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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철현 Jun 28. 2018

걱정 마, 순댓국이 영혼까지 데워 줄 거야

음식여담(飮食餘談) 9 - 순댓국의 격려


나에게 순댓국은 '혼밥'이었다. 점심 약속이 없는 날이면 남대문 시장 어귀 간판도 없는 가게를 찾아 순댓국을 먹곤 했다. 속이 허해서 걸진 국물 음식이 무척이나 당기는 날에도 난 순댓국 앞에 앉았다. 힘껏 내달린 다음날 아침 속 쓰림 잦아들기를 간절히 바랄 때 홀로 순댓국 먹으며 땀을 흘리기도 했다.

 

먹으면서 난 종종 이런 생각을 했다. 큼직이 순대를 써는 아낙과 그 앞에 쭈그리고 앉아 소주 한 잔 털어 넣고 순댓국 한 숟가락 훌훌 떠먹는 남자의 구부정한 뒷모습. 그는 아등바등 하루를 살고 비로소 그 순댓국을 마주했으리라. 그의 삶은 고단하지만 어쩌면 그 한 그릇은 서슬 퍼런 세파도 견딜만한 온기를 주지 않았을까.


이런 정서가 담겨 있다고 여긴 탓에 난 순댓국을 '혼밥'으로 대했는지 모른다. 나에게 순댓국은 왁자지껄 얘기 나누며 먹기보다는, 혼자 묵묵히 휘휘 저어 순대와 내장과 머리 고기 사이를 헤치며 진한 돼지 맛 밴 국물을 떠 입에 넣으면서 든든한 용기를 얻고 싶을 때 찾는 음식이었던 것이다.


이 정도 쓰면 혼자 순댓국을 먹는 모습, 자못 비장하게 느껴질 수 있겠다. 하지만 실제로 늘 그런 것은 아니다. 이런 거창한 정서가 밑바탕에 깔려있다고 하더라도 사실 일상에서 내가 '혼밥' 순댓국을 먹는 이유는 따로 다. 아내가 순댓국을 썩 내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같이 있을 때 먹을 기회가 없으니 혼자 메뉴를 선택할  있을 때마다 으레 순댓국 집을 찾게 됐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순댓국 한 그릇을 먹으면서도 이런저런 이유를 붙이기엔 우린 충분히 바쁘게 살고 있다. 뭘 먹었는지 기억하지 못하고 지나치는 끼니가 부지기수니깐.


그렇더라도 혼밥을 할 때면 유독 순댓국을 고집했던 이유 그냥 지나쳐지지 않는다. 순댓국 한 그릇에 듬뿍 담긴 정서를 곰곰이 떠올려 보기도 했다. 순댓국은 본디 서민의 음식이었다. 고기는 접하지 못하고 남들 손사래 치는 내장 부위로나마 기름기를 보충하려 했던 우리네 민초들이 먹었다. 순대의 '대'는 자루를 뜻하는 한자 대(袋)에서 왔다는 게 통설이다. 어째서 '순'이 붙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고 한다. 만주어 '순타(sunta)'가 순대로 바뀌었다는 주장도 있다. 몽골에서는 예로부터 유목생활을 하며 가축의 고기와 피를 창자에 넣어 먹었고 이를 순타라고 불렀다. 이 순타가 고려시대 몽골군의 침입과 함께 들어왔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 순대의 유래에 대한 정설은 없다.



순대가 우리 기록에 처음 나오는 것은 1800년대 말의 '시의전서'다. "창자를 뒤집어 깨끗이 빨아 숙주, 미나리, 무를 데쳐 배추김치와 함께 다져서 두부를 섞는다. 파, 생강, 마늘을 많이 다져 넣고 깨소금, 기름, 고춧가루, 후춧가루 등 각색 양념을 넣고 돼지 피와 함께 주물러 창자에 넣는다. 부리를 동여매고 삶아 식혀서 썬다"라고 돼 있다. 오늘날의 순대 조리법과 유사하다.


이 순대를 돼지를 삶은 국물에 넣고 데우면 순댓국이 된다. 순대뿐만 아니라 머리 고기, 내장도 그릇에 담긴다. 국물을 부었다 비우고, 다시 붓는 토렴의 과정을 반복하면 한 그릇의 순댓국이 만들어진다. 하지만 순댓국을 완성하는 것은 온전히 먹는 이의 몫이다. 순댓국 전문 식당에서 "순대만", "내장만", "순대 빼기", "내장 빼기", "머리 빼기" 등 기호에 따른 호방한 주문이 교차하는 것을 보면 안다. 주방에선 일사불란하게 순대, 내장, 머리 고기를 넣고 뺀다. 이렇게 주방에서 나온 순댓국은 새우젓, 양념, 소금, 들깨 가루를 어떻게 넣느냐에 따라 다시 저마다 다른 음식이 된다.


순댓국을 즐기는 우린, 몇 차례 실패하면서 자신만의 취향을 찾는다. 그것은 단순한 주문에 응축돼 있지만 때론 몹시 복잡하게 형성돼 온 그 사람의 인생을 대변한다. 예를 들어 난 탄수화물과 지방 섭취를 줄이기 위해 '순대 빼기'와 '머리 빼기'를 번갈아 주문한다. 그러면서도 내장의 고소한 맛은 포기하지 못한다. 처음엔 식당에서 만든 그대로 먹지만 두 번째 방문부터는 새우젓도 양념도 소금도 최대한 넣지 않으려고 한다. 밥을 말지 않지만 반쯤 먹었을 때 깍두기 국물을 넣어 새콤하게 바뀐 국물을 즐기기도 한다. 가장 좋아하는 것은 건더기 수북하게 기름진 한 숟가락 먹고는 매운 고추로 뒷맛을 정리하는 것이다. 이렇게 한 그릇을 비우고 나면 난 왠지, 든든하게 용기를 얻었다고 느낀다. 처음엔 머뭇거렸지만 혼자서도 호기롭게 소주 한 병 주문하고 싶은 마 절로 생긴다.


하여 다이나믹듀오도 '거품 안 넘치게 따라줘'에서 이렇게 노래했던 모양이다. "날 데려가 내 영혼을 데워줄 곳에. 한동안 못 갔던 하동관에 가거나 청계천에 아바이 순대 먹으러 갈까나. 그 국물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순간 난 깨닫곤 해. 충분해. this is good life." 제법 잘 살고 있다고 깨닫기 충분한, 영혼을 데워 주는 국물이라니. 오랜 시간 '혼밥'하며 이른바 영혼을 데워줄 순댓국을 찾아가는 것처럼, 우리 삶은 어쩌면 답을 찾아가는 과정 위에 있는지 모른다. 새우젓 3분의 2 스푼, 양념 한 스푼, 들깨 가루 한 스푼, 소금 반 스푼을 넣으면 가장 맛있다고 가게 벽에 정답이 붙어 있을지라도, 그것이 내 입맛에 맞지 않다면 전혀 쓸모없다. '이렇게 먹으면 가장 맛있어'라고 권한들 아무 소용없는 것이다.


우린 이것저것 넣고 빼며 우리가 원하는 맛을 스스로 찾아가고 있다. 하물며 순댓국도 그런데 다른 것은 오죽할까. 내 비록 이번 그릇에선 양념이 과해 맛을 해쳤을지라도 다음엔 절제해야 한다는 것을 아로새겼다면 그 한 그릇도 헛되지 않다는 얘기다. 우리가 사회에서, 직장에서 맞닥뜨리는 숱한 좌절 역시 마찬가지다. 늘 갈등하고 상처받지만 언젠가 우리는, 순댓국을 좋아하지 않는 내 아내도, 결국 영혼을 데워줄 한 그릇을 찾게 될 것이라고 난 믿는다. 순댓국은 무심하게 끓으며 말하고 있다. "너를 응원 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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