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 크리스마스
영화는 엔딩 크레디트에 올라오는 수많은 배우와 스태프들 만큼이나. 다양하고 복잡한 감정들을 담고 있다. 영화를 보면 매번 조금은 다른 장면들을 보게 되고, 다른 대사에 감동하고, 다른 표정들이 보이고, 모든 부분을 조금은 다른 시각으로 감상하게 된다.
혼자 있을 때는 가끔 오래된 영화들을 찾게 된다. 누구와 함께, 어디서, 언제 와 같은 자세한 기억은 없지만,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는 영화들을 주로 찾아보게 된다.
8월의 크리스마스도 그러한 영화 중 하나이다.
어제는 8월의 크리스마스를 다시 보는 내내, 핸드폰이 없던 시절의 일상들이 생각났다.
관계를 시작하는 시기라면, 그 시절에는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서는 정해진 시간에 그 장소에 가야 했다. 그 사람을 만나러 가는 과정은 온통 기대감과 긴장 그리고 행복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서로 간의 아무런 조율도 없는 만남이기에 상대방을 만족시키기 위한 방안을 고민하고 준비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미리 한참을 통화하고 함께 계획하여 만나는 일이 대부분인 요즘 이런 몽글몽글한 감정은 느끼기가 쉽지 않다. 기대했던 물건을 주문하고 택배가 도착하길 기다리는 기분 정도가 비슷할지도 모른다.
물론 허탕을 치는 일도 부지기수이다. 영화 속 다정도, 정원과의 관계가 이제 막 시작하는 과정에서, 사진관을 끊임없이 찾아오지만 그 문은 늘 굳게 닫혀 있었다. 다정은 반복되는 허탕 속에서도, 찾아올 때는 매번 설레는 마음으로 가볍게 발걸음을 옮기지만 정작 정원은 그 자리에 있을 수가 없다. 낙엽 진 가을 저녁, 가로수에 기대어 사진관을 바라보는 다정의 모습은 기다리는 이의 기대감과 쓸쓸함, 그리고 다가올 실망감이 모두 담겨있는 명장면이다.
핸드폰이 있어서 편하다. 하지만 그 시절 영화를 보며, 두 시간 남짓 핸드폰이 없었던 그 시절의 일상에 몰입해 보는 것도 즐겁다.
영화의 모든 미장센들이 이런 생각할 거리 들을 던져준다.
뉴트로는 누군가에게는 향수이며, 누군가에게는 새로움이다. 뉴트로는 누군가에게는 그리움이며, 누군가에게는 동경이다. 딱 손에 닿을 정도로만 오래된 영화들은 역설적으로 '요즘 감성'을 깨울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된다.