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선택의 프랑크푸르트

by 웨이드


마지막 여행지인 독일의 많은 도시들 중 크리스마스 마켓이 있고 그린델발트에서 교통편이 좋은 곳을 찾다가 결정하게 된 프랑크푸르트.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프랑크푸르트는 관광하는 곳이 아니라 보통 경유하는 도시라서, 하루나 이틀만 묵는다고들 했다.

내내 한인민박과 호스텔에 묵다가, 마지막은 호텔에서 지내기로 했다.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고 여독도 있을 거라 쉬어가는 느낌으로 이래저래 알맞다고 생각했다.


호스텔에서 아침을 차려먹는 것도 꽤나 좋았지만, 차려진 뷔페에서 여유롭게 식사하는 것도 참 좋은 기억으로 남았다.


터키보이와는 종종 문자를 하다가, 한 번씩 영상통화를 했다. 즐겁게 통화하다가도 babe, honey 같은 호칭을 사용하며 사랑한다는 그의 말을 듣자니 마음이 혼란했다.


이건 지금 사귀는 상황인가? 아니면 이 사람 나라의 문화는 원래 호감만 있어도 love you 인가?

나는 지금 사별한 지 반년도 안 돼서 이래도 되나?

근데 이게 만약 사귀는 거라면, 앞으로는 어떻게 되는 거지?


혼란스러운 마음과는 달리 말은 "love you too"라고 나왔다, 실제로 그에게 전화가 올 때 옆에 있던 사람이 나의 행복을 느낄 정도로 그를 너무나도 많이 신경 쓰고, 좋아하고 있었다. 좋아하는 이유를 정확히 집을 수 없었기 때문에 사랑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렇게 정하고 나니까 나는 어쩔 수 없는 구제불능 쓰레기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너무 미안해. 5년을 만나고도 몇 개월 만에 다른 사람을 사랑하다니. 정말 정말 미안하지만, 그 순간에는 그에 대한 생각이 하나도 안 났다.



호텔 레스토랑에서 조식을 먹다 만난 엄마뻘의 여성분 일행과 종종 대화를 나눴다. 음악예술 계열의 교수님들이었는데, 신앙심이 깊은 크리스천이라 그런지 가정을 이루는 것에 대한 중요성에 대해 강조했다. 그럴 때마다 내 처지를 비관한 눈물, 부러움의 눈물, 슬픔의 눈물이 또르륵 흘렀다. 당황할 앞, 옆 사람의 상황을 가릴 정신도 없었다. 지하철에서 길거리에서 시도 때도 없이 후두둑 눈물을 흘렸던 그 모습으로 다시 돌아간 것 같아 불쾌하고 난감했다.

그러다가도 터키보이에게 전화가 오면 금세 헤벌쭉 한 내 실없는 모습은, 잘 때만 되면 비수로 돌아와 뇌를 푹 찔렀다.

동시에 같이 여행 중인 동생과 딥 토크를 하고 싶어 안달이 난 내 모습이 더해져 애정결핍처럼 느껴졌기 때문에 더욱 기분이 바닥을 쳤다. 일생을 조용하고 무던한 이미지로 살던 내가, 속내를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투 머치 띵커인 내가 저 깊이 썩어있는 마음을 적고 있는 이곳을 4명의 친구들에게 알린 순간이 뼈저리게 후회되는 날들이었다.


어쨌거나, 여행이 일주일밖에 안 남은 시점에 나의 슬픔을 일시적으로 지워버리는 이 미지의 사람을 다시 만나서 내 마음을 확인하고 싶었다. 아니 사실은 확인이고 나발이고, 다시 만나고 싶었다.

한국으로 가는 티켓을 3주 뒤로 미루고, 이스탄불로 가는 편도 티켓을 끊었다. 일주일 정도면 마음을 확인하기에 충분한 시간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주일 이후에는 다른 나라나 지역을 더 여행하고 귀국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행과 작별 인사를 하고 도착한 이스탄불. 퇴근을 하고 공항으로 데리러 온 그의 모습을 보자 머릿속이 심플해졌다. 아, 이 사람을 만나러 왔구나.

만나자마자 내 모든 짐을 뺏어 들고 남은 손을 나에게 내미는 그 사람이 너무나도 놀랍게 느껴졌다. 그 사이 터키인은 어떤 사람들인지, 터키 남자는 어떤 타입이 많은지 등 갖가지 검색을 해 본 게 무의미했다.


티켓을 바꾼 그날은, 우연을 운명으로 바꾼 선택의 순간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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