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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웨이드 Sep 09. 2024

6. 지뢰밭 위의 뚜벅이

화생방 훈련인 줄 알았더니 아로마 가습 체험


 우리 집 앞은 너무 위험하다.

예쁜 옷이 많아 지갑이 위험한 그런 거 말고,

깡패가 많아 위험한 그런 것도 아니고.


 그와 안 다닌 골목을 찾는 게 어렵다.  함께했던 식당, 카페, 마트와 피시방, 편의점과 공원. 도처에 위험한 지뢰들이 나를 폭파시키려 도사리고 있다.

  집을 떠올리는 자체도 힘들어서 언니집에 한참을 있다 들어왔다. 이사를 가야 하나? 하다가도 추억을 등지고 어딘가로 떠날 용기도 없고, 막막했다.


 장례식 첫날에 거의 첫 손님으로 와서 한참을 있다 간 지금의 룸메이트(이하 몽)에게, 밥을 사 줄 테니 집 앞으로 나오라고 했다. 남편상도 아니고 애인상 자리에서 불편하고 어색했을 텐데, 혼자 앉아 오랜 시간을 지켜준 마음이 너무 든든하고 고마워서 가장 먼저 대접하고 싶었다. 다음날이면 회사 복귀를 해야 하는데 집에 들어갈 엄두가 안나 언니집에 은둔하고 있을 때였다.


몽은 나를 집으로 불렀다. 본가에 갔는데 어머니가 나랑 먹으라고 LA갈비를 재워 싸주셨다고, 구워줄 테니 오라고.

집에는 너무너무 가기 싫었는데, 그대로 말을 못 했다. 체면 탓이었다. 그 와중에 동생한테 집에 못 간다고 징징대는 내 모습이 철딱서니 없게 느껴져 창피했다. 하는 수 없이 쿨한 척 집으로 간다고 하고 덜덜 떨며 택시를 탔다.


 대문에서부터 갈비 굽는 달달 짭짤한 냄새가 솔솔 났다. 계단을 올라가며 다시 숨이 콱 막히기 시작했다. 귀가할 때, 퇴근하고 집에서 저녁준비를 하며 습관적으로 통화를 하고 연락을 하던 그는 이미 뼛가루가 되어 없다는 실감이 느닷없이 몰아쳐 정신이 아득했다.


언니! 씻고 먹을 거지?



몽은 퇴근 후 집에 오면 씻고 밥을 먹는 내 루틴을 알고, 준비하고 있으니까 천천히 씻고 나오라고 했다.

 오랜만에 내가 좋아하는 샤워젤로 샤워를 하고 나와 하우스 메이트 두 명이 정갈하게 차려준 밥을 먹었다. 가슴은 답답했지만 나름대로 괜찮았다. 무엇보다 차려준 음식이 맛있었다.


 "언니가 요리를 잘해서 엄마가 걱정하더라. 맛있을까 모르겠다고."

 그 시기 뭘 잘 안 먹어서 위가 많이 줄어있었고 식욕도 없었는데, 오랜만에 보통 사람이 먹는 1인분을 다 먹었다. 음식도 정말 맛있었고, 나를 반겨주는 마음이 고맙고 왠지 안심이 됐던 것 같다. 그리고 그런 그들에게 잘 먹는 모습으로 걱정하는 마음을 안심시키고 싶기도 했다. 그러면서 동생이 덧붙인, 언니가 없으니 집이 너무 썰렁했다는 말에 괜히 기분이 좋았다.


 며칠 뒤 윗 방의 한 동생과(이하 ) 거실 식탁에 앉아 얘기를 나누던 중이었다.


"언니, 혹시 바다 같이 갈래?"


바다. 특히 부산에서 그와의 좋은 기억들이 많아 '바다'라는 단어만 들어가도 가슴이 콱 막혀 친구들이 바다에 가자고 했을 때 다음을 기약하자고 미뤘었는데, 그때는 어쩐지 따라가고 싶었다. 면대면으로 거절을 잘 못하는 내 성격 탓인 걸까.


 근처 공유 차량을 빌려 장롱면허인 내 대신 이 운전대를 잡았다. 그렇게 떠난 강릉 바다는 정말 파랗고 시원했다.

 

신발을 벗고 모래사장을 걷는데 그와 손을 잡고 걸었던 해변가에서 느꼈던 따뜻한 손의 온도, 깔깔거리며 웃던 순간들, 내 신발을 들어주던 다정함이 표창이 되어 이마에 푹푹 꽂혀 너무 아팠다.

복했던 순간들이 나를 이렇게 공격할 줄이야, 배신감 만땅에 완전 괘씸하고 모든 게 원망스러웠다. 싸우고 안 좋았던 나쁜 기억들만이 오히려 나를 치유할 것만 같았다.

 놀러 나온 분위기를 깨는 게 싫어 즐거운 가면을 쓰고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데,


 "나 완전 남친같지 않아?"

발에 묻은 모래를 씻는데 내 양말과 신발을 든 채로 물기를 닦으라고 휴지를 주더니 양말까지 신겨주며 이 말했다.

  "킥킥, 그러게 정말."

 한 번에 밀려오던 슬픔이 잠시 멈췄다. 표창에 맞아 피가 줄줄 흐르던 이마에도 나도 모르는 새 빨간약이 발라져 있었다.


  바닷길을 걷고 아이스크림도 먹고 물회까지 잔뜩 먹고선 휴게소를 들러 맥반석 오징어를 사서 운전자 입에 쏙 넣어주며 집에 오니, 슬픔이고 뭐고 피곤해서 거실에 철퍼덕 앉아버렸다.

 그렇게 잔뜩 먹어놓고선 과자까지 까먹으며 한참을 수다 떨다 늦은 밤에 누웠는데, 그날은 잠도 푹 자고 평생 가지 못할 것 같던 바다를 또 가고 싶어 져서 스스로 웃겼다. 근데 웃기면 어때, 백수일 때 가야지. 하며 지금도 티켓을 끊을까 말까 하는 변덕쟁이 마음으로 코레일 앱을 들어갔다 나왔다 한다.


 괴롭기만 할 줄 알았던 공간이 나름 살만 하다는 것을 알고 나니 조금은 덜 무서워졌다. 공황장애 환자에게 "공황으로는 절대 죽지 않아요. 몸이 살고 싶어서 내보내는 증상입니다" 하고 죽지 않는다는 사실만 인식시켜도 증세가 많이 호전된다는 것처럼.


 나에게 독이 될지 약이 될지 모르지만, 지금도 많은 지뢰들과 화생방 훈련실이 득실거리는 온 서울 바닥을 맨 몸으로 부딪혀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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