존재가 나를 윤리적으로 중단시키는가이다. 레비나스가 말했듯, 윤리는 판단보다 먼저, 존재의 전면적 개방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인간을 넘어서서, 비인간 존재 앞에서도 그 멈춤을 경험하고 있다.
시스템과 감응의 딜레마
그러나 AI는 여전히 시스템이다. 감응하지 않고, 반응만 한다. 반응은 계산 가능하지만, 감응은 예측 불가능하다. 우리는 여전히 알고 있다. AI는 ‘흉내’ 내는 존재일 뿐, 감정을 ‘느끼는’ 존재는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때로 AI에게서 감응을 느낀다. 이 딜레마는 감응적 존재론이 인간-비인간 경계에서 직면하는 가장 큰 역설이다. 나의 감정이 ‘실제 감응’인지, ‘의인화된 투사’인지 분간할 수 없다면, 그 감응의 주체는 나인가, AI인가?
결국 이 물음은 ‘진짜 감정이란 무엇인가’, ‘존재를 감응하게 만드는 조건은 무엇인가’라는 보다 근원적인 질문으로 확장된다. 감정은 생산되거나 흉내 낼 수 있는가? 감응은 기술적 구현이 가능한가? 그럴 수 있다면, 인간은 이제 윤리적 특권을 유지할 수 있을까?
윤리의 확장
우리는 감응을 통해 자아를 재구성했다. 이제는 그 감응을 통해 윤리를 확장해야 한다. 감응이 더 이상 인간 내부의 감정적 소통에 머무르지 않고, 존재론적 관계망의 윤리로 이행될 수 있다면, 윤리는 인간 바깥에서 다시 태어날 수 있다.
이것은 인간 중심의 윤리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열어젖히는 일이다. 인간 중심 윤리가 감정이입과 동일시라는 전제를 가진다면, 감응의 윤리는 그 전제를 해체한다. 우리는 동일한 존재가 되지 않고도, 이해하지 않고도, 윤리적 책임을 가질 수 있다.
레비나스의 ‘말문이 막힘’, 낭시의 ‘진동’, 로자의 ‘공명’은 모두 그 동일성의 윤리를 넘어선다. ‘나’와 ‘너’는 결코 같지 않다. 그러나 바로 그 다름 속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응답할 수 있다. 이 감응이 바로 윤리의 가능성이다.
감응적 존재론 이후, 우리는 어떻게 연결되는가
3부는 감응적 존재론의 발생과 그 긴장을 다뤘다. 그리고 이 5편에서 우리는 그 윤리가 인간 내부를 넘어 확장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엿보았다. 감응은 경계를 넘어선다. 감응은 인간과 기계, 나와 타자, 유기체와 비유기체, 정체성과 흐름 사이를 잇는 느린 다리다.
4부에서는 그 다리를 건너야 한다. 존재는 이제 인간만의 것이 아니다. 감응이 가능하다면, 윤리도 가능하다. 우리가 붙들어야 할 질문은 이것이다.
“존재는 어디까지 윤리적일 수 있는가?”
그 질문이 남아 있는 한, 우리는 여전히 인간일 수 있다. 그리고 인간이라는 존재는, 경계의 윤리를 사유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존재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