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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웨이드 Sep 16. 2024

7. 너무 슬픈 게릴라 상영회

정신 차리세요, 꿈이에요



 태몽도 잘 꾸고, 예지몽까진 아니지만 비슷한 느낌의 특별하고 신기한 꿈을 종종 꾸곤 했던 나는 꿈과 꿈 해몽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꿈은 무의식의 발현이라고는 하지만, 그게 백 퍼센트는 아니었으면 했다. 어떤 초자연적인 무언가가 주는 메시지였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느닷없이 가버린 남친이 너무 보고 싶어서 꿈에라도 나오기를 기다렸지만 그는 목소리만 나오거나, 뒷모습만 나오거나 하며 꿈속에서도 나를 피해 다녔다.


 어느 날, 매장에 불쑥 나타난 그는 사실 사고가 뻥이었다며 아무렇지 않은 말투와 표정으로 뻔뻔하게 나타났다. 나는 너무 놀라고도 좋아서, 그를 조금만 혼내고 나서 일단 나가서 이야기를 하자며 그 사람을 창고에 잠시 숨겨둔 채 바로 회사에 조퇴 신청을 하고 그를 데리고 나오려는데 꿈에서 깨버렸다.


 매장 내부 인테리어도 뒤죽박죽에 생생하지도 않은 꿈을 꾸고선 이게 현실인지 꿈이었는지 헷갈렸다. 퉁퉁 부은 눈을 뜨고 한참을 생각하던 내 두뇌가 천지분간을 할 수 있게 됐을 땐,   내용을 반복재생하며 원하는 방향으로 의미 부여하고 있었다. 의식이 곧 돌아오려고 꿈에 나왔나 보다, 하며.


 그 이후, 꿈을 잘 안 꿨다. 꾸더라도 목소리만 어렴풋이 나오고 모습이 보이지 않았는데 왠지 내 얄팍한 마음을 알아채고 '응 아니야. 정신 차려'라고 하는 것 같아 찔렸다.

 이미 지나간 꿈을 현실에서 일어난 일처럼 계속 곱씹으며 시간을 보내고, 갑자기 잠깐씩 잠들 땐 필름이 끊기는 것처럼 뚝- 하고 잠이 들었다.



 '지금도 혹시 트루먼 쇼처럼 웨이드 쇼 같은 게 아닐까? 내가 전 세계 사람들의 오락거리가 되더라도, 그 사람이  쇼에서 하차한 뒤 어디엔가 연기자로 살아가며 나와는 다시 못 만나는 운명이어도 살아있다면 좋겠다'


-


 목소리 출연만 간신히 하던 그가 오랜만에 꿈에 나타났다. 슬플 새도 없이 너무 감사하고 다시 없어질까 걱정하며 손을 꼭 붙들고 있다가 문득, '49재 중인데 어떡하지? 멈춰달라고 해야 하나? 다른 돌아가신 분들을 위해 천도재로 바꿔달라고 해야 하나?'  행복한 고민이었다. 그리고 꿈에서 깨니, 여태 왜 꿈에 안 나왔는지 한 번에 이해가 됐다.


생생하고 좋은 꿈을 꿀수록 현실의 내가 와르르 무너질 게 뻔했기 때문이다. 현실을 알고 나를 아는 내 무의식이 방어막을 친 거였다. 그 꿈을 꾸고 나는 한참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냥 가만히 누워있다가 한 번에 증발해서 이 세상에서 사라져 버리고 싶었다.


이 꿈을 꾸기 한참 전, 뇌사 상태로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어떤 꿈을 꿨다. 그가 새로 사귄 친구들과 해외로 여행을 갈 건데, 나를 두고 간다며 놀리는 꿈이었다.

 장난기가 많아 나를 다양하게 많이 놀렸지만 어디 혼자 간다고 놀릴 사람은 아니었다. 어딜 가면 나랑 시간을 맞춰 가거나 꼭 다음에는 같이 가자고 하는 사람이 나를 두고 여행을 간다며 놀리는 모습이 너무 낯설고 이상하고, 공포영화처럼 무서웠다. 

또 친구가 몇 없고 낯을 많이 가리는 그가 새 친구를 갑자기 여러 명 사귀었다는 것도 이상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같은 시기에 생사의 기로에 갈려있던, 생사의 기로에 있는 사람들이었나 싶기도 하다.


 꿈이 좋으면 현실이 힘들고, 꿈이 나쁘면 그 후유증으로 또 현실이 힘들고. 좋은 꿈이 좋은 걸까 나쁜 꿈이 좋은 걸까. 또다시 생각이 많아져 머리가 터져버릴 것 같았다.


 책 제목처럼 꿈 백화점이 있다면, 포장지로 잔뜩 싸서 풀어보기 어렵게 한 뒤 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풀어보려면 아주아주 많은 정성과 노력이 들도록. 그러면 어느 피곤한 날은 포장 풀기를 내일로 미루고, 어느 슬프고 힘든 날은 그다음 날로 또 미룰 수 있게, 깊은 잠을 오래오래 자야지만 그 끝에 간신히 풀어볼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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